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지옥의 문으로 들어서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통과됐을때 대한민국의 많은 직장인들이 기뻐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법'은 역시나 힘 없는 약자들을 배신했고, 그들을 지켜주기보다 사회 밖으로 내쳐지게 만들었다. 어마 무시한 2차 피해가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들을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고, 회사를 그만두게 하고, 사회로부터 철저히 격리시켰다.
소변줄을 달고 병실에 누워있는데 포털 사이트에 가입되어 있던 밴드에서 10년 전 추억이라고 알람이 떴다. 물론 내가 이 밴드에 가입이 되어있는지도 전혀 몰랐었다. 학창시절 친하게 지냈던 고향친구들이 몇명이 모여 만들었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각자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자 서로 소통하고 지내자는 의미였나보다. 아무튼 알람과 함께 이 글을 보니, 지금 내가 왜 소변줄을 달게 됐는지 쉬이 알게됐다.
내가 신입사원일 때부터 상사로부터 이유 모를 괴롭힙과 인신공격성의 발언들을 들어야만 했다. 내가 저 글을 올렸을때면 입사하고 5개월차 수습사원 일 때인데 그 선배는 왜 그렇게 나를 째려봤을까? 전날 늦은 밤까지 선배들과 술자리를 하고 겨우 출근하기도 바빴을텐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그리고 사실 그 선배는 여전하다. 한번은 내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에게 서류작업을 시켰는데 터무니없는 이유로 자꾸 트집을 잡고, 멍청하다느니, 서울에서 대학 나와서 그 정도밖에 안되냐는 둥..선배로부터 이미 온갖 모욕적인 말을 충분히 들었던 때였다. 나도 더이상은 안되겠다 싶어서 상황에 대한 나의 논리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러자 돌아오는 상사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이 사람은 대화가 통하질 않는 사람이구나. 그냥 내가 후배인 게 싫은거구나' 라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자기가 생수를 사오라고 했는데 왜 옥수수수염차를 사왔냐고 혼나기도 했고, 프로그램 첫 방송 전에 촬영팀과 회식을 했다는 이유로 혼나기도 했다. 조연출이긴 해도 나도 엄연히 프로그램의 담당PD였고, 힘든 야외 촬영 끝나고 스태프들과 삼겹살을 먹은 게 왜 잘못인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체 회의를 하던 날, 그는 작가들이 보는 앞에서 나를 심하게 나무랐다. 첫 방송도 안 했는데 회식을 하는 게 개념이 없다나 뭐라나..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선배 프로그램의 조연출을 하는 동안 나는 여러번 죽음을 생각했다. 편집실 복도를 따라가면 조그만 야외 테라스로 이어졌는데, 겨우 4층 높이였지만 그 밑을 보면서 '여기서 떨어지면 죽을까? 반신불구가 될까?' 그런 무서운 생각들을 수도없이 했다.
새삼 기억을 끄집어내어 이렇게 글을 쓰니 아직 못다 한 말들이 너무 많다.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앞으로 차차 기록해봐야지. 마주할 때마다 아프고, 쓰리지만 언젠가는 그 상처들을 다 꺼내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발라줘야겠다. 나를 위해서. 더 건강하고 의미있는 회사 생활을 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