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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멧새 2 27화

마른 막대

by 최연수

아궁이에 불 지피던

부지깽이인데,

어찌 지팡이라 할 수 있으랴.


종아리를 매 때리던

회초리인데,

어찌 지팡이라 할 수 있으랴.


빨랫줄을 받치던

바지랑이인데

어찌 지팡이라 할 수 있으랴.


노루 친 몽둥이로

삼년을 우린다는데,

어찌 더 우릴 수 있으랴.


소경 막대잡이 감으론

쓸 수 있노라고,

차마 말할 수 있으랴.


하찮은 마른 막대를 짚고

일어서라 하려니,

여윈 손이 떨리는구나.




내 힘만으로 살아가겠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조상(祖上) 탓 환경(環境) 탓을 하지 않기로 하고, 내 능력(能力)과 노력(努力)만으로 일어서려고 했다. 시골에서 지게를 받쳐놓았던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려고 끙끙거리던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러다 저 약한 지팡이라도 부러지면 어떻게 하나? 아슬아슬하기도 했다.

부모(父母)로부터 유산(遺産)도 유업(遺業)도 받은 바 없이, 자수성가(自手成家)하면서, 조그만 오두막이라도 한 채 상속(相續) 받았으면 오죽 좋겠느냐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부질없는 생각 아예 하지 않고 고학(苦學)․독학(獨學)을 했다. 더 높은 탑(塔)을 쌓고도 싶었으나, 식솔(食率)은 많고, 동생들 교육(敎育)을 시켜야 했다. 이어서 결혼하고 나니 처자식(妻子息)들 먹여 살려야 하고, 또 가르쳐야 하지 않은가?

내 하고 싶은 일은 일찍 접고, 그들을 돕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짚고 설 수 있도록 지팡이가 되고, 건너 갈 수 있도록 징검다리가 되자는 다짐을 했다. 그런데 나이 들어 늙고 보니, 나도 자손(子孫)들에게 상속해줄 유산도 유업도 없음을 깨달았다. 짚을 수 있는 지팡이나 넘겨주겠다고 했으나, 막상 이 지팡이를 보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우리 속담(俗談)에 ‘홍두께에 꽃이 핀다’ 하거니와, 아론의 마른 지팡이에서는 새 싹이 났다고 했는데, 꽃이 피기는커녕 이 하찮은 마른 막대기가 어찌 지팡이 구실을 할 수 있으랴. 부지깽이요 회초리요, 바지랑이요 노루 친 막대기로 만든 지팡이인데, 이걸 우려먹고 짚고 일어서라니, 이 여윈 손이 떨린다. 하다못해 소경 막대잡이로는 사용할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소경 소리를 입 밖에도 낼 수없는 것이 아닌가? 짚고 일어서다가 부러지기라도 한다면 이런 낭패(狼狽)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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