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휴스꾸 Sep 30. 2022

애정 어리게, 나의 희망에게

인터뷰어 진경



* 아시안 테이블의 김진훈님과의 인터뷰입니다.


학교 앞 골목 깊숙이 위치한 가게 아시안 테이블. 첫 만남은 향이었다. 익숙하지도, 맛을 보지도 않았지만 ‘맛있다’고 칭하게 되는 그 특유의 향에, 절로 고개를 돌려 간판을 바라본 기억이 있다.

기진맥진한 발걸음으로 하교를 하던 나는 단 몇 발자국을 더 옮겨, 혜화 속의 동남아로 들어선다.




시작

 원래 은행을 다녔어요. 그러다가 같이 다니던 친구와 비슷한 시기에 퇴사하게 됐는데, 술자리에서 사업 얘기가 나왔어요. 당시 퇴직금 받은 것도 있고,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사업을 영영 못 해볼 것 같으니까 같이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 그럼 무슨 사업을 할 거냐. 동남아 주점 컨셉으로 술집 겸 밥집을 하자, 했는데 오픈하고 한 1~2주 됐나. 손님이 거의 없는 거예요. 안 되겠다 싶어서 낮에도 열기 시작하다가, 이제 술보다는 거의 밥집이 되었죠.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비해서는 준비 기간이 부족했어요. 저희가 처음 술자리에서 장난스럽게 얘기하고 나서 한 달 만에 오픈했거든요. 저랑 제 친구가 둘 다 성대를 나왔어요. 그래서 성대 앞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죠. 근데 그게 큰 실수였어요. 성대에서 밥집을 할 거면 쪽문에 갔어야 했는데. 처음엔 너무 서툴기도 했고, 우리 음식을 돈 주고 사 먹을 만한가에 대한 의구심도 있었어요. 초반에 와 주신 손님들께 다 감사하죠.

 집에는 아예 말씀도 못 드리고 직장을 그만뒀어요. 어차피 다른 직장으로 이직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있었던 것 같고, 사업도 무조건 반대하실 테니 가게 오픈하고 말씀드렸죠.



동남아 음식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우선 전혀 요리를 할 줄 몰랐었다가, 군대에서 보급병이었거든요. 취사병이 부족하다고 도와줄 사람을 구하는데 손을 들어버렸죠. 그게 지금 여기까지. 그때 처음으로 칼질이나 기본적인 것들을 배웠어요.

 그러고 제가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갔을 때 동남아 음식을 파는 푸드코트 같은 데서 일했어요. 거기서 따로 레시피를 배운 건 아닌데, 전체적인 시스템을 눈에 익히고 온 상태였어요. 그때 한 번 해봤으니까 자신도 있는 거예요.

 이름 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파는 음식들이 태국 음식에 국한돼 있으면 태국 관련 이름을 지었을 텐데 그렇지가 않아서 애매하더라고요. 나시고랭은 인도네시아 음식이고, 버터새우는 말레이시아 음식, 싱가폴로는 또 싱가폴 음식. 그래서 친구랑 같이 이야기해서 정한 게 ‘아시안 테이블’이에요. 아시아 음식을 전체적으로 포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테리어 철학 / 어떤 장소로 기억되고 싶나요?


 기본적으로는 파인 다이닝을 할 수 있도록 음식이 맛있는 곳으로 기억되고 싶고요. 요즘에는 이국적인 느낌을 확실하게 주고 싶어요. 맥주 병이나 외국의 긴 소스류들을 쌓아 놓고, 벽들도 새로 단장할 예정이에요. 그리고 아예 바깥 풍경을 차단하고 싶어서, 통유리에 블라인드를 치거나 밖에 화분을 많이 놓을 생각입니다. 이곳에 들어왔을 때만큼은 바깥 한국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스트레스를 좀 잊고,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편안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지금 추진하고 있는 인테리어의 목표예요.



브레이크 타임엔 뭐하세요?


 코로나 초기에는 되게 무기력하게 있었어요. 준비해봐야 손님이 많이 안 올 텐데 브레이크 타임에 힘 써서 준비할 이유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그 때는 주로 낮잠을 자거나, 앉아서 생각 없이 휴대폰을 보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사람들이 점점 코로나에 적응하니까 매출이 천천히 다시 올라가더라고요. 그렇게 조금만 바쁘면 준비한다고 또 정신이 없어요.

 


작년 가을과 비교해 달라진 점?


 코로나 전까지는 적자 경영을 한 번도 안 했어요. 그런데 대출도 하고, 그만큼 또 과감하게 투자하다 보니까 오히려 사업이 어떤 건지 알겠다는 느낌이 들어요.

 또 작년과 비교했을 때는 항상 재난영화 속에 살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오히려 작년보다 더 희망이 많이 보여요. 위기를 겪고, 견뎌내는 과정에 있다 보니 희망이 더 많이 보이고 하고 싶은 게 더 많아진 느낌이에요. 다 같이 고생하고 힘든 시기니까. 이 위기를 견뎌내면서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저희 같은 경우에는 원래 학생들이 쪽문으로 밥을 먹으러 많이 가다 보니 2017년 말부터 배달을 하고 있었는데, 거리 두기 2.5단계 때는 오히려 배달이 엄청 늘었어요. 풍선효과처럼. 홀이 엄청 줄어든 대신 배달이 또 늘었죠.



