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쉬고 생각하고
찾아오기가 쉽지 않은 곳. 지하철 5호선 길동역에서 내려, 길바닥에서 한참헤매다가 공원 정문을 찾았다. 중복을 하루 앞두고 32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때문인지, 아니면 변두리이기 때문인지 거리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탐방객 안내센터에 신고를 하고 들어갔다. 매주 토요일,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한다고 알았는데, 단체가 아니면 어느 때라도 입장할 수 있는 모양이다.
먼저 습지 지구로. 잘 마련된 나무데크를 따라 걷는데, 바깥 찜질방과는 딴판인 산골짜기다. 그늘은 없었으나 물이 그득 차있는 연못 때문이겠지. 부채도 밀짚모자도 필요 없다. 뱀을 조심하라는 푯말은 서울 근린공원에서 처음이다. 한강물이 아니고 끌어올린 지하수가 수로를 따라 흐르면서, 물웅덩이․수로․갈대밭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크고 작은 열 군데의 연못마다 제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다. 키를 넘는 갈대와 소시지를 붙이고 있는 부들을 비롯해서, 노랑어리연꽃 등 온갖 수생식물이 잘 자라고 있다.
빈틈없는 수생식물로 인해 물 깊이도 가늠할 수 없고, 수상스키를 즐기는 소금쟁이 외에는, 물고기나 개구리를 비롯한 수생 곤충도 구경할 수 없는 게 퍽 아쉬웠다. 안내판에는 각종 곤충이 서식한다는데....다만 여러 가지 종류의 실잠자리를 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밖에. 어렸을 때 흔히 보았던 게 아닌가? 특히 뙤약볕 아래서 밀일(密日=honey sun?)여행을 즐기는 커플들이, 수줍음 없이 내 앞을 자랑스럽게 비행하고, 꽃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나비들도 끈질기게 러브 콜 비행을 하고 있군. 생명이 충일한 이 습지대에도 어김없이 생로병사가 되풀이 되겠지. 최초로 진화한 곤충이 잠자리라는데, 우리나라에는 100여종 중 40여 종이 여기에 살고 있단다.
구불구불 목제 데크를 따라 연못을 돌아보는 동안 이상하리만치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산림지구에 들어서면서 난데없이 한 사람과 맞닥쳤다. 이런 으슥한 곳에서 반갑다기 보다는 왠지 두려운 느낌. 6.25 전쟁 피신 길에서와 같이. 내가 여자였다면 아마도 소스라치게 놀랐을 것이다. 최근 제주 올레길 사건처럼 성범죄 문제로 몹시 시끄러운 요즘 세상에선 말이다.
이름표도 달지 않고 제멋대로 자란 나무들이 빽빽하다. 보아하니 흔한 잡목들이다. 손가락으로도 가릴 수 있는 하늘이 드문드문 보일뿐 어두컴컴한데다가, 서늘한 게 열대지방에서 냉대지방으로 여행 온 느낌. 매미 소리도 없이 괴괴한 게 이상하다. 이런 곳이 곧 버섯들의 요람일까? 식용인지 독버섯인지, 이름 모른 버섯들이 갖가지 모양의 갓과 우산을 쓴 채 나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루터기만 남아있는 죽은 나무, 늙어 쓸모없는 고목에서 자라고 있는 버섯! 목질부의 섬유소를 분해하여 먹고 산다는데, 무슨 영양분이기에 향 좋고 맛있는 버섯으로 우리의 식탁을 장식할까? 사람도 늙거나 죽은 후에 더욱 향기를 풍기고 맛을 내야지. 권오길 지음 ‘자연계는 생명의 어울림으로 가득하다’는 책 이름을 되새겨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반딧불이 관찰장. 7,000여 마리를 방사하고 있다는데 아쉽게도 통제 구역이군. 출입을 한다 해도 대낮에 관찰하기는 어렵겠지. 차윤을 흉내낸답시고 반딧불이를 모아 공부하려 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 6.25전쟁 피신하는 밤길에서 깜박거리던 그 반딧불! 사람이 호랑이보다 더 무서웠던 그 때, 개천 건너편 논두렁에서 맞닥뜨린 불빛! 담뱃불로 착각하고 털썩 주저앉아 콩닥거리던 가슴을 움켜쥐며 벌벌 떨었었지. “십년 감수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아버님의 얼굴이 또 떠올랐다. 때마침 오늘이 휴전 60주년 되는 날이군. 북한에서는 굶주리면서도 ‘전승절’로 대단한 경축행사를 하는데 우리는? 밤이 되면 불빛 향연이 장관일 텐데 아쉽다.
갑자기 요란한 새 소리. 환청이 아니다. 숲속을 거닐 적마다 얼마나 그리워했던 노래인가? 생명의 찬가요 자연의 송가인 수많은 박새들의 교향악이다. 조류 관찰대를 통해서 엿본 이곳이야말로 자유와 평화의 동산이다. 로마교황청처럼 숲속에서 독립된 조류공화국인 셈이다. 작은 관목 사이로는 찌르래기가 날아다니고, 까투리 한 마리가 풀섶으로 쪼르르 숨어든다. 어디선가 장끼가 망을 보고 있겠지. 이곳을 벗어나니 또 다시 숲이 적적해졌다.
저수지 지구. 공원 전체에 물을 대는 넓은 저수지다. 어류와 조류의 생육과 번식을 위한 시설이라는데, 역시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 조류 관찰대를 통해 오리 한 쌍만 보았다. 어디선가 왜가리나 두루미가 날아올 것만 같은 아쉬움만 남긴 채 이동.
초지지구. 어느 농가를 축소시켜 놓았다. 원시시대의 움집 같은 초가 한 채가 주거라 하기에는 미심쩍다. 원두막에서 두 여인을 만났다. 이 넓은 공원에서 두 시간 동안 고작 두 번 째. 나는 반가웠으나, 그들은 불쑥 나타난 외간 남자를 경계했으리라. 논의 벼이삭은 물론 갖가지 곡식과 채소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설마 농약을 쳤으랴. 맨드라미와 꽈리를 비롯해서 농촌의 야생화들도 지천에 피어 있다. 토양곤충관찰대의 손잡이를 들어올리니, 지렁이 등 각종 땅속 동물들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구나. 밤이 되면 논에서 개구리들의 교향악이 연주된다는데.....어린이들의 생태학교로 아주 좋은 시설이다. 교통만 편리하면 자주 오고 싶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