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우깡PD Aug 26. 2022

뻔뻔한 사람이 되자

직장에서 생존하는 방법 

아침 운동 가기 전, 커피 수혈이 필요했다. 모처럼 일찍 일어났으니 반백수인 나도 오늘은 5000원짜리 커피를 사 먹을 자격이 있다고 되뇌며 카페로 향했다.


아이스 커피를 시원하게 한 모금 들이키고 카페를 나섰다. 골목을 들어서는데 아뿔싸, 저 멀리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회사 다른 부서의 부장님이었다. 순간 카페로 다시 되돌아갈까 망설였지만 그건 또 예의가 아니니까. 씩씩하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누구?”


내가 마스크를 벗고 씨익 웃자 그제야 나를 알아본 부장님.


“아, 마스크를 쓰니까 통 누군지 못 알아보겠네. 이게 누구야!”

“하하. 그러니까요. 이 시간에 부장님을 여기서 만나다니. 어디 다녀오세요?”

“응, 5.18 민주항쟁 유적지가 집 근처에 있어서 여기가 늘 궁금했거든. 오늘 쉬는 날이라 운동 겸 다녀오는 길이야.” 


여름날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평일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회사 동료인 부장님과 내가 한적한 주택가 골목에서 쉬이 마주칠 시간은 아니었다. 그렇게 조금은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부장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올해 말까지 회사 쉬기로 했다며. 몸은 괜찮아?”

“네, 열심히 회복하고 있어요. 건강해져서 돌아가야죠.”

“회사 오래 다니려면 사람이 뻔뻔해져야 돼. 죄 지은 사람처럼 기죽지 말고, 고개 빳빳이 들고 다녀. 행여 그만둘 생각 하지 말고 그냥 뻔뻔해져.”


“부장님, 저 회사 그만두지 않으려고 지금 쉬는 건데요?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걱정 마세요.” 하고 애써 웃으며 대화를 넘겼다.


그 후로도 우리는 30분 가까이 골목길에서 한참을 이야기했다.


부장님은 쉬는 동안 공부든 운동이든 자격증이든 하나의 목표를 세워서 달려야 한다고 했고, 때로는 여행도 다니고, 열심히 건강도 챙겨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회사가 다른 회사에 비해 얼마나 체계적이지 않고, 발전이 없는지에 대해 비난하면서도 우리 회사만큼 다니기 좋은 곳은 없다고 했다. 역설이 난무하는 부장님의 말 속에서 나는 하나의 단어만 맴돌았다. 


“뻔뻔해져라”


입사 때부터 자주 들어온 말이 있다. ‘방송국은 말이 많은 곳이니 항상 조심할 것’. 선배들은 내게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당부했다. 나는 원래 남 뒷담화 하는 걸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남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라 흘려 듣기 일쑤였다. 그리고 누가 나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많고, 할말이 많으며, 욕을 하겠는가? 

하지만 직장인 10년차가 되고 보니 결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고, 진실은 거짓으로 난무하는 곳. 

그것이 가능한 곳이 조직이고, 회사였다.


회사 내에서 얽힌 이해관계와 정치적 상황, 세력 다툼 속에서 피해자는 무조건 생길 수 밖에 없고, 그 억울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일은 너무도 흔하다는 것. 부장님 말씀의 요지였다.  


앞에서는 너의 편을 들어주고 응원해주는 회사 동료들이 뒤에서는 바로 너의 적이 될 수 있다. 회사에 없는 동안 사람들은 너에 대해 많은 오해와 추측을 하겠지만, 그런 뒷말은 곧 잠잠해지니 아무 일 없다는 듯 회사를 다니라고 했다.




지난 주, 3개월의 짧은 병가가 끝나고 휴직을 연장했다. 


적어도 올해 말까지는 내 몸과 마음 회복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갑작스레 병가를 내자 주위에서 많은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사람 만나는 것조차도 힘든 상태였고, 회사 관련해서는 더더욱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안부와 건강을 걱정해주시는 선후배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가득했지만 왜 내가 병가를 낼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분명 누군가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프레임을 짜고, 결국은 내게 ‘오해’와 ‘비난’이라는 화살로 돌아올 거라는 사실을. 

가끔은 회사로 복직하는 첫 날의 풍경을 상상한다. 사람들은 내게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떤 인사말을 건넬까? 나는 그때 어떤 느낌일까?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두려움과 묘한 설렘, 궁금함이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전혀 계획에 없던 쉼이기에 주어진 이 시간을 어떻게 현명하게 보내야 할까? 여전히 의문투성이고, 매일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남은 기간 동안 내 몸과 마음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고, 나만의 답을 찾을 것이라고.


뻔뻔해지자. 나는 당당하니까!

이전 07화 걸음이 느린 아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