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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Sep 12. 2022

저의 첫 마라톤은요!

안중근평화마라톤 10Km

난 보통 출근 전 새벽시간을 활용해 달리기를 하곤 했다. 주말을 제외하면 주 5일 5킬로미터가 나의 달리기 루틴이다. 가끔 욕심을 부려 7킬로미터를 뛰기도 했지만, 그런 날엔 아이들 아침 준비, 나의 출근 준비까지 시간이 너무 빠듯해 마음이 조급해졌다. 괜히 나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아이들을 다그치게 되었다. 무언가를 빠뜨려 허둥지둥 대는 일도 많았기에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뒤론 더는 거리 욕심을 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한 번에 내가 가장 길게 뛰어본 거리는 7킬로미터가 되었다.


게다가 작년 가을, 이직을 결정하면서 장거리 이사에 아이들 전학에 신입직원 교육까지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서너 달은 단 하루도 달리지 못하고 있었다. 달리기 때문에 꼭 뛸 수 있는 곳과 가까워야만 한다며 양재천 코앞으로 이사를 해놓고도 그렇게 뛰지 못한 걸 보니, 낯선 공간과 낯선 생활에 적응하는 게 아무래도 버거웠던 모양이다.


그래도 운이 좋았다. 이번에 함께 입사하게 된 동기 중 몇몇이 꽤나 달리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다들 늦은 입사라 모두 가정도 있고 아이도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빼기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함께 달리기 위해 퇴근 후 1시간가량을 할애하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나의 멈춰 있던 달리기는 그들 덕분에 다시 시작되었다.


달리기가 함께 상호작용을 하는 운동은 아니다 보니, 그저 가볍게 뛰며 근근이 수다를 이어가는 건강 달리기 느낌의 모임이 서너 차례 반복될 때 즈음, 주도적으로 모임을 이끌던 친구가 마라톤 참가를 제안했다. 바로 안중근 평화마라톤이다. 모두들 마라톤 경험이 없었기에, 그 친구는 가장 무난하다 생각되는 10킬로미터를 제안했고 엉겁결에 그러자며 신청을 해두고 나니, 왜인지 자꾸만 마음이 불안해지는 거다.


난 10킬로미터를 달려본 적이 없고, 최근엔 충분히 누적거리를 쌓아 둔 것도 아니란 생각 때문이었다.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 해지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다시 매일 달릴 결심뿐이었다.


짧다면 짧지만 그래도 나름 나만의 달리기 역사가 있다고 생각해 왔기에, 걷지 않고 달려서 완주하고 싶었다. 10킬로미터니까, 매일 5킬로미터를 목표로 차근차근 누적거리를 쌓아 두자는 마음으로 연습을 시작했는데, 사실 처음부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출근시간이 일러 새벽 달리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녁시간을 활용하기로 했지만, 아무래도 워킹맘인 난 저녁시간을 내 마음만큼 쓸 수는 없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너무 애쓰지는 말되, 달릴 수 있는 날에는 꼭 달리고 회식이나 갑작스러운 야근이 생기는 날엔 마음 편히 달리기를 스킵했다. 아이들이 함께 나가고 싶다고 조르는 날엔 함께 데리고 나가 달렸다. 아이들은 싱싱카를 태워 먼저 앞세워 보내고 나는 뒤따라 달리는 형식으로 뛰었는데, 아무래도 꼬맹이들 컨디션이 있다 보니 함께 나가게 되는 날엔 대략 2킬로미터 정도밖에 뛰지 못했다.


어찌 되었건 안 뛰는 날보단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매일 뛰긴 했지만, 막상 일요일 마라톤이 있는 주가 되자 마음이 어수선했다. 벼락치기를 하는 심정으로 이번 주만큼은 매일 5킬로미터를 뛰기로 하고, 화요일은 7킬로미터, 금요일은 10킬로미터를 뛰고 토요일은 휴식하기로 계획을 잡았다. 그래도 벼락치기니까, 나름 훈련한다는 마음으로 임했던 것 같다.


그리고 대망의 6월 12일 일요일, 안중근 평화마라톤이 열리는 날의 아침이 밝았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약간의 불안, 약간의 설렘을 안고 여의나루 한강공원에 도착하니, 광장 옆으로 줄지어 땡땡 마라톤회, 땡땡 달리기 등의 동호회 이름으로 현수막이 걸린 천막이 쳐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러닝복을 입고 선 몸을 풀고 있는 게 보였다. 몇 되진 않지만 함께 뛰기로 한 동기들을 찾아, 나도 함께 몸을 풀어 보았다. 심장은 쿵쾅쿵쾅 요동을 쳤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긴장된 표정을 감추곤 "우리 다음엔 하프코스 뛰는 거 아니야?"라며 자신감을 내비치다가도 다시 곧 "우리 힘들면 그냥 걷자"라며 문맥 없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시작 시간을 기다렸다.


