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때였다. “꾸루룩 꾸루 꾸루루룩~~~~” 뱃속에서 꾸룩대는 소리가 심하게 났다. 음식을 잘못 먹고 탈이 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계속 뱃속에서 요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짝꿍이었던 여학생에게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빨개졌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돌이켜 보면 건강했던 장을 가졌던 나에게 긴장감과 불안감으로 인한 과민성대장 증후군의 출발이 아니었을까? 중학교라는 낯선 공간에서 심리적인 위축과 긴장이 장을 자극해서 소리까지 심하게 났던 것이다. 그 뒤로 학교생활에 적응한 뒤로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시 그 증상이 심하게 도드라졌다.
처음만 어렵지 적응을 하게 되면 금세 환경에 적응을 한다. 적응을 한다기 보다 포기가 빠른 것일 수도 있다. 무언가에 대한 집착과 집념이 크지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것이고 굳이 내가 물건이든 기회든 취하지 못한다면 내 것이 아니라 생각을 했다. 이러한 성격은 대학 생활까지는 너무 좋았다. 다른 친구들과 수월하게 어울리고 오히려 욕심이 없으니 편하게 나를 대해 주었다. 하지만 강한 집념과 끈기를 요하는 사회생활에서는 반대로 작용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조금 시간이 지나며 그런 성격을 좋은 쪽으로 잘 활용을 했다.
살아가면서 내 것을 빼앗긴다는 것은 상실감과 화가 나기도 하는 일일 텐데 그냥 애초에 내 것이 아니라 여기고 그런 상황에 상처를 크게 받지 않고 무탈하게 넘겼던 것은 자존감이 컸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잘생긴 얼굴이 아님에도 준수한 얼굴의 훈남들과 함께 하며 기죽지 않았고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에게 가지지 못한 활달함이 있어서 오히려 분위기를 주도했고 부잣집은 아니어도 언젠가 꼭 성공해서 떵떵거리며 잘 살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느낀 건 내 삶이 아닌 가족을 위한 삶 타인을 위한 내가 되어가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회사와 상사를 위해 일을 하고 (물론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회사에서 번 돈은 나를 위한 것을 사기보다는 자식들과 가족들을 위해 쓰이고 나의 존재의 가치보다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렇다고 나 자신이 슬프거나 초라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늘 없는 환경에서 이렇게까지 잘 버티고 자라서 여전히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나 자신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이런 자존감을 나의 자식들에게도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나보다 더 큰 자존감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더 당당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요즘 사춘기가 목전에 온듯한 첫째를 보며 늘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아빠도 쫄보에 늘 일어나지도 않을 근심과 걱정을 달고 살았는데 이렇게 잘 살고 있잖아~ 아빠는 아빠 자신을 사랑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건 너 자신이야“ 가끔 숙제로 지친 딸아이를 달래주기 위해 늦은 밤 자전거를 태우고 군것질을 하러 편의점에 가면서 이 말을 전했었다. 그 의미와 진심이 전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다가올 삶의 시련을 마주했을 때 이 말이 떠올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