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오해

by 희도

너의 재채기 소리를 지우면서 나는 감기에 걸렸다

동굴을 만들어 가장 어두운 곳에 고인 썩은 물로 지웠다 결국

체념은 쓴 맛을 뱉었다

덩굴에 감김 듯 가시가 심장을 찔렀다

피도 흐르지 않았다

피도 보이지 않는데 고통은 죽을 것 같았다

하얀 연기가 어지럽게 피어오를 때 시선은 흐려졌다

너머 어딘가에서 멈춘 듯도 보였고 떼지 못한 발걸음에 잡힌 듯도 보였다

천둥소리가 하얗게 부서지는 틈을 빌러 작은 악마가 세상 밖으로 토해진다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어 붉은 틈을 만들고

핏줄이 되고 도랑이 되고 길이 되어 허공에서 서늘해진다

비겁했다

어쩔 수 없었다


아무나 들여다볼 수 있는, 누구나 만져 볼 수 있는 사랑을 버려야 내가 살았다

새털같은 말들은 눈송이처럼 녹아 사라지고 지켜지지 않은 약속들만

무겁게 눌렀다

울음소리가 밤을 새워 별을 세고 소나기로 오고 장마가 졌다


두통이 다시 살아난다


구불구불한 천 리 길을 흐른다

안개 저편 무심한 공간 너머 공간이 희미해진다 많은 것들을 담은 눈동자를

가늘게 늘여 버려보지만 떨리는 눈꺼풀 아래 공간은 이미 혼탁하다

연기를 가르며 잡아 보지만 허공을 가르는 허무만 뒤켠에 있다

폐는 팔딱대고 심장은 싱싱하게 뛰놀지만 이미 부끄럽다

선명한 과거를 깊숙하게 마비시키고 아우성치는 두통을 잠재운다


담배 한 개비

찌그러진 종이컵

투명하게 빛나는 플라스틱 물병

빛바랜 벤치


부신 햇살에 눈물 한줄기 반짝인다

금요일 연재
이전 11화물 위의 달 거울 속의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