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시작한 지 두어 달 정도 되었을 때의 일이다. 저기 앞에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가 달리고 계신 게 보였다. 언뜻 봐도 65세는 훌쩍 넘기신 것 같아 보였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 "음, 저 할아버지쯤이야"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벌써 달린 지도 조금 되었겠다, 난 저 할아버지보다 한참 젊다 싶었다. 그다지 빠르지 않은 것 같은데, 저 할아버지 정도는 나도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일렁였던 것이다.
곧장 속도를 내보았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좀 더 앞서 계신 데다가 할아버지 또한 달리고 계셨으므로 할아버지가 있는 곳까지 닿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조금만 더 빠르게, 조금만 더 빠르게를 되뇌며 나는 점차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꽤 달린 것 같단 생각이 들었을 즈음 나는 할아버지를 제치고 뛰어나갈 수 있었다. 오오오! 정말 제쳤다. 내가 이제는 좀 달리는 사람이구나 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신바람이 났다.
하지만, 기쁨의 순간은 아주 잠시였다. 할아버지를 제쳐보겠다는 일념으로 평소보다 빠르게 속도를 내던 나는, 그 속도를 계속해서 유지할 실력이 되지 못했다. 호흡은 힘들어지고, 더는 뛸 수 없을 것만 같은 순간이 지속되었다. 마음속이 또다시 복잡해졌다. 더는 이렇게 달릴 수 없을 것 같아 멈춰 서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멈춰버리고 나면 오늘은 더 달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아이들 아침과 출근 준비를 해야 했던, 새벽 달리기여서 여유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최대한 속도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거의 빠른 걸음 수준으로 속도를 낮추어도 한참 동안 가쁜 호흡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은 내가 늘 달렸던 거리를 평소보다 훨씬 더 힘겹게 달릴 수밖에 없었다. 새벽은 달리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평소와 달리 유쾌하지 않았다.
그날 나는 내 몸으로 직접 시험해 보고서야 한 가지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달리기는, 특히나 오래 달리기는 결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는 안된 다는 것을. 나만의 레이스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비교는 타인이 아닌, 어제의 나와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 뒤부턴, 새벽 달리기 중에 그 할아버지를 마주쳐도 결코 앞질러 갈 마음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감탄의 눈빛으로 할아버지의 달리는 모습을 세심히 관찰했다. 그 할아버지의 달리기는 달리는 걸음걸음이 너무도 가벼워 바로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데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호흡도 자세도 무척이나 안정적이었다. 힘든 기색이 전혀 없이 사뿐히 걷는 듯 달려 나가는 할아버지. 그랬다. 그 할아버지는 달리기 고수였다. 달리기를 이제 막 시작한 나는 아무것도 모른 체 그렇게 달리기 고수 앞에서 주름을 한 번 잡아보았던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나이에 장사 없다고. 아니다. 나이에도 장사는 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의 달리기는 아름다웠고 그래서 멋있었다. 꾸준히 갈고닦아 온 달리기는 나이가 든다고 어딜 가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니까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결심했다. 그래, 계속 달리자. 달리다 보면 저 할아버지만큼 나도 잘 달릴 수 있겠지 하고 말이다. 그 뒤로는 늘 대체로 만족스러운 달리기를 할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듯 조금 더 잘 달리는 사람을 만나도, 아주 잘 달리는 사람을 만나도, 나 보다 조금 더 느린 속도로 달리는 사람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보다 빨리 달리는 분은 옆으로 살짝 비켜 보내 드리면 되고 나 보다 조금 더 느린 속도로 달리는 사람을 마주치면 폐가 되지 않게 옆으로 돌아 공간을 벌려 뛰면 된다.
그날 나는 할아버지 덕분에 나만의 속도로 달리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