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타령
연못 간짓대에서 쉬어볼까
갸웃갸웃,
구부러진 간짓대가 부러지면?
맨드라미 잎에 앉아볼까
갸웃갸웃,
가냘픈 이파리가 바람에 꺾이면?
겁이 나서 휙 날아갔지.
싸리 울타리에서 쉬어볼까
두리번 두리번
부리부리한 눈망울이 매섭다고,
해바라기 꽃에 앉아볼까
두리번 두리번.
발갛게 취한 몸뚱이가 싫다고
푸대접 받고 씽 날아갔지.
여치들 노랫가락에
덩실 더덩실 춤추다가
할미꽃에 살포시 앉았는데,
덩달아 곱새춤 추는 할미꽃
휘어진 허리가 끊어지면?
화들짝 놀라 멀리 날아갔지.
나는 어렸을 적에 몸집도 가냘프고 여린 성격인데다가, 눈이 커서 겁이 많다고들 했다. 그런데 골목대장도 못한 주제에 고추잠자리의 天敵(천적)이요 討伐(토벌)대장이었다. 고추잠자리는 늦 여름부터 초 가을까지 한 철, 떼지어 날아다니는 습성이 있다. 싸리비나 대나무 빗자루로 이를 보는대로 잡았다. 해코지하는 것도 아닌데...가끔 꽃잎이나 나뭇가지 끝에 살포시 앉기도 하는데, 살금살금 걸어가서 꽁무니를 덥석 붙잡으려면, 어느새 눈치 채고 휙 날아가 버리기 일쑤다. 눈이 커서 잘 보이는 것인지 겁이 많은 탓인지...
그런 내가 고추 잠자리가 되었다. 70 대에, 노인 복지관 ‘한국무용’반에 들어갔다. 禁男(금남)의 구역인양 모두들 의아한 눈초리다. 호기심으로 자기 소개를 하라기에
“고추잠자리가 할미꽃과 함께 춤추러 왔습니다...”
모두들 멋쩍은 웃음들. 막상 춤을 추니까 혀를 내두른 게 아닌가? 며칠 후 어떤 남자 한 분이 소문을 확인차 왔노라면서
“꽃밭에 호랑나비입니다요!”
하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아니, 할미꽃 틈에 고추잠자리인데요!”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좀 쑥스럽지만 이렇게 호랑나비가 아니고 고추잠자리로 自處(자처)한다.
이후 10여년 간 이렇게 춤을 춘다. 연말 발표회 때마다 紅一點(홍일점)이라고 인기다. 빨간 고추잠자리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아무튼 복지관의 예능 분야는 여자들로 북적이는데, 그 틈에 홀로 끼어있으니 내가 독특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고추잠자리는 춤추며 날다가 어쩌다 살포시 앉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휙 날아간다. 연못의 屈折(굴절)된 간짓대가 부러지지나 않을까, 가냘픈 꽃 이파리가 살랑 바람에 꺾이지나 않을까 겁이 나는지 오래 머물지 못한다. 한편 머리보다 큰 눈이 매섭다고, 주정뱅이 같이 붉은 몸뚱이가 싫다고 푸대접 받아 쫓겨난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할미꽃에 앉았더니 歡迎(환영)이다. 봄철의 꽃이 왜 늦 여름에 피었을까마는, 이 할미꽃들이 구부러진 허리로 간드러지게 곱새춤을 추는 게 아닌가? 天生緣分(천생연분)이거나 同病相憐(동병상련)이거나.....이렇게 우리들은 Muse 女神(여신)들과 어울려 춤 추고 노래하며, 연극도 하고 그림도 그린다. 머리 염색을 한다고 젊음을 되찾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곱새춤이라도 즐긴다. 늙은이 마음은 늙은이라야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