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아빠 우리 이사 못 가?

by 고카



“소이야~ 우리도 닌텐도 살까?”친구 집에 가서 닌텐도에 빠져있는 동생의 사진을 보고 있던 소이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소이의 대답은 나에게 주먹 한방을 날린 듯했다. ”아빠 그거 사면 우리 이사 못 가?“

시골에서 재래식 화장실에 살던 내가 서울 산다고 하면 내 친구들은 놀라 하는데 심지어 잠실이라고 하면 부러움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살고 있는 아파트가 좀 낡았어 그래서 전세는 저렴해서 온 거야”라고 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거니 하다가 나중에 현실을 비춰주는 사진이나 이야기를 듣고서는 왜 굳이 그렇게 살아야 하나고 핀잔 섞인 이야기를 한다.


이사 오고 나서 두 번째 여름을 나고 있다. 뜨겁게 달구어진 1층 주차장에 놓인 차를 탈 때면 이전에 살던 지하주차장이 있던 아파트가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친구 엄마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나에게 ”여름엔 이렇게 덥고 겨울엔 너무 지독하게 추워서 살기 너무 힘들어요~“라며 볼멘 하소연을 한다. 그 말에 너무나도 극한 공감을 하면서 나에게 ”언제 이사가? 우리 이사 갈 수 있어?“라고 묻는 첫째의 질문은 늘 나의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답은 너무 간단하다. 삶의 질을 따지자면 우리도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을 고집하며 경기도 외각의 새 아파트로 가면 된다. 그런데 서울이 뭐라고 이렇게 붙어 있으려고 하는 것일까? 요즘 들어 현타가 자주 오면서 이도 저도 못하며 몸빵 하며 살게 되는 시간들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지 되새김질을 한다.


그나마 준 신축? 측에 끼는 아파트라도 이사 가려고 알아보면 전세만 하더라도 12~15억을 호가한다. 물론 위치와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면 점점 서울에서 멀어져야 하지만 와이프는 지금에 만족해하고 있고 첫째와 나는 점점 현타속에서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에 점점 머리가 복잡해진다. 현실을 최대한 개선하기 위해서는 부자가 되어야 하는데 현실적인 부자가 되는 방법으로는 내가 투자를 잘하거나 사업을 해서 성공하는 방법인데 그 시도에 대한 성공 확률과 걸리는 시간이 과연 기회비용으로 따지면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할 수가 없다. 내가 뭘 하고 싶고 뭘 잘 하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어지고 점점 현실과 타협해가며 회사에서 ‘노인네‘라며 놀림받으며 하루하루 회사에 나와 월급 루팡으로 지내고 가는 부장급들을 나의 롤 모델로 잡아가고 있음에 저절로 눈이 감기고 찌푸려진 눈살과 미간을 오른손으로 덮으며 한숨을 쉬게 된다. “아빠도 이사 가고 싶어.”라고 딸에게 이야기했다. “그럼 언제가?”라고 되묻는 소이에게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진짜 나 열심히 살았는데 체급이 다른 지역에 들어와 그들과 힘겨운 싸움? 아니 그저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계속 체력만 소진되고 있었다.


나도 이사 가고 싶다. 지하주차장이 있고 커뮤니티가 있는 아파트로. 그런 내 집을 서울이라는 치열한 땅덩어리 위해서 갖기 위해서 오늘도 서점에 투자/재테크 코너를 서성거린다. 다행히 나의 투자는 양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불행인 건 그 양의 기울기가 너무 완만하다. 그렇게 해서 언제 이곳에 집을 살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미래를 그리며 명치를 무언가로 꾹 누른 듯 답답하고 쓰라린 속에 머리마저 두통이 오는듯했다. 성실함을 무기로 답으로 여기며 살아왔는데 그 성실함으로는 현실을 그려낼 수가 없다. 그래서 자꾸 내가 진리라고 믿어왔던 삶의 방식과 투자의 방식 그리고 가치관들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늘 그랬든 인생은 원하는 방향으로 단번에 가지 않는다. 물론 팔자가 좋아 원하지 않아도 잘 풀리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나에게는 세상은 늘 단 한 번에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게 해주지 않았다. 취업과 이직도 남들보다 두세배는 더 많이 지원하고 떨어져서 할 수 있었고 결혼도 소개팅을 50번 넘도록 해서 진짜 인연을 만날 수 있었다. 회사에서도 늘 일복이 터져 변방에서 일하다가 한참 뒤에서야 인정을 조금씩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삶을 되짚어 보니 천천히 꾸준히 가다 보면 목적지에는 도착하게 되기는 하는구나.


”언제라고 아빠가 이야기할 수 없지만 더 나은 집과 환경을 너희에게 주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그 과정에 힘들기도 하겠지만 아빠를 믿고 응원해 줄래?“ 다행히 소이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며칠 뒤 또다시 “우리 이사 못 가?”라고 물었지만 그 녀석에게도 이런 인고의 시간이 언젠가 추억이 되고 좋은 양분이 되기를 바란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7화 85. 너무 잘나면 먼저 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