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일,
한가로이 책을 읽고 노트에다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일,
낯선 곳으로의 여행과 그리운 곳으로의 여행,
피아노,
달리기.
이 모든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좋아하기에 자주 하고 싶고 잘하고 싶지만 이미 여러 가지 역할을 해 내어야만 하는 위치에 와있는 40대의 나는 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함을 이제는 알고 있다.
평일 대부분의 시간엔 회사에서 만만하지만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이들의 이런저런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을 포함해 준비물과 숙제검사, 집안일, 식사 준비 등 꼭 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자식으로서의 역할이 남겨져 있으니 주말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일주일에 두어 번 한 시간 정도는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안배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함이다.
내가 늘 좋아한다고 말하는 달리기만 해도 그렇다. 입으로는 좋아한다고 말해놓고도 막상 혼자 뛰러 나가려고 하면 어느 사이엔가 '오늘 하루는 그냥 쉴까?'라는 마음이 이내 고개를 든다. 뛰고 나면 개운하고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걸 알지만 막상 달리려고 하면 갖가지 핑곗거리가 떠오르며 망설여지기 마련이다. 내일은 차를 두고 출근해야 하니 일찍 일어나야 한다거나, 어쩐지 매우 답다거니 하는.
그런 스스로를 잘 아는 나는, 좋아하는 일에 어느 정도의 강제성을 부여해 버리기로 했다. 같은 취미를 가진 마음 맞는 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긴 했으나 일주일에 한 번은 달리기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달리기로 하고 일 년에 한 번은 마라톤 하프코스에 참가하기로 한 것이다. 그럼 적어도 약속의 범위가 타인에게까지 확장된다. 혼자만의 결심은 쉬이 저버릴지 몰라도 타인과의 약속에는 조금 더 강제성이 부여되니까.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달릴 테고 일 년에 한 번은 좋든 싫든 마라톤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부여해 둔 강제성의 덕을 톡톡히 보는 요즘이다.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놓아버린데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바쁜 나날을 보내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 부여해 둔 강제성 덕분에 어제도 오늘도 달릴 수는 있었다. 달리기를 완전히 놓아버리지는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기록은 엉망이고 함께 뛰는 내내 버거운 감이 있었다지만 그럼에도 안심되는 대목이다. 완전히 놓아버린 다음 다시 시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이 슬럼프를 넘어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좋아하는 일에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 내게 그것은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겠다는 의지의 반영, 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