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얼굴이 된다는 것, 나를 없애는 일이 아닌가
책임이 무겁다고 느꼈던 순간을 돌이켜보면,
그 무게는 사실 ‘일’보다 ‘감정’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업무량, 매출 목표, 조직 운영…
이런 것들은 숫자처럼 명확하다.
해결 방법도 있고, 마감도 있다.
하지만 내 감정은 수치화되지 않고, 조절도 안 되며,
일보다 오래, 무겁게 남는다.
나는 조직의 얼굴이었다.
의사결정의 최종 책임자, 누군가의 상사, 리더.
내가 흔들리는 순간 팀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슬퍼도 웃어야 하고, 불안해도 단단해 보여야 했다.
그러다 보니, 감정은 점점 숨겨야 할 것이 되어버렸다.
'지금 내가 이런 표정을 지으면 안 되겠지'
'감정을 드러내면 리더로서 신뢰를 잃을지도 몰라'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자동으로 떠올랐다.
문제는 이게 '연기'가 아니라 ‘정체성’이 되어갔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진짜 내가 사라지고,
조직이 원하는 표정을 짓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좋은 사람이자 강한 사람이어야 하고,
부드럽되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팀원들의 감정을 공감하되 내 감정은 삼켜야 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나는 누구였지?’라는 질문 앞에서 멈추게 된다.
조직의 얼굴이 된다는 건, 정말로
나를 없애야 하는 일이었을까?
리더십이란 결국 ‘버팀’의 기술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내가 버티고 있는 건 책임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감정과, 표현하지 못한 나 자신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감정을 버려야 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숨기는 기술’로만 버티면,
결국 나는 사라진다는 것을.
나는 감정을 업무처럼 다뤄야 한다고 믿었다.
정리하고, 판단하고, 이성으로 바꾸는 것.
하지만 진짜 필요한 건
감정도 ‘내가 가진 것 중 하나’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기뻐도, 불안해도, 흔들려도
그건 리더로서 부족한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살아 있다는 증거다.
조직의 얼굴로 산다는 건,
모두의 기대에 나를 맞추는 일이 아니라
내 감정을 지우지 않고도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이제 나는 안다.
리더십의 무게는 책임이 아니라,
감정을 숨기느라 생기는 고독에서 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