신나는 음악이 흐르고, 가볍게 몸을 푸는 시간을 가진 뒤 첫 번째 총성과 함께 하프코스가 출발하고, 이제 다음은 우리 차례! 두 번째 총성과 함께 우리도 천천히 출발해본다. 고작 1킬로미터를 뛰었을까? 6월이라 괜찮겠지 했는데, 날이 어찌나 더운지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겠단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지만, 이미 레이스는 시작되었으니 그냥 여태껏 뛰어왔던 나를 믿고 그냥 뛰어보는 수 밖엔 없었다. 그래도 같은 속도로 옆에서 뛰어 주는 동기들이 있으니 어찌어찌 완주는 해내겠지 싶기도 했다.


조금 뛰었다 싶었을까? 우리 앞에 허리가 굽고 엄청 마르신 백발의 할아버지가 뛰고 계신 게 눈에 들어왔다. 곧 쓰러지실 것 같은 분이 우리 앞에서 비슷한 속도로 계속 달리고 계시니 "정말 대단하시다"란 말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보니, 또 어느 남자분이 엄청난 속도로 아이가 탄 유모차를 밀며 달려간다. 옆에 있던 동기가 "유모차, 파이팅!!!"이라고 소리치는데, 유모차 아저씨의 "파이팅"이라는 화답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세상엔 정말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불안한 마음, 긴장된 마음으로 시작된 레이스였지만, 지금 여기 함께 달리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목소리에 어느새 나도 파이팅 넘치는 마음이 되고야 말았다.


그렇게 또 시간이 꽤 흘렀을까? 앞쪽에 두 사람이 함께 달리는 모습이 보이는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왜냐하면 서로의 손목에 연결된 줄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어, 뭐지??" 하는 마음도 잠시, 우리는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그들의 달리는 모습이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곧 함께 달리던 두 사람이 시각 장애인과 봉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놀라움은 곧 감탄으로 바뀌었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면서도 그렇게 멋진 몸으로 달려내는 그분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지금 이 자리에 함께 달리기까지 그분이 쌓아온 힘겨운 시간들이 일반인인 나로서는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우리는 "파이팅"을 외치며 곧 그들 앞으로 달려 나갔지만, 곳곳에 그렇게 봉사자분들과 함께 달리는 시각 장애인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너무 멋진 장면을 현장에서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것도, 바로 그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 뛸 수 있다는 것도 너무나 감사하단 마음이 들었다.


반환점을 돌며 물 한잔도 들이켰고, 왔던 길을 어느 정도 왔다 싶었을까? 여러 사람의 에너지를 받으며 "파이팅" 넘치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젠 "힘들어 죽겠네"라는 마음이 목구멍을 간질였다. 뜨거운 태양빛에, 아스팔트 열기에, 땀은 뚝뚝 흘러내리고 숨은 턱턱 막히니 동기들도 많이 지쳐버렸는지, 우리는 모두 아무 말 없이 인상을 쓴 채 뛰기만 했다. 정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수십 번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다. 이 와중에 한강은 또 왜 이렇게 예쁜 건지... 더는 달리기 힘든데, 여적 달려온 게 있으니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포기만은 안된다며 스스로를 격려하며 끙끙거리길 한참, 저 멀리 출발점이 다시 보였다. 곧 "이제 포기는 글러먹었어, 그냥 끝까지 달려! 파이팅"을 외치는 한 동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다시 힘을 내어 꾸역꾸역 출발선까지 뛰어본다.


너무 덥고 힘이 들었던 모양인지 우리는 완주메달과 간식을 받아 그냥 바닥에 털썩 주저 않아버렸다. "아, 두 번 다시 안 한다", "하프는 무슨 하프야, 10킬로미터도 죽을 뻔했어"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멍하게 앉아 받아온 물과 초코파이를 입속으로 욱여넣고는 서로를 바라보며 장난기 가득 웃고야 말았다. 아마 말은 그렇게 농담처럼 던져 놓았지만, 그래도 해냈다는 만족감과 함께 달리며 서로에게 든든한 의지처가 되어준 서로에 대한 고마움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번째 마라톤은 무사히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힘든데 즐겁고, 하기 싫은데 또 한 번 해보고 싶은 알쏭달쏭한 경험, 10킬로미터를 뛰기만 했는데 왜 인지 세상과 조금 가까워진 것만 같은 경험이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며 나는 발바닥이 너무 아파 남편에게 꼬박 1시간을 주물러 달라고 징징거려야 했지만, 다음에 우리의 달리기 실력이 보다 단단해지고 멋져진다면 우리도 그런 봉사를 해보자고 했던 동기의 말이 떠올라 괜히 마음이 다시금 뭉클해져 왔다. 왠지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멋진 꿈을 꾸며 꿀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박리라의 안중근 평화마라톤 10K 완주메달(202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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