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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Oct 15. 2022

길이 보이는 건 아니지만 답답한 마음을 달랠 순 있어

열심히 해보겠다고 갖은 애를 써보았지만 마음만큼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때로는 상황 때문에, 때로는 사람 때문에, 때로는 미처 준비되지 못한 나 때문에 그랬다.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경우도 많았다. 


대학원 시절이 나에겐 그런 때였다. 석사과정 때는 선배들이 너무 무서워 도무지 연구실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박사과정 초반부엔 논문이 잘되지 않았다. 번번이 투고하는 논문마다 거절의 메일을 받았는데, 두루뭉술하게 적힌 거절의 이유는 도무지 내 논문의 어디가 문제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답답했다. 더디게 진행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막 연구를 시작했던 박사과정 중반부에는 암 투병 중이셨던 교수님께서 돌아가셨다. 존경하던 지도 교수님의 죽음은 다른 모든 죽음이 그러하듯 갑작스러웠고 슬펐고 막막했다. 


석사과정 땐 사람 때문에 힘들었고, 박사과정 중반부엔 어찌할 수 없던 상황 때문에 힘들었다. 너무 막막했지만 그때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버텼다. 그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어 그렇게 했다. 그런 시간을 오랫동안 견디며 버티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도 상황도 바뀌었다. 나는 그 시절 비싼 대가를 치르며 버티기 기술을 체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박사과정 초반엔 미처 준비되지 못한 나 때문에 힘들었다. 그 당시의 나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영어도 부족했고 나의 실험 결과를 논리적으로 풀어가는 기술적 글쓰기 실력도 부족했다. 그럼에도 잘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 컸고 열심히만 하면 금세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은 곧 조급함을 불러왔는데, 열심히 쓰고 다듬어 제출한 논문이 번번이 떨어지니 나는 금세 지쳐버리고 말았다. 분명 노력이 필요한 시기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느 사이엔 가 나는 나의 부족한 부분을 고민하고 그 부분을 메우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또 게으른 나의 모습이 미워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 당시의 나는 조급함으로 인해 오랜 방황의 시기를 보냈는데 그러면서도 그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 시기를 보냈다.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은 달리기가 굉장히 정직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직이란 의미는 달리기에 행운이란 결코 없단 뜻이다. 달리기의 세계에서는 내가 오늘 3킬로미터도 제대로 뛰지 못했다면, 갑자기 내일 5킬로미터를 뛸 수 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누군가의 주관적 해석에 의해 나의 달리기 결과가 달라지거나 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어제 달렸다면 오늘 나의 달리기는 어제보다는 분명 좋아져 있으며 (내가 그걸 인식하든 하지 못하든), 나의 노력을 결과로써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그것도 꽤나 단기간에 말이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는 숨이 차오르고 팔다리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한주, 또 한주,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나는 호흡을 조절하며 자연스럽게 3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난다고 변하지 않았다. 회식에 야근에 아이들에 여러 핑계를 대고 한주에 하루도 달리지 않은 나날을 보내다 어느 날 큰 마음을 먹고 달리러 나가면 어김없이 그날은 잘 달려지지 않았다. 예전 컨디션으로 돌아가기까지 며칠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어제도 그제도 무리하지 않고 달린 날엔 분명 오늘의 달리기는 뛰지 않아도 예상 가능하다. 생각보다 가벼울 것이고 생각보다 가뿐할 것이다.

 



열심히 해보겠다고 갖은 애를 써보았지만 마음만큼 일이 잘 진행되지 않는 날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시기가 있다. 요즘이 내겐 그런 시기다. 이직을 하고 새로운 환경을 맞이했지만 쉽게 적응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람 사는 곳 다 비슷한 거 아닌가 하는 마음이었다. 방심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기대했던 만큼 결과가 좋지 않았다. 얼마 전 쓴 보고서도 그랬고 얼마 전 수정한 시스템도 그랬다. 나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맡게 된 일이라 해도 내 일이 되어버리고 나면, 그 순간부터 그 일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나의 전공분야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잘하고 싶었고 물론 잘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내 기대만큼의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이곳의 공기를 잘 몰랐다.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것만 같아 마음이 답답해져 온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시기는 조급함을 비워내야 할, 더디더라도 포지 않아야 할 시기인 것이다. 나의 부족함을 찾아보고 그 부족함을 매우기 위해 긴 호흡으로 노력해야 할 시간을 보내야 할 시기 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는 듯한 기분, 그렇다면 달리러 갈 시간이란 이야기다. 그리고 달리는 나에게 스스로의 이야기를 들려줄 시간이다. “리라야! 그제의 너도, 어제의 너도, 한주 전의 너도 5킬로미터를 달려 냈어. 그러니 지금 너무 힘들지만 오늘도 꼭 넌 5킬로미터를 달려 낼 거야. 멈추지만 않는다면 넌 언젠가 10 킬로미터도 21킬로미터도 넘어 42킬로미터까지도 잘 달려내게 될 거야. 너의 마음을 믿지 못하겠다면, 그동안 달려온 너의 지난날을 한 번 믿어봐. 일도 크게 다르진 않을 테고"라고 말이다. 


그렇게 달리며 버티며 한바탕 시원하게 땀을 쏟아내고 나면, 마음속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던 돌덩이가 저만치 옮겨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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