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시작되면 나의 달리기 패턴도 변화가 시작된다. 달리기 가장 좋은 계절인 가을엔 특별한 일정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을 달리곤 하는데 딱 11월이 되면 그때부터는 점차 달리러 나가는 날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래도 12월까지는 추위 때문에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종종 이겨내고는 달리러 나가곤 하지만 1월과 2월은 도무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그럴 때면 나는 달리기에 관한 책을 읽곤 하는데 달리고 싶으면서도 추위 때문에 달리러 나가고 싶지 않은 이 이중적인 마음을 좀 달래서는 다시 한번 달리러 나갈 용기를 얻기 위해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는 꾸준히 달리는 자의 위대함을, 마쓰우리 야타로 <삶이 버거운 당신에게 달리기를 권합니다>에서는 달리기에 치유의 힘이 깃들어 있음을, 오세진의 <달리기가 나에게 알려준 것들>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을 것만 같은 달리기의 재미짐을, 손민지의 <달리는 여자, 사람입니다>에서는 보통의 여자사람이 달리기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모두 내 심장을 두근대게 하는 멋진 작품이다.
하지만 그렇게 절절히 공감하며 읽고 또 읽어도 겨울이 오면 그때만 잠깐 반짝할 뿐, 도무지 여러 날을 반복해서 달리러 나갈 마음이 먹어지지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추위에 매우 취약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선 모자 하나 없어도 달리러 나갈 마음을 내곤 해도 한겨울 찬바람에는 도무지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 그게 바로 나란 사람이었던 것이다. 조금만 추위를 참고 달리다 보면 몸이 데워지고 땀이 나면서 분명 괜찮아진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양재천으로 걸어 나가는 잠깐의 시간, 약 5분 정도와 몸이 데워지는 데에 걸리는 시간, 5분까지 해서 총 10분간의 추위도 도무지 견뎌낼 수 없을 만큼 겨울에 약한 자. 박리라.
달리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으며 스스로 동기 부여도 해 보고, 달리러 나가질 못하는 스스로를 다그쳐 보기도 했지만 달리기를 시작하고 약 세 번의 겨울을 보내며 나는 "추위"에 만큼은 완벽히 지고야 말았음을 인정해야 했다.
시리기만 하던 공기가 차가운 느낌에서 서늘한 느낌으로 바뀌고 이제야 좀 나다닐만하다 싶은 쌀쌀하지만 햇볕이 고운 봄이 오면 나는 늘 새롭게 달리기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몸을 움직여 보지만 두어 달 이상을 아예 쉬어 버린 나의 달리기는 당연하게도 초보보다 조금 나은 수준으로 돌아가 있기에 호흡도 기록도 원 상태를 찾는 데 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지사. 그렇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전문적인 달리기 선수가 아니라 그저 달리기가 좋아 그냥 달리는 사람이니까. 좋아해서 하는 일에까지 의무를 부과해 스스로를 힘겹게 만들지 말자고 말이다.
세 번의 계절이 지나가는 동안 기껏 갈고닦아 온 기량이 말 짱 도루묵이 되는 것은 많이 아쉽다. 하지만 늘 그래 왔듯 이번 겨울 역시 지난겨울처럼 많이도 추울 테고 해님 역시 늦게야 떠올랐다 금세 사라져 버리곤 말 테지. 그렇담 나는 분명 이번 겨울에도 춥고 컴컴한 길을 달리는 것을 썩 내키지 않아 할 것이 뻔하다. 차가운 바깥 온도에 도통 나가 달릴 엄두를 내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올해는 날이 추운 11월 중순부터 2월 중순까진 달리기를 아예 쉬어버리는 레이오프 기간을 가져보려 한다.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하면서도 꾸준하지 못한 스스로를 다그치는 일 따윈 이제 그만두어야지.
겨울, 어차피 달리지 못할 나날들이라면 이번엔 그 시간을 달리 보내 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따뜻한 이불속에서 달리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아껴 읽으며 다음 해 나의 달리기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벚꽃 가득 한 길을 가뿐한 컨디션으로 성큼성큼 달려 나갈 멋진 내 모습을 상상하며 그렇게 쿨하게 말이다. 그러면 달릴 수 있게 될 봄이 오는 소리를 겨울 동안 달리지 못했던 날들에 대한 죄책감을 만회하는 무거운 마음이 아닌 누구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을 테니까. 당분간 달리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면서도 벌써부터 벚꽃 러닝을 꿈꾸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