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유년
생일파티에 초대합니다♥
▶ 날짜: 3월 23일 토요일
▶ 시간: 낮 12시
▶ 장소: 롯데리아
어느 동네는 맥도널드에서 생일파티를 했다고 하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줄곧 롯데리아에서 생일파티가 열렸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2000년 당시에 롯데리아의 데리버거 가격은 놀랍게도 1,000원이었다. 정가는 1,30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그 버거는 언제나 늘 할인을 해서, 웬만하면 항상 1,000원에 먹었다. 맛도 딱 달달하고 짭조름하니 초등학생이었던 우리 입맛에 잘 맞아, 엄마와 함께 다른 볼일로 롯데리아 근처에 들리게 되면 한 번쯤은 데리버거를 먹으러 그곳에 들어가곤 했다.
그렇게 종종 드나들던 롯데리아에서 생일파티가 열리면, 그날만큼은 우리 엄마든 친구의 엄마든 그 자리에 모인 아이들이 각자 먹고 싶은 햄버거를 주문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셨다.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감자튀김 또한 잔뜩 주문해 쟁반 위에 수북이 쌓아주셨고 콜라야 뭐, 그땐 다 먹은 잔만 주문대로 들고 가면 언제든지 리필해 주었으니까!
평소에 먹던 것보다는 고급진(?) 햄버거와 감자튀김, 콜라를 배부르게 먹다 보면 어느덧 생일파티의 하이라이트, 선물 교환 시간이 온다. 우리 친구들의 단골 선물 품목은 문구점에서 파는 학용품 세트였다. 문구점 진열대에 나열된 각기 다른 구성과 가격의 학용품 세트 중에서 하나를 골라잡아 주인아저씨께 포장을 요청하면, 거기서 파는 포장지로 나름대로 예쁘게 포장을 해주셨다. 그런 식으로 포장된 선물이 선물 당사자인 아이의 앞으로 몇 개씩이나 놓였고, 선물을 받은 친구는 선물을 준 친구들에게 낱개 연필을 한·두 자루 넣어서 포장한 답례품을 건넸다. 대체로 그 과정을 끝으로 파티는 마무리되곤 했다. 나 또한 한 때는 생일의 당사자로서, 한 때는 초대를 받은 친구로 몇 번이나 참석해 본 롯데리아 생일파티다.
롯데리아에서 열렸던 생일파티도 물론 즐거웠지만, 그보다 더 내 기억에 남는 것은 엄마가 직접 음식을 준비해 우리 집에서 열어준 생일파티다. 거실에 펼쳐 놓아둔 커다란 사각형의 교자상 위로 엄마가 준비한 음식이 쭉 늘어져 있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듯하다. 엄마는 그 생일상을 차리기 위해 어제부터 재료를 준비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손수 김밥이며 잡채를 만들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후라이드치킨과 양념치킨도 미리 배달시켜 놓았다. 직접 깎은 과일과 다양한 종류의 과자까지 예쁘게 그릇에 담아 상 위에 차려놓으니 누구도, 어떤 곳도 부럽지 않은 우리 집만의 생일상이 완성되었다.
완성된 생일상을 보면서, 잔뜩 설레는 마음으로 어떤 친구가 먼저 우리 집 벨을 눌러줄지 기대하고 또 기다렸다. 고대하던 딩동 소리가 들리면 총알처럼 뛰쳐나가 현관문을 열고 친구를 반겼다. 친구가 품에 안고 있던 선물을 아닌 척, 흘긋거리는 건 덤이었고.
친구들이 하나, 둘 도착해 다 모였고 파티가 시작되었다. 나는 교자상의 가장 끝, 주인공 자리에 앉아 친구들이 불러주는 생일축하 노래에 맞춰 케이크의 촛불을 끄고,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이 손 저 손에서 건네진 선물을 받았다. 내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그 자리에 모인 다정한 친구들과 상 위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있자니, 24평 다섯 가족의 안식처인 우리 집이 그날만큼은 훌륭한 파티장처럼 느껴졌다.
우리 집 파티장에서 1차로 음식 먹기와 선물 교환식을 하고 나서는 2차로 신나게 뛰어놀기 위해 친구들과 밖으로 나갔다, 엄마는 생일상을 정리하기 위해 집에 남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술래잡기를 하며 열심히 놀았다. 해가 뉘엿해져 친구들을 배웅하고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또 주방에서 저녁상을 차리고 계셨다.
저녁상에 올라온 음식은 점심때 생일파티를 하고 남은 음식들이었다. 주로 김밥과 잡채였는데, 나 또한 생일파티 때 김밥보다는 양념치킨을 열심히 먹어댔음에도 파티가 끝나고 난 후에 식탁 위에 그대로 남겨져 있는 김밥의 모습이 꽤나 별로였다. ‘우리 엄마 김밥 맛있는데…… ’라고 생각하며 내 생일을 위해 열심히 김밥을 싼 엄마가 남은 것을 보고 속상했을까 봐 괜스레 혼자 시무룩해졌던 것 같다.
그날, 아침에 일어나 생일 케이크와 선물 따위를 생각하며 신이 난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생일파티를 직접 열어주는 다정하고 예쁜 우리 엄마와 따뜻하고 안락한 우리 집, 엄마가 만든 맛있는 음식과 우리 아파트 놀이터 같은 것들을 친구들에게 선보일 생각에 더 좋았었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나의 것들을 친구들에게 보여준다는 건 초등학교 1학년 때나 어른이 된 지금이나 어쩌면 늘 이렇게 두근거리고 설레는 일인지 모르겠다.
엄마가 맞벌이를 시작하고 동생 희수도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더 이상 내 생일파티는 열리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해보았기에 서운하거나 미련이 남지는 않았다. 특히 롯데리아 생일파티는 말이다. 모든 어린이들의 마음이 이런 내 마음과 비슷했던지, 우리 동네 롯데리아에서 종종 열리던 생일파티는 점차로 자취를 감추었다.
부산스러운 공간과 친구들이 내는 즐거운 소음, 손에 손을 거쳐 전달되는 선물들……. 종종 생각나기는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파티보단 그저 좋아하는 사람과 단둘이, 얼굴 바라보며 맛있는 밥 한 끼 먹고 케이크도 한 조각 먹는 게 그렇게나 편안하고 즐겁다.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생일상의 가장 앞쪽, 주인공 자리에 앉지 않아도 나만 향하는 한 사람과 마주 앉아 축하받는 게 참 고맙다.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어린 시절의 내가 보면 재미없는 어른이 되어버렸다며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