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하는 감정이 쌓일 때

슬픔보다 억울함이 먼저 오는 리더의 감정 구조

by 심지헌

나는 자주 슬퍼하지 않는다.
대신, 억울하다는 감정이 더 먼저 올라온다.
그것도 말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작고 애매한 억울함이.

상대는 아무렇지 않게 던졌을 말이었고,
누구는 전혀 악의 없이 지나쳤을 상황이었는데
나는 그 감정을 혼자 오래 붙잡는다.


"왜 나한텐 이래야 했을까."
"내가 리더니까 감수해야 하는 건가."
"그 말, 다른 사람에게도 저렇게 했을까?"


한참을 지나서야
그 감정의 정체가 슬픔도, 분노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건 아주 오래 말하지 못했던 억울함이었다.

리더라는 자리는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감정적’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감정을 말하는 게 아니라
감정에 끌려가는 사람처럼 비춰지는 게 두려워
입을 다문 적이 많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화가 나도 웃고,
서운해도 넘기고,
속상해도 “괜찮아요”로 정리했다.

그러다 보니
슬픔은 자주 느껴지지 않았다.
그 대신,
속으로 꾹 참고 넘어간 수많은 장면들이 '억울함'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그건
누가 뭘 잘못해서 생긴 것도 아니고,
딱 잘라서 설명할 수도 없는
‘정서의 찌꺼기’ 같은 감정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작은 억울함들이
‘말하지 못한 감정’으로 쌓여
점점 내 마음의 무게를 만들어 간다는 점이다.

나는 리더이기 때문에
늘 괜찮아 보여야 했고,
이성적이어야 했고,
공정해야 했다.


하지만 감정은 늘 공정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겐 관대하면서,
누군가에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 자신이
불편하고, 부끄럽고, 피곤했다.

그래서 나는 말하지 않았다.
감정을 정리한 다음에야 말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감정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감정을 내보이지도, 다독이지도 못하고
그냥 쌓아만 두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말하지 못한 감정이
내 안에서 나를 밀어냈다.
“그만해. 나도 힘들어.”
라고 속으로 되뇌이면서도,
겉으론 “잘하고 있어요”라고 말해야 했다.

그리고 그 거리감이
나와 나 자신 사이를 점점 멀게 만들었다.


나는 이제 안다.
리더도 억울할 수 있다.
리더도 감정을 느끼고,
그걸 말해도 괜찮다.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조직을 오래 지킬 수 있다는 걸
조금은 배워가는 중이다.


리더의 감정 체크리스트

내가 오늘도 넘긴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그 감정은 내게 어떤 말을 하고 있었을까?

감정이 말하기 전, 내가 먼저 말을 걸어줄 수 있을까?


슬픔은 나중에 온다.
그보다 먼저 오는 건,
말하지 못한 억울함이다.


그리고 그 억울함은
내가 감정을 오래 품고 있다는,
어쩌면 리더로서 가장 인간적인 증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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