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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Sep 13. 2022

일회용 체력에서 최강 마녀 체력까지

달리기를 시작하고 만 2년, 나의 일상은 많이도 달라졌다.


달리기를 하며 두 번의 해가 바뀌는 동안 아이들 역시 자랐기 때문이다. 첫째와 둘째는 초등학교 고학년, 막내는 유치원생이 되었다. 예전보다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었고 그만큼 나는 여유가 생겼다. 또한 작년 가을, 나의 이직으로 우리 가족은 서울로 이사를 했는데 그와 동시에 더 이상 남편은 장거리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면서 나는 나 홀로 육아와 집안일 폭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일상이 많이도 달라진 데에는 그 무엇보다도 달리기의 효과로 인한 체력향상의 공이 가장 컸다고 굳게 믿는다.


과거에 비해 지금의 내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달리기는 나의 인생을 얼마나 바꾸어 놓았을까? 달리기를 통해 바뀐 나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나는 눈물 없이는 떠올리지 못할 3년 전 나의 일상을 소환해보기로 한다.


2019년의 어느 날들


나의 평일은 눈을 뜨자마자 아이들의 어린이집 가방 챙기기와 간단한 아침식사 준비로 시작된다. 아이들이 아침을 먹을 동안 나는 재빠르게 씻고는 막내를 화장대 위에 앉혀 놓고 함께 화장을 하며 출근 준비를 한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아이들의 옷을 일사불란하게 갈아입힌다. 드디어 출근 준비 완료! 하지만 아이들의 등교와 등원이 가장 큰 난제다. 첫째는 학교에, 둘째는 유치원에, 셋째는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어야 하는데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으니 하루 걸러 하루는 무엇인가를 놓고 오는 바람에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나오기가 일쑤다. 그래서 나의 아침은 종종 회사에 늦을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시작되곤 했다.


퇴근 후 저녁시간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저녁 6시 정각이 되기 무섭게 퇴근인사를 하고는 유치원에 들러 둘째를 픽업하고, 셋째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면 대충 6시 40분. 그때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세탁기 돌리기, 아이들의 저녁 챙기기, 설거지, 간단히 청소기 돌리기, 아이들 씻기기, 내일 입을 아이들의 옷과 준비물, 내 옷 챙기기이다. 


대체로 밤 10시 정도가 되어야 모든 일과가 마무리된다.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어느 날에는 아이들과 블록 놀이를 하기도 하고 동화책을 읽어 주기도 했지만 미안하게도 그런 날이 자주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날과 반대되는 날을 보내는 경우가 더 많았다. 회사에서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아이들을 빨리 재우려 일찍부터 불을 끄고 누운 날은 셀 수도 없이 많았고, 회사에서 너무 속이 상하거나 억울했던 어느 날에는 상했던 마음이 가시질 않아 집에 도착하자마자 짐만 내려놓고는 주저앉아 아이들을 안고 펑펑 울기도 했다.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해 아이들에게 텔레비전을 틀어 주고는 저녁도 주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한두 시간 즈음 저녁 낮잠을 자고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 날에는 저녁 8시가 넘어서야 배달음식을 시키고 9시 즈음에 아이들에게 저녁을 주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종종 그런 나날을 보내곤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펌프를 하러 가끔 오락실에 들락거렸던 것 말고는 한평생 운동 이라고는 걷기와 숨쉬기가 전부였던 나는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평일엔 해야 할 일들은 곧잘 해내는 편이었다. 아니, 겉으로 보기엔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주말이었다.  


나의 주말 일정은 별다른 것 없었다. 아니 별다른 일정을 만들 수가 없었다. 주말의 나는 틈만 나면 누웠고, 틈만 나면 잠을 잤다. 장을 보기 위해 마트라도 한 번 다녀오면 이내 피로가 몰려왔고 그럼 나는 또 침대에 눕기 일쑤였다. 그래서 주말엔 남편이 세 아이 육아를 전담했다. 나도 다른 엄마들처럼 주말엔 아이들이 좋아하는 맛난 음식도 해주고 가까운 교외로 나들이도 나가고 싶었지만, 마음만큼 내 몸은 움직여 주지 않았다. 그런 나를 두고 첫째와 둘째는 엄마 체력은 일회용 짜리라며 놀러 댔기에 어떻게든 바꿔보고 싶었지만 주말만 되면 젖은 솜뭉치 같은 내 몸은 도무지 움직여지지 않았다. 일요일 오후나 되어서야 간신히 기력을 되찾아 창문을 열고 대청소를 하고 다음 주 먹을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이고 요리하기 편하게 식재료를 다듬어 놓는 것이 전부였다.


그 당시의 나는 회사생활도 세 아이 육아도 버거웠다. 그래서 조그마한 상황에도 휘청거렸고 흔들렸으며 그 결과 나는 내 인생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채 이리저리 끌려 다니곤 했다.




