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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아의 서랍 Apr 15. 2023

#8 다 한자 자격증 덕분이야~

가장 보통의 유년

 우리 엄마가 신포우리만두에서 종업원으로 일을 시작할 무렵이다. 엄마가 바깥일로 늦은 시간까지 집을 비우게 되자, 우리 삼 남매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귀가 시간을 늦출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막냇동생인 희민이는 어린이집 종일반에 들어가게 되었고 초등학생이던 나와 희수는 학교 정규 수업이 끝나면 별도로 또 방과 후 교실에 다니게 되었다.      


 많고 많은 방과 후 수업 중에서 엄마에 의해 선택된 것은 ‘방과 후 한자’였다. 이 선택으로 나는 방과 후 한자 교실에 첫발을 딛게 되었고 이후 약 5년 동안 한자 공부와 고락을 같이하게 되었다.     






 우리 한자 교실의 분위기는 다소 독특했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U자형 책상 배치가 그러했고, U자가 한데 모이는 지점에 자리를 잡고 앉은 한자 선생님의 카리스마가 그러했다. 한자 선생님은 결코 무서운 사람은 아니었다. 언성을 높이거나, 당시 학생에 대한 교사의 훈육 범위로서 사회적으로 허용되던 신체적 체벌을 하신 적도 없다. 다만, 선생님의 비교적 짧은 머리 스타일과 입술에 얹어진 브라운 톤의 립스틱 색깔이 그녀의 외적 카리스마에 한몫을 했고, 한자라는 과목의 중후함 또한 그런 외양에 엄숙함이라는 무게를 더했을 뿐이었다. 이 때문에 누구든지 한자 교실에 들어오면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왜들 그렇게 한자 공부에 열중이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초등학교 때 한자를 배워두면 중·고등학교, 거기다 대학교 입시 준비 때까지 그렇게 도움이 된다더라!”라고 했다. 내 주변 어른들 누구나 엄마와 비슷한 말을 했다. 많은 또래 친구들이 방과 후 한자 교실이나 한자 학원에 다녔고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한국어문회>에서 주관하는 ‘전국 한자 능력 검정시험’을 준비했다. 나도 처음 한자 교실에 출석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어문회의 7급 자격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처음 한자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한자 선생님 특유의 카리스마로 인해 가끔 의기소침해질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한자 배우기를 꽤 재밌어했다. 그때는 아직 학교 정규과목으로 영어를 배우기 전이라, 한자는 내가 한글과 한국어 말고 처음으로 새롭게 배워보는 언어였다. 나중에 영어를 배우게 되면서 한자보다는 영어에 더 관심을 두긴 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말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었고 그래서 한자를 배우는 게 꽤 적성에 맞았다.


 또, 한자에 대해 배우면 배울수록 TV 뉴스나 신문, 책등의 매체에 나온 한자를 점차 읽을 수 있게 되었는데, 내가 한자를 읽어냈을 때 기특해하는 어른들의 반응으로부터 무언가 인정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괜히 나도 어른이 된 것만 같고 다른 아이들보다 앞서 나가는 듯한 기분에 신이 나 더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다. 이렇듯 한자 공부는 내 적성과 성향, 허영심을 충족시켜 주는 좋은 역할을 했고 나는 이를 바탕으로 자격증 공부 또한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한국어문회>의 전국 한자 능력 검정시험은 가장 하위 단계인 8급부터 가장 상위 단계인 1급까지로 급수가 나누어져 있었다(지금은 1급보다 높은 단계인 준 특급과 특급 급수가 생겨 가짓수가 더 늘었다). 나는 한자 선생님의 권유로 가장 하위 단계인 8급은 건너뛰고 7급부터 공부를 시작했고 수월하게 합격했다. <한국어문회>의 자격증 시험은 1년에 3회기 정도 치러졌는데, 나는 그에 맞춰 7급부터 4급까지는 한 급수당 4개월씩 공부하여 1년 반 정도 만에 전부 다 취득했다. 4급을 취득한 후에는 바로 3급 공부에 들어가지 않고 그사이의 급수인 준 3급 공부를 했다. 준 3급은 무난히 합격했지만 이후 응시한 3급 시험에서는 떨어졌다. 3급부터 암기해야 할 한자의 양이 확연히 늘고 난이도가 많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한 번의 고배를 마신 뒤에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부로 인한 쓰라린 패배감을 맛봤다.   

