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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Sep 04. 2022

나의 새벽, 나의 oo천

지방 근무를 할 적에 나는 출근 전 매일 새벽 작은 oo천 산책길을 달렸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땐 꼬박 25분가량을 달려도 3킬로미터를 다 채우지 못했는데, 매일 같은 길을 달리다 보니 25분 동안 꼬박 달리면 어느새 3킬로 미터를 넘게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매일 달리다 보니 속도도 붙고 달리는 풍경도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거리도 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어느 날은 5킬로미터, 또 어느 날은 욕심을 좀 부려 7킬로미터를 뛰는 날도 생겼다.


난 왜 그렇게 달리기에 집착했던 것일까? 그 당시의 나는 하루라도 달리기를 빼먹으면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사람처럼 새벽 달리기에 집착했다.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세 아이 육아는 늘 버거웠지만, 그보다는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무엇 하나 바뀌지 않을 것만 같은 직장 생활이 큰 몫을 차지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달리기는 분명 힘들었지만, 무언가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매력이 있었다. 아마 무엇 하나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없는 것만 같던 하루 중, 결코 내 것이 아니며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만 같은 무엇 하나라도 꼭 내 것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마음이었던 것일까? 그래. 아마 달리기를 막 시작했을 당시 내가 달리기를 지속했던 가장 큰 이유는 성취감이었던 것 같다. 할 수 없던 것을 해 냈다는 만족감, 숨이 턱 끝까지 차 올랐지만 버텨냈다는 뿌듯함, 아주 조금씩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는 향상심. 아무리 애를 쓰고 발버둥 쳐도 나아지는 것이 없는 것 같은 반복되는 회사의 일상 속에서 나는 그렇게 라도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나의 모습이 좋아 매일 그렇게 달렸던 것이다. 


곤히 자고 있는 세 아이 몰래 살며시 기어 나와 옷을 갈아입고 운동화 끈을 묶는 새벽이 익숙해질 즈음부턴, 난 새벽하늘만 보고 달렸다. 사실 달리기를 위해 선택한 시간이 새벽이었던 것에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새벽은 전혀 의도된 시간이 아니었다. 세 아이 엄마이기도 하고 직장이 있어 낮에 시간을 내기가 어렵기도 한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홀로 집 밖에서 나만의 시간을 만들기에 가장 무리 없는 시간은 새벽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새벽시간엔 회사에 나가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도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니까. 나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나의 하루는 대체로 아침 7시에 시작해 밤 11시가 될 때까지 빠르게 흘렀다. 출근 준비와 간단한 아침 준비로 시작해 야근을 하지 않기 위해 하얗게 불태우는 회사에서의 오전과 오후를 보내고 나면, 퇴근 후 해야 할 일엔 아이들의 맛있는 저녁 한 끼와 문제집 채점, 설거지와 빨래가 남아있었다. 조금이라도 쉬거나 늘어지면 금세 밤 11시를 넘기게 될 것이 뻔하고, 그럼 다음 날은 기분 좋게 시작하기가 어렵다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둑어둑한 새벽시간, 비몽사몽인 채로 산책로를 달리고 있으면 어느 사이엔가 해님이 떠오르며 온 세상을 밝혀주었는데, 난 매일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하지만 늘 완벽했던 새벽노을을 바라보는 게 참 좋았다. 아니, 좋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황홀했다는 표현이 조금 더 적절한 것 같다. 두 눈을 하늘에 고정한 채 온 세상이 밝아지는 것을 멍하게 바라보며 달리고 있노라면, 힘겨운 달리기도 만족스럽지 않은 회사 생활도 늘 부족하기만 한 것 같은 육아도 덩달아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왠지 오늘 하루만큼은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예쁜 oo천 산책길도 내가 달리기를 하러 나가는 데에 큰 역할을 해주었다. 천변에서 살고 있는 식물들도 새벽노을처럼 매일 같은 듯하면서도 달랐다. 봄엔 화사하게 피어난 꽃들로, 여름엔 싱그러운 초록이들로, 가을엔 울긋불긋 단풍들로, 겨울엔 뼈대만 남은 가지들로 서서히 계절이 변해가고 있음을 내게 알려주었다. 그 속에서 종종 마주치는 곤충들이 처음엔 낯설어 깜짝깜짝 놀라곤 했으나 그도 곧 익숙해졌다.


또한 새벽 달리기를 하러 나가는 일이 '엄청 큰 결심이 필요한 일'에서 '꽤나 익숙한 일'로 변해갈 때 즈음부턴 달리면서도 습관처럼 꼭 챙기게 되는 몇 가지도 생겨났다. 바로 oo천 오리와 그 시간 각자 하지만 함께 달리는 사람이 오늘도 나왔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둥그런 코너를 돌 때 즈음이면 어김없이 오리의 꽥꽥 소리가 들려오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난 오리의 꽥꽥 소리가 들리면 큰 소리로 반갑게 "안녕!"하고 굿모닝 인사를 건네곤 했다. 그러다 주변의 인기척을 느끼곤 깜짝 놀란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달리며 인사하고 인사하다 놀란 내가 재미있어 이내 다시 웃곤 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각 비슷한 곳을 매일 달리다 보니 나처럼 매일 나오는 그들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는데, 늘 빨간색 운동복을 입고 나오는 언니, 러닝복을 잘 갖춰 입고 뛰다가 중간중간 나오는 벤치에서 근력운동을 하는 총각, 연세가 꽤 되시는 듯한데도 사뿐사뿐 달려 날 가볍게 스쳐 지나가시는 할아버지가 그들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마주하면 서로 눈인사를 건네게 되었는데, 매일 나오던 어느 누구 한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괜스레 두리번거리게 되고,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 속에서 달리기라는 같은 활동을 하며 공유하는 시간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그들은 내게 조금 의미 있는 타인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작년 겨울 나는 이직과 함께, 서울로 이사를 오며 그쪽 천변과는 아쉬운 이별을 했다. 그리고 무척이나 빨라진 출근 시간 때문에 한동안 달리다 달리지 못하다를 반복했었다. 그러다 봄부터는 새벽 달리기를 대신해 저녁 달리기를 하는 중이기도 하다. 아직 그 동네 천변만큼 익숙해지지는 않았지만, 양재천에 살고 있는 오리와 두루미 친구들, 잉어 떼 친구들과 거리감을 조금씩 좁혀가는 중이라고나 할까? 양재천은 기대했던 만큼의 꽃과 나무가 있는 가꾸어진 천변은 아니지만 조만간 이곳에서도 의미 있는 타인들이 생겨나게 되겠지?


천변에서 마주했던 그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지난밤의 새찬 비에도 무사 무탈했을까?

매일 뛰던 그 언니와 총각, 할아버지는 아직도 여전히 그 아름답던 길을 새벽마다 뛰실까?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밤이다.

그들이 늘 행복하기를 그리고 늘 편안하기를 빌어본다.


안녕? 사랑스러운 나의 oo천! 

안녕? 사랑스러운 나의 새벽!


달리기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공들여 산 나의 첫 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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