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쉬고 생각하고
모처럼 딸내미․손자와 함께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하림각 앞에서 내렸다. 약간 쌀쌀한 날씨여서 등산에는 안성맞춤. 창의문 도성 밖 언덕길을 넘어가니 곧바로 부암동. 동네 할아버지의 안내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삼각산 현통사 앞을 지나 발 가는대로 따라갔다. 언덕배기에도 드문드문 집들이 있는데, 휀스를 따라 갔더니 인적도 없고 길이 뚝 끊어졌다. 되돌아 와 다른 길로 올라갔다. 역시 인적이 없고 시드럭부드럭 사위어가는 풀잎만 무성한 오솔길.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는 셈. 아이들이 투덜거릴 때마다 너스레를 떠는데, 다행히 씩씩한 청년들을 만나 뒤 따라 갔다.
과연 등산 차림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가을 가뭄 탓인지 골짜기 물이 자작자작 흘러내려 다소 실망스러웠다. 조금 더 올라가니 넓은 골짜기에 사람들이 왁자지껄했다. 마침내 백사실 계곡에 들어선 것이다. 여기저기 그늘 아래 앉아 점심을 먹는 사람, 단체로 온 젊은이들이 레크레이션을 하기도 하였다. 두루 살펴보니 주춧돌이 보인다. 드디어 별서(別墅) 터다. 조선시대의 격조 높은 건축 양식이라는데, 돌계단 위로 육각정 건물은 없고, 정육각형 모양으로 6개의 커다란 초석만 남아 있다. 별서 담장 안쪽 내원에는 타원형 연못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바닥이 드러난 마른 못에 잡초만 자라고 있었다. 담장 바깥쪽 외원은 자연석과 깬 돌을 이용해 높이 1m 정도의 호안을 쌓았다고 한다.
이 담장을 감돌아 흐르는 계곡 물과 탕탕한 폭포는 주변 산세와 어울려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었다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조선시대의 유명한 재상 백사(白沙) 이항복의 별장이었다는 전설이 서린 곳. 이곳을 찾는 사람은 빼어난 경관보다는, 그의 인품을 알고 왔지 않았을까? 나는 국민학교 시절 ‘오성과 한음’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송곳으로 뛰는 벼룩을 잡았다는 둥, 높은 벼슬아치 집 방문을 주먹으로 뚫어 보이며 누구 손이냐고 물었다는 둥.... 한 두 가지 외에는 기억에 없는데, 재주꾼이요 별난 장난꾸러기였다는 것만은 지금도 머리에 박혀 있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랐으나, 결혼 후 열심히 공부하여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고, 재상 벼슬까지 지내면서 덕치로 나랏일을 잘 돌봤다. 오성(鰲城)은 오성부원군 시절의 별호인데, 호보다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갖가지 돌출 기행 중 선본 이야기는 압권이다. 박달재 조각공원의 동상에서 보듯이, 선보러 온 점잖은 분에게 속내까지 다 내보이겠다며 바지춤을 홀랑 내렸다는 것. 이 동상을 훔쳐보는 여인들은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그리고 자기도 색시 감을 선보러 가서 속내까지 보겠다며, 그 치마폭 속으로 머리를 들이 밀었다니, 이런 해괴한 변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그래도 그는 권율장군의 사위가 되었다. 죽마고우인 한음(이덕형)과 함께, 해학과 풍자․기지와 재치․재담과 농담은 막상막하의 실력이었으며, 심지어 얼굴이 화끈거리는 음담패설도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백석동천. 음각 각자 바위가 뚜렷하다. 기암괴석은 아니지만 매끈한 흰 바위 위로 북악에서 발원한 맑은 옥수가 흘러내리면서 폭포를 이루었다고. 이렇게 백악의 산천으로 둘러싸였다니 그럴법한 이름이다. 동천(洞天)이란 신선이 놀다 갈 정도로 경치가 좋은 곳이란 뜻이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여기에 자리잡았지만 우리는 계속 올라갔다. 멧돼지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을 정도로, 인적이 뜸한 호젓한 골짜기까지 깊이 들어간 셈이다. 북악산이 손에 잡힐 것 같았다. 이건 산책이 아닌 등산이다. 마침내 회화나무에 둘러싸인 약수터에서 쉬기로 하고 요기를 하였다. 어떤 분이 약수를 뜨면서, 묻지도 않은데 노대통령이 탄핵 받았을 때, 이곳에서 쉬면서 빼어난 경치에 감탄했다고 했다.
내려오는 길은 드러난 나무 뿌리와 왕모래가 위험해서 조심조심. 이 백사골짜기에서 도룡뇽․버들치․산개구리․두꺼비 따위가 살고 있다면 마실 수 있는 청정수이고, 서울환경연합에서 ‘생태보전지역 1호’로 지정한 곳이라고 한다. 송사리 떼들은 많았으나 새끼 가재 세 마리만 잡고 다시 놓아주었다. 손자 녀석은 떨어진 밤알을 줍느라고 바쁘고, 나는 울창한 고목들 이름을 대느라고 바빴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와 신선한 공기에 도취되어 있으면서도, 이따금 백사의 기발한 퍼포맨스를 보고 있는 것 같이, 산을 오르내리며 실없이 혼자 웃었다.
현통사를 지나 신영동 힐탑빌라를 지나니, 일붕조사문이 나타났다. 갈 때와는 다른 길이다. 사잇길로 빠져나와 언덕길을 올라서니, 맞은편 북악산․인왕산 성벽의 일부가 보였다. 다리가 뻐근함을 느꼈다. 백사의 발자취가 남아있고, 숨결이 배어있는 백석동천에서의 하루가 참으로 보람있고 즐거웠다. ‘오성과 한음’을 다시 읽어 봐야겠다. ‘명문가의 장수 비결’에서 우암 송시열은 어린이 소변을 마심으로 어혈을 풀었다 하고, 성호 이익은 소식과 콩죽․콩장․콩나물 곧 삼두회를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백사 이항복은 유우머로써 면역 기능을 강화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코미디와 개그계의 원조가 아닐는지. 그의 넓은 식견과 인생을 관조하는 자세, 낙천주의적인 성품이 북악과 함께 더욱 우러러보인다.
하루 잘 쉬었다가 갑니다. 다시 뵐 때까지 백사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