   

 사실 그때까지의 나는 학교 공부에서도, 한자 공부에서도 순풍에 돛 단 듯 늘 좋은 성적만을 거뒀었다. 고등학교 때 다 말아먹긴 했으나 초등학교 때는 나름 잘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한자시험에서 처음으로 순위권에 미치지 못했고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는 많이 당황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새롭게 각오와 투지를 다져 다시 공부에 매진했고 결국 두 번째 3급 시험에서는 합격을 했다. 그 기세를 놓지 않고 또 열심히 준비하여 그다음 단계인 2급까지 합격해 버렸고 이제 남은 것은 전국 한자 능력 검정시험의 가장 상위 단계였던 1급 자격증뿐이었다.





 


 1급 자격증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깐 딴 길로 새어, 자격증 시험날 겪었던 웃픈 에피소드 2개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재미있게도 다 먹을거리에 관련된 이야기다.      


 첫 번째는 어느 시험날이었는데, 그날은 늘 그렇듯 일 때문에 바쁜 우리 엄마 대신 친구와 친구의 어머니(아주머니)가 동행해 주어 함께 시험장에 갔다. 그 친구랑 나는 응시하는 시험 급수가 달라서 각자 다른 교실에서 시험을 치렀고 시험을 다 본 후엔 고사장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아주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주머니께서 우리에게 배가 고프지 않냐고 물었다. 오전부터 시험을 치른 터라 마침 점심시간이 가까웠고 시험 보는 일에 온 정신과 기운을 쏟아서 배도 고팠다. 하지만 나는 우리 엄마도 아닌 다른 아이의 엄마에게, 배가 고프다고 답하면 뭐라도 사줄 게 뻔한 눈치인데 대놓고 그렇다고 답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순진한 얼굴로 당연히 배가 고프다고 대답을 해서 우리는 함께 근처의 KFC로 가게 되었다.


 롯데리아의 햄버거밖에 모르던 나에게 KFC의 버거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신문물이었다. 우리 지역에는 KFC가 딱 한 지점만 있었는데, 그러한 지방 소도시의 한계점과, 도통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는 외출하지 않는 우리 가족의 문화로 인해서 나는 KFC가 뭔지도 몰랐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아닌 다른 가족과 함께 KFC에서 버거를 주문하고 먹는 일이 많이 낯설게 느껴졌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외국에서 생소한 음식을 먹는 느낌이었달까? 그도 그럴 것이 그토록 두툼한 치킨 패티가 들어가는 버거를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먹어 봤기 때문이다. 얼떨떨한 상태로 그 두툼한 치킨버거를 먹고 나온 기억은 있는데 그게 도대체 어떤 맛이었는지는 집에 돌아온 이후에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막 한자시험을 마치고 한시름 놓으려던 내 두뇌에(어쩌면 자아에) KFC라는 새로운 문화적 충격이 가해졌기 때문일까?     


 두 번째 에피소드는 배스킨라빈스와 관련된 이야기인데 또 어느 시험날, 이번에는 한자 교실에서 알게 된 아이와 부모님의 동행 없이 둘이서만 시험을 보러 다녀왔다. 아마 5학년 나이쯤 되었을 때로 여느 시험날과 마찬가지로 시험을 치르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길을 걷고 있는데, 친구가 갑자기 길가에 있던 배스킨라빈스를 손으로 가리키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KFC의 존재를 몰랐던 것처럼 배스킨라빈스에 대해서도 아는 게 거의 없었지만, 친구의 “아이스크림 먹고 가자”라는 말에 거기가 ‘그냥’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인 줄 알고 안심하고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참…… 거기는 ‘그냥’ 아이스크림 가게가 아니었던 거다. 


