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아소 / 포토그래퍼 조아
* 서연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영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해?
창문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 우리가 창문 너머를 관조하듯 그냥 보기도 하고, 창을 열어 그 바깥의 것들을 직접 마주하기도 하잖아. 영화가 나한테는 그래. 어떤 세상, 혹은 누군가의 삶의 일부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창문인 것 같아.
영화를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연출을 중요하게 보는 편이야. 카메라 워킹이나 사운드, 색감 같은 것들. 소설로 따지자면 문체지. 작품의 골조를 구상하는 건 물론 스토리지만, 거기에 어떻게 살을 붙일지는 연출이 좌우한다고 생각해.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사소한 완성도가 달라지니까.
어떤 영화를 좋아해?
사랑 이야기를 좋아해. 단순히 멜로 영화만을 얘기하는 건 아니고. 사랑은 모든 감정을 품고 있다고 생각해. 괴로움도, 질투도, 불안감까지도 전부 무언가를 사랑해서 생기는 거니까. 그런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아.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보면 늘 <헤어질 결심>을 꼽는데, 보면 볼수록 서래의 감정선을 따라가게 되거든. 서래가 왜 이런 행동을 했고, 왜 이렇게 말을 했을까. 그런 것들을 계속 곱씹다 보면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도 점점 넓어지는 기분이라서. 그래서 사랑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들을 좋아하게 됐어.
‘성장’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영화가 있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떠오르는데, 불완전한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어주며 사랑하는 이야기야. 주인공인 엘리오와 올리버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이를 부정하고, 갈등하고, 결국 사랑을 확인하다가 종내에는 이별하는 장면까지, 그 감정선이 정말 섬세하게 표현된 영화야.
엘리오의 성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이별 장면이야. 올리버가 타지로 가게 되면서 둘은 첫 번째 이별을 겪는데, 엘리오는 처음 느껴보는 이별의 괴로움과 불안감을 어머니께 전화해 아이처럼 목놓아 우는 걸로 표출해. 그리고 시간이 흘러 겨울, 올리버가 전화로 결혼 소식을 전해와. 줄곧 그를 기다려 온 엘리오에게는 두 번째 이별인 셈이지. 이때의 엘리오는 벽난로를 보며 홀로 눈물을 흘려. 이별의 슬픔을 온전히 느끼면서도 성숙하게 받아들이게 된 거지. 엔딩 크레딧이 나오는 4분 내내 이 장면이 계속되고, 엔딩 음악과 벽난로 타는 소리로만 배경음이 구성되는데, 엘리오가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스크린 너머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어.
영화를 너의 성장에 빗대어 본다면 어때?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내가 더욱 커 간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영화에서도 그 이야기를 다뤄줘서 확신을 얻은 느낌이었어. 엘리오가 첫 번째 이별을 겪었을 때 아버지가 이렇게 조언하시거든. “우리에게는 몸과 마음이 단 한 번 주어지지. 마음은 갈수록 닳아 헤지고 몸도 똑같아. 지금 너의 그 슬픔과 괴로움을 모두 간직하렴. 네가 느꼈던 기쁨과 함께.”
나는 교내 신문사에서 편집장을 맡고 있는데, 지난 학기에 썼던 취재후기에 동료 기자가 ‘서연 기자님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모든 감정을 충분히 생각하고 느끼고 소화하시는 것 같다’는 감상평을 남겨준 적이 있어. 그걸 보면서 엘리오 생각이 나더라고. 신문사에서 보낸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전에 없던 다양한 일을 맞닥뜨렸어. 그 과정에서 나 스스로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많이 힘들었어. 지금도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데 불완전한 내 모습도 결국은 나라는 걸 인정하게 되고, 그걸 받아들임으로써 더욱 단단해지는 나를 발견했어. 요즘은 그런 내 모습이 싫지만은 않게 됐지.
영화 속 계절의 쓰임이 기억에 남아. 이탈리아의 여름을 배경으로 하거든. 영화 자체의 색감과 음악이 여름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보여주기도 했지만, 엘리오가 올리버를 만나며 겪은 여름의 열병이 정말 아름답게 그려져. 본래 겨울을 좋아했던 엘리오는, 미성숙했던 자신의 세상을 넓혀준 그 사람을, 그 사람이 곁에 있던 그 뜨거운 여름을 사랑하게 되지.
나도 어릴 때 겨울이 되게 좋았어. 겨울이 주는 포근함도 좋았고, 누군가 나를 겨울이라는 별명으로 불러줬었거든. 그런데 커 가면서 여름에 행복했던 기억이 많이 쌓였어. 가족들과 해외에서 만든 추억들, 땡볕에도 친구들과 뛰어놀던 시간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여름을 가장 좋아하고 있더라고. 기억이 계절에 부여하는 가치를 바꾼 거지. 엘리오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었어.
인터뷰어 아소 / 포토그래퍼 조아
2024.08.16 서연 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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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