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동을 곧잘 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산책을 좋아하고 배가 부르면 숟가락을 놓는 마른 체형의 아가씨였다. 하지만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부터 아주 서서히 살이 찌기 시작했다.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며 함께 시작된 첫 타지 생활과 무서운 연구실 선배들 덕분에 꽤 오랜 기간 긴장된 생활을 했던 탓이다.
그 당시 나의 하루하루는 참 버거웠다. 아침 9시 출근, 밤 11시 퇴근이 공식적인 출퇴근 시간이었지만, 대부분 선배들은 그 보다 더 늦은 시간에 퇴근을 했기에 그 공식적인 퇴근 시간조차 지켜진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였을까? 꽉 막혀버린 듯 갇힌 생활을 하던 내게 마음을 달랠 유일한 낙은 "음식"이었던 것 같다. 그땐 지금처럼 배달앱은 없었지만, 그래도 늦게까지 배달이 되는 곳이 무려 2곳이나 있었다. 바로 파닭과 매직 탕수육. 퇴근 후 늦은 밤 하루 동안 시달리다 모조리 고갈되어 버린 나의 신체적 정신적 허기를 달래기 위해 나는 매일 밤 야식을 찾았다.
퇴근길 편의점에 들러 사다 놓은 맥주와 함께 즐기는 파닭의 맛은 고단했던 하루를 잘 달래기엔 충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반복되는 야식에 체중이 서서히 증가하고 몸도 조금씩 불어 가고 있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 당시의 나는 다른 대안을 마련할 의지도 여유도 없었다. 그저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 주기만을 바라며 버티는 것만이 전부였다.
이후, 박사과정에 진학하고 결혼을 하면서부터는 점차 시간에 자유로워졌지만 이미 그렇게 음식으로 마음의 허기를 달래는 것이 습관화되어버린 탓에 학교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마음이 힘들었던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는 꼭 맥주와 야식을 찾게 되고야 말았다. 그런 습관이 좋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내 생각보다 나의 나쁜 습관은 훨씬 더 강력했다.
그런 나의 습관을 고치지 못한 채 세 번의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나는 꽤나 몸이 불어나 예의 있는 표현으론 통통한 솔직한 말로는 뚱뚱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의 BMI는 자연스럽게 "과체중"에 자리를 잡고야 말았다. 그래서 어느 날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운동"에 진심으로 노력을 다하는 시간을 거치면 표준으로 내려오곤 했지만 곧 방심한 틈을 타 금세 원래의 체중으로 돌아오곤 했기에, 언젠가부터 매해 한결같은 나의 결심은 역시 당연히 "다이어트"였다.
인생 과업인 다이어트를 위해 처음으로 했던 것은 일대일 PT등록이었다. 첫째를 출산하고 서너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고 휴학 중이었기에 앞 동에 살고 계신 시어머니께 아이를 부탁드리곤 일주일에 2번씩 헬스 트레이너 선생님께 일대일 PT 강습을 받았다. 선생님은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면 절식을 해야만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셨지만, 당시의 난 모유수유 중이었기 때문에 효과가 떨어지더라도 운동만 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식단 조절은 따로 하지 않았다. 절식은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난생처음 해보는 고강도 근력운동 때문이었는지 모유수유 덕분이었는지 그 당시의 난 따로 식단 조절을 하지 않았음에도 한 달이 지나자 체중이 꽤나 줄었다.
하지만 복학 후 일상으로 돌아오니 다시 또 서서히 살이 찌기 시작했다. 그래서 둘째 때 한 번, 셋째 때 또 한 번, 출산 후 휴학 혹은 휴직이었던 시기를 활용해 한 달 혹은 두 달가량 일대일 PT 강습을 받았었는데 그때마다 어김없이 체중은 줄어들었지만 일상으로 돌아옴과 동시에 줄어들었던 체중은 서서히 원상 복귀되고 마는 상태가 반복되었다.
사실 휴학 혹은 휴직을 했던 1년간 꾸준히 PT 강습을 받고 싶었지만 난 그럴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비용에 대한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박사과정 때부터는 여기저기 대학에 출강도 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과제비를 받았기에 꾸준히 수입이 있었지만, 휴학을 하면서부터는 둘이 벌던 수입이 하나로 줄어든 데다가 아이들은 커가며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늘어가는데 그렇게 큰돈을 매달 나의 다이어트에 쏟아붓기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돈뿐만이 아니라 시간도 큰 문제였다. 출근길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퇴근길 다시 아이들을 찾아와야 하는 워킹맘인 난, 퇴근길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오며 잠깐 놀이터에 들렀다 집으로 들어와 대충 차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집안을 정돈한 뒤, 아이들을 목욕시켜 동화책 한두 권을 읽어주고는 잠드는 하루 일과조차 늘 빠듯했다. 그런 나의 일상에서 나만을 위해 오롯이 따로 시간을 뺀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부서이동으로 새로 사귄 20대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친구들과 인스타그램 친구가 되고 나서는 그들의 달리기 피드 보게 되었는데, 그 순간, “와!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는 사진에는 달린 거리와 시간, 속도가 찍혀 있었는데 약 30분 남짓 달린 것 치고는 꽤나 운동량이 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일그러진 표정과 벌겋게 상기된 얼굴, 송골송골 맺힌 땀에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나는 다음날 곧장 그 친구에게 인스타그램에 올린 피드 잘 보았다며 혹시 달리면서 사용하는 앱은 무엇인지,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이런저런 달리기에 관한 정보들을 캐 물었다.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면서 말이다.
그 친구가 알려준 앱은 Nike Run Club이라는 앱이고, 나는 바로 그 앱을 깔아 이런저런 버튼들을 눌러 그 앱을 동작시켜 보기도 하고 초록창에다 "달리기", "달리기 효과" 같은 것을 검색해보기도 하며 천천히 D-Day를 정했다. 집 앞 율곡천으로 장소도 정해 두었다. 생전 마음먹고 해 본 적이 없던 혼자 하는 운동인지라 자신이 없었다. 3일은 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비장하게 휴가를 내고는 D-Day를 기다리면서도 여전히 반신반의했던 것 같다. "내가, 혼자, 스스로, 달리기를, 정말, 할 수, 있을까?" 하고.
그때가 딱 2년 전 이맘때의 일이다. Nike Run Club의 가이드를 들으며 시작한 나의 첫 번째 달리기는 많이 힘들었지만, 그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나의 달리기는 오늘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음, 그래서 다이어트는 어떻게 되었냐고? 안타깝게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달리기를 시작했던 첫 해에는 체중이 조금 줄고 배도 좀 들어가며 어딘가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는 듯하더니, 딱 거기에서 멈춰버렸다. 그래도 지금은 "과체중"에서 내려와 간신히 "표준"을 유지하고는 있는 중이다. 언젠가는 마음먹고, 식사량도 줄이고 금주도 해야겠지만, 지금까지는 식단 조절도 하지 않았고 금주도 하지 않았으니, 더 이상의 기대는 욕심인 것도 같다.
그래도 2년 전에 비하면 어머 어마한 체력의 소유자가 되었고 생활도 활기차 졌다. 그 당시의 난 달리기 말곤 다른 대안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난 달리기 예찬론자가 되어버렸다. 집 근처에 달릴만한 공간이 있는 것이 어마어마한 축복이구나 싶다. 러닝 머신을 달렸다면, 이렇게 꾸준히 달리지 못했을 것 같다. 시간이 부족하고 따로 돈을 들이긴 어렵지만, 운동은 하고 싶다는 분들께 난 과감히 달리기를 추천하고 싶다.
며칠 전의 야식, 옛날 소시지와 맥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