 길게 늘여진 진열장 안으로 동그랗고 길쭉한 모양의 아이스크림 통이 몇십 개는 나열되어 있고, 그중에서 무슨 맛을 먹을지에 앞서서 주문할 아이스크림의 사이즈부터 골라야 하는, 그 가게를 처음 이용해 보는 나로서는 도저히 주문법을 알 수 없던 ‘특별한’ 아이스크림 가게였던 것이다. 이미 몇 번이나 배스킨라빈스를 이용해 본 적이 있던 친구는 자연스럽게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의 사이즈와 맛을 골라 주문을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그냥 안 먹겠다고 했다. 아까는 먹고 싶었는데 막상 가게에 들어오니 먹고 싶은 마음이 가셨다는 핑계를 댔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는 친구를 보며 내가 이 장소와 이 장소의 룰에 대해 모른다는 것을 친구에게 죽어도 들키기 싫었다. 5학년이 되도록 배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게 부끄러웠던 것이다.     






 자격증 시험 날의 에피소드는 이쯤 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야겠다. 3급과 2급을 연달아서 합격한 나에게 남은 자격증은 이제 1급뿐이었다. 1급만 합격하면 나는 그 당시 존재했던 <한국어문회> 한자 자격증 중에서 가장 높은 단계의 자격증 소지자가 되는 것이었다.      


 1급 자격증 시험을 볼 수 있는 고사장은 우리 도내에 단 1곳뿐이어서, 시험을 보려면 버스를 타고 우리 지역을 벗어나야 했다. 그때만큼은 엄마도 직장에 휴가를 내고 나의 시험 일정에 동행했다. 엄마는 내가 꾸준히 한자를 공부하고 자격증 시험에 응시한 끝에 마침내 1급 시험을 볼 자격을 갖추었다는 사실에 기뻐하셨다. 1급 시험날 아침, 우리는 둘이 함께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서 고사장으로 향했다. 고사장이던 대학교에 도착해서 엄마는 밖에서 기다리고 그동안 나는 낯선 대학교 강의실에서 1급 시험을 치렀다. 집중해서 문제를 풀었지만 결과는 대참사였다. 몇 주 뒤에 나올 시험 결과를 확인할 필요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서 불합격이었다. 나름대로 준비했다고는 하나 1급 시험의 방대한 공부량에 비해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다. 시험을 마치고, 안 봐도 뻔한 결과에 잔뜩 침울해져서는 고사장을 나왔다. 일을 제치고 어렵사리 동행해 준 엄마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면서 솔직하게 시험을 잘 보지 못했음을 털어놨다. 내 말을 들은 엄마는 별말 없이 대학교 근처의 식당으로 나를 데리고 가 점심을 먹였다. 둘이 같이 우동인지 칼국수인지를 먹고는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먹었던 점심은 참으로 침울한 맛이었다.  

   

 한자 자격증 취득을 향한 내 노력은 그 한 번의 1급 시험을 끝으로 거의 마무리되었다. 1급 시험을 봤을 무렵의 나는 6학년이었고 곧 초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방과 후 한자 교실에 더는 다닐 수 없기에, 그리고 나이가 차면서 한자보다는 영어에 더 큰 흥미를 느끼게 되어서 한자에 대한 나의 열정은 점차 가슴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나는 전국 한자 능력 검정시험 2급의 소유자가 되었다. 비록 1급은 취득하지 못했지만 2급도 충분히 대단한 성적이라고 생각해서 큰 아쉬움은 느끼지 않았다. 그렇게 한자 공부를 멈추게 되었고, 쓰고 말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언어의 특성으로 인해 지금은 기본적인 한자조차 읽기 어려워하는 그냥 어른이 되었다. 초등학교 때에 비하면 완전히 한자 바보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그때 들였던 노력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는다. 어찌 됐든 덕분에 이렇게 글로 남길만한 내용이 생겼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내 인생에도 이 글의 길이만큼 추억할만한 기억이 남겨졌고. 그 기억 덕분에 KFC와 배스킨라빈스를 뻔질나게 드나들 수 있는 어른이 된 것은 덤이고!  

   

<한국어문회> 1급 교재. 두께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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