그런 내 삶에 달리기는 터닝 포인트가 되어주었다. 2020년 달리기를 시작하며 내 인생은 점차 바뀌기 시작했는데 지금의 내 일상은 2019년과는 아주 많이 달라졌다. 비교를 위해 2020년 하반기부터 비슷한 패턴을 보여온 요즘의 일상을 소개한다.  


2022년 어느 날들


새벽 5시, 알람이 울리기 무섭게 나는 벌떡 일어나 조용히 방을 빠져나온다. 물 한잔을 마시곤 책상에 앉아 멍한 눈을 비비며 간단히 어제 일기를 적는 것으로 내 하루는 시작된다. 그리곤 미리 골라 놓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고 기억해 두고 싶은 문장을 노트에 옮기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곧 새벽 6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리면, 새벽시간의 하이라이트, 달리기를 하러 나갈 시간이다. 주섬주섬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러닝화를 신는다. 현관 앞 거울을 보며 눈곱만 떼고서 씨익 한번 웃어보고는 양재천으로 활기차게 발걸음을 옮긴다. 가만히 서서 기지개를 켜고는 집에 돌아가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에 맞추어 거리를 설정하고는 달리기를 시작한다.


짧으면 20분, 길면 40분, 호흡을 조절하며 한바탕 신나게 뛰고 나면 어느새 입고 나섰던 운동복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축축한 운동복에다 나의 열기가 더해 찝찝함이 한가득이지만 개운함만큼은 최상이다. 집에 도착하면 이제 마음이 조금 급해진다. 후다닥 씻고 선 아이들의 간단한 아침 준비를 해놓고는 나는 회사로 나선다.


퇴근 후 저녁시간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집에 도착하면 세탁기 돌리기, 아이들의 저녁 챙기기, 설거지, 간단히 청소기 돌리기, 아이들 씻기기, 내일 입을 아이들의 옷과 준비물, 내 옷 등을 챙겨 놓는 일을 차례차례 하고 나면 모든 일과가 마무리된다. 다만, 밤 10시 늦어도 11시 전에는 무조건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든다. 즐겁게 맞이할 내일을 위해서이다.  


야근은 거의 하지 않는다. 체력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집중력도 늘었는지 업무시간 중에 딴짓을 하거나 딴생각을 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아마 내게 너무도 소중해진 새벽시간과 저녁시간을 사수하기 위해 나도 모르는 새에 “초-집중” 모드를 택했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가장 달라진 것은 주말이다. 예전엔 체력이 달려 잠만 자며 주말을 보냈지만 지금은 남는 게 체력이니 알차게 주말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금요일만 되어도 주말에 잘 놀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다. 미리 계획해둔 주말 일정대로 우리는 토요일 새벽 집을 나서 여행을 떠나곤 했다. 양양, 경주, 대구, 제천, 대천, 안성 등 거리가 좀 있는 곳은 1박 2일 코스로, 화담숲, 파주처럼 짧게 다녀올 수 있는 곳엔 당일치기로 다녀오곤 했다. 하다 못해 별다른 일정이 없는 주말엔 집에 있기가 좀이 쑤셔 서울랜드라도 다녀와야 했으니 주말만 놓고 비교해보자면 정말 놀라운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차에선 목청껏 옛날 인기가요를 따라 부르며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고,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자연을 벗 삼아 아이들과 함께 산책도 하고 이런저런 체험도 즐기고 맛있는 것도 사 먹으며 시간을 보내니 주중엔 즐거운 주말을 계획하는 시간도 좋았다. 일요일 늦은 오후, 집에 도착해 여행의 피로를 풀지도 못한 채 미뤄둔 청소와 빨래, 식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하는 일이 한가득 쌓여 있었지만 잘 놀다 왔으므로 그 정도 피로쯤은 괜찮았다. 몸이 좀 고된 느낌이 있었지만, 일찍 자리에 누워 평소보다 조금 더 자면 될 일이니까.

 



모두 다 달리기로 차곡차곡 쌓아 둔 체력 덕분이다.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나를, 엄마를 일회용 체력녀라고 기억하지 않는다. 오히려 얼마 전 큰 아이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는 힘들지 않아요? 회사도 나가야 하는데 새벽엔 일찍 일어나 책도 보고 운동도 하고, 저녁엔 집안일도 하잖아요. 정말 괜찮은 거예요?라고 말이다.


나는 아이의 질문에 웃으며 답할 수 있었다. “달리기”로 탄탄히 다져 둔 엄마의 체력은 이제 하고 싶어 하는 일도 해야 하는 일도 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말이다. 너도 해야 하는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을 텐데 모두 다 잘 해내려면 체력이 탄탄해야 하니, 무엇이든 운동을 하나 시작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이다. 아이는 웃으며 배구와 발레가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친한 친구들 역시 내게 말했다. 넌 체력이 되니까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거야라고 말이다. 내 나이 마흔, 나는 달리기 덕분에 최강 마녀 체력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50살, 60살, 70살, 80살에도 지금처럼 신나게 달리고 싶다. 그래서 가고 싶은 곳에 가보고 해보고 싶은 일들을 해보며 재미있게 살고 싶다. 다른 거 뭐 있나?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그게 행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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