힘들 땐 어떻게 하나요?


 저 같은 경우에는 혼자 있으면 위험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정말 친한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한테 연락해서 만나려고 하는 편이에요. 해결책을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다 털어놓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얘기하고 위로를 받는 것만으로도 약간 해소가 되고, 정말 해결책을 주는 사람도 있고요. 힘들 때일수록 밖으로 나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아무 이유도 없이 우울해질 때도 있었는데, 밖으로 돌며 사람을 만나니 기운이 생기고, 내가 일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어떤 목표를 가지고 계세요?


 단기적으로는 일단 이 가게를 성공시키는 게 목표예요. 성공의 기준은, 제가 없어도 이 식당이 돌아가는 것. 그리고 장기적인 목표는 학교 앞마다 하나씩 가게를 내는 거예요. 조금 더 상황이 회복되면 다시 해보려고요.

 성대 학생들도 당연히 후배들이니까 애착이 가요. 그래서 처음에는 “아시안 테이블 스토리 장학금”이라는 걸 했어요. 마케팅 개념으로. 사연을 보내주면 현금을 주는 거였는데, 두 번째 할 때 아무도 지원을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충격 받고는 바로 접었어요. 역시 음식점이니까 맛있는 음식으로 보답을 하는 게 정석이다, 싶었죠.

 항상 그런 걸 해보고 싶었어요. 사회적 기업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관심에 비해 그런 기업에 깊이 참여를 하거나, 공부나 연구를 하지는 않았어요. 때가 돼서 별 생각 없이 취업을 해버렸는데, 그래서 회사도 길게 다니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런데 퇴사하고 나서 음식점을 하면서 내 가치관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거 같아요. 장학금 이벤트도 학생들과 최대한 교류하는 음식점을 만들고 싶어서 했던 거예요. 저희 매출 대부분이 성대생이라서. 나중에 부자가 되면 번 만큼 성대생들에게 환원하고 싶어요. 그런 선순환을 일차적으로는 우리 가게에, 장기적으로는 학교들 앞에 다 만들고 싶어요.

 또 음식점은 상권이라는 게 있으니까. 괜찮은 음식점이 돼서 매출이 괜찮게 나오면, 그 지역사회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받은 만큼 지역사회에 공헌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자꾸 목표를 가지고 중요한 가치들을 이루려고 하는 게 지금의 원동력인 거 같아요.  



사업을 위한 마인드


 사업이 빠르게 성공하지 않아도 견딜 수 있다, 할 때 사업을 시작해야 하는 것 같아요. 재정적으로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주변 친구들이 결혼으로 하나 둘 씩 떠나가는 거, 그게 처음에는 제일 힘들었어요. 어떤 친구들은 빠르면 벌써 애기도 있어서, 애기들 데려와서 가게에서 밥을 먹는데 그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이는 거예요. 나는 언제 저렇게 되지, 내가 선택한 이 길 때문에 내 삶이 크게 잘못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걸 다 극복할 수 있어야 사업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인정하게 된 것 같아요. 이 길을 내가 택했으니까, 그 선택에 따라오는 삶의 방향성의 변화도 내가 책임져야 한다. 지금 그만두고 회사로 돌아가서 평범한 삶을 살아갈 것이냐, 힘들어도 계속 이걸 할 것이냐 선택지가 주어지더라도, 어차피 이 길을 선택할 거기 때문에. 요즘은 그래도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해 나가고 있어요. 만약 내 결과가 실패로 결정되어 있는 걸 내가 안다면 못 참겠죠. 그런데 항상 조금씩, 조금씩 희망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잘 참고 견디고 있는 것 같아요. 친한 친구가, 아테(아시안테이블)는 항상 “희망고문 하는 가게”라고 그랬거든요. 잘 되려면 확 잘되고, 망하려면 확 망해야 하는데, 어정쩡하게 잘될까 봐 걱정이라 그랬어요. 근데 그렇게 어정쩡하게 잘된 게 지금까지 딱 3년 정도 이어져왔어요. 3년을 하고 나서야 이제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게 많아진 거예요. 이젠 정말 다 갖춰진 것 같다는 마음.

 그런데 예전에도 항상 ‘지금은 다 갖춰진 것 같다’고 말을 했거든요. 이 말이 이렇게 반복되는 거 보면, 늘 새롭게 할 일이 생겨나는 것도 같아요. 요즘엔 마케팅에 혈안이 돼 있어요. 어떻게 가게를 알릴 것인가.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모든 걸 품기엔 우리는 유한하다.

그래서 집중하여 가지를 하나씩, 조심스레 쳐 낸다. 몇 개의 중요한 메뉴에 정성을 기울이는 것처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가지 단 몇 개를 지키기 위해서.

‘정성을 바친다.’ 인터뷰 내내 떠오른 말. 무모했더라도, 가끔은 힘에 부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게 문이 열리면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장님의 정성. 그것이 있는 한 끝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정성을 들이는 오늘과, 그에 따라 기대하게 되는 내일이 있을 뿐.




인터뷰어 진경

2020.09.24. 아시안 테이블 인터뷰 (edited by 인터뷰어 아뵤)




*휴스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휴스꾸 인스타그램

-휴스꾸 페이스북 페이지

[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이전 08화 집소성대 대가곱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