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유년
2001년 12월의 어느 날, 큰아빠께서 사촌인 희원 언니와 함께 우리를 찾아왔다. 큰아빠는 재미있는 곳에 데려가 주신다며 나와 내 동생 희수를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맘모스 극장>. 내 생에 처음으로 가본 영화관이었다.
영화관에 도착해 상영관 안으로 들어가 지정된 좌석에 앉기 전까지도, 나는 여기가 뭘 하는 곳인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때까지는 영화라는 것의 개념도 잘 몰랐고 영화관에 가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친구 따라 간 교회에서 성경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 영화를 몇 번 본 게 다였다). 그런 나와는 달리 사촌인 희원이 언니는 적어도 여기가 뭘 하는 곳인지는 알았던 모양인지, 상영관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한쪽 벽에 붙어 있던 「몬스터 주식회사」 포스터를 가리키며 저걸 보고 싶다며 떼를 썼다. 그런 언니에게, 큰아빠는 오늘 우리가 볼 영화는 그게 아니고 「해리포터」라고 말씀해 주셨다. 큰아빠의 말을 듣고도 나는 어쨌든 뭔가 재미있는 것을 본다는 것만 느낌으로 알았지, 그 외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먹을 간식을 손에 들고 상영관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어두컴컴한 실내의 모습과 그 안을 가득 채운 약간의 퀴퀴한 냄새에 나와 내 동생 희수는 더 어리둥절해졌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자리에 앉아 기다리니 잠시 후, 그나마 켜져 있던 조명이 모두 꺼지고 상영관 앞 스크린에서 불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가만히 응시하고 앉아있으려니, 눈앞으로 스크린 불빛에 비추어 둥둥 떠다니는 시트 먼지가 보였다. 잠깐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내 화면 위로 워너브라더스의 타이틀이 재생되었고, 그날 나는 내 인생 최초의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과 만나게 되었다. 나의 해리포터 연대기가 시작된 것이다.
나의 해리포터 연대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까지, 그러니까 내가 해리포터 시리즈의 굉장한 팬이 되기까지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맥고나걸 교수가 고양이의 모습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바로 그 영화의 시작 장면만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 장면을 본 순간 나는 ‘이건 분명히 재미있을 것이고 내가 앞으로 이걸 굉장히 좋아하게 될 것’이란 사실을 직감했다. 그 순간 그렇게 직감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때까지 문화생활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던 점이 가장 큰 역할을 했을 것이고, 두 번째로는 과거의 내가 상상력이 굉장히 풍부한 아이였기에 가능했던 일 같다. 어쩌면 단순히 그날 처음으로 접한 영화관의 커다란 스크린과 빵빵한 음향 효과에 눈이 번쩍 뜨인 걸 수도 있겠다. 그런 신기한 장소에서 처음으로 본 영화가 해리포터라니! 해리포터라는 영화를 사랑하게 된 건 어찌 보면 꽤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해리포터는 내게 스며들었다. 이후 영화의 시리즈가 순차적으로 개봉되었고 나는 모든 해리포터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았다. 단 한 편, 시리즈의 두 번째 영화인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만 영화관이 아닌 백화점 소극장에서 보았는데, 그 이유는 당시에 내가 해리포터가 시리즈 영화인 것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땐 가정용 컴퓨터와 인터넷이 막 각 가정에 보급되는 시기였고 우리 집에도 컴퓨터가 한 대 들여져 있긴 했지만, 그 당시 나에겐 그걸로 평소에 관심 있어하던 것들에 대해 검색해서 알아본다는 생각이 아직 잡혀 있지 않았다. 친구들과도 딱히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해리포터가 시리즈 영화인 것을 몰랐다. 그저 내가 보았던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만이 영화의 전부인 줄 알았고 그리하여 어느 날,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백화점으로 해리포터를 보러 가자고 하는 말에 나는 순진하게도 “아~ 전에 내가 영화관에서 본 그 영화를 이번에는 백화점에서 상영해 주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따라갔더랬다. 그렇게 따라간 소극장에서 내 또래 아이들과 함께 카펫이 깔린 바닥에 앉아 순순히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상영되기만을 기다리는데 웬걸, 주인공인 해리와 그 친구들이 나오기는 하는데 내가 본 영화와는 다른 내용이 전개되는 것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친구들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고 드디어 해리포터가 시리즈 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에는 시리즈의 새 영화가 나올 때마다 놓치지 않고 꼭 영화관에 가서 관람하였다.
나의 해리포터 사랑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시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이다. 4학년이 되면서 새롭게 반 배정이 됨에 따라 새로운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는데, 그중에 정아라는, 나보다 더한 해리포터 팬이었던 친구와 친해지게 되었다. 정아는 해리포터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그때까지 출간된 10권 이상의 원작 책을 모조리 섭렵했을 뿐 아니라 인터넷 팬카페에 가입하여 활발하게 활동도 하고 있었다. 걔는 해리포터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었다. 나는 그런 정아를 우러러보며 제자가 스승에게 배움을 구하듯 정아로부터 해리포터의 팬이라면 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덕목에 대해 배워나갔다. 학교 도서관을 이용해 원작 책을 차례대로 읽어나가면서 그와 동시에 인터넷을 통해 관련 내용을 검색해 자료를 스크랩하고, 주연배우인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팬카페에도 가입하여 활동했다. 학교에서는 정아와 나를 포함해 4명의 친구들끼리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학생 역할을 맡아(호그와트 마법학교에는 4개의 기숙사가 있다. 우리는 각각 다른 기숙사에 속한 콘셉트였다) 교환일기나 돌림 노트를 이용해 역할 놀이를 하며 놀곤 했다.
책을 읽고 인터넷 팬카페에서 활동할수록, 친구들과 해리포터 역할 놀이를 할수록, 해리포터에 대한 나의 사랑은 점점 깊어져 갔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온통 해리포터 생각뿐이었다. 그런 상태가 최고조에 이른 건 내가 영화의 주인공, 해리 역할을 맡은 ‘다니엘 래드클리프’에게 팬레터를 보냈을 때이다. 그렇다. 바로 그 ‘해리포터’에게 실제로 편지를 보낸 것이다!
팬레터를 보내는 과정은 꽤 어려웠다. 다니엘의 팬카페에 팬레터를 보내는 방법과 주소가 자세히 올라와 있어서 그 과정을 그대로 따르면 됐지만, 그 당시 나는 학교의 정규 교과 과정으로 영어를 배운 지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던 터라 편지 내용부터 봉투의 주소까지 모두 영어로 써야만 하는 일이 높디높은 산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오직 해리포터, 다니엘 래드클리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물어가며, 조사해 가며, 알아가며, 그렇게 편지를 완성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팬레터를 계기로 영작이란 것을 처음으로 시도해 본 것 같다. 아무튼 편지는 완성되었고 남은 관문은 딱 하나! 봉투에 잘 밀봉한 편지를 우체국으로 들고 가 국제우편으로 발송하는 일이었다.
혼자 우체국을 방문해 본 적은 없었지만 마지막 관문인 만큼, 편지를 쓸 때 발휘했던 용기를 어떻게든 쥐어짜 내 누구도 동행하지 않고 혼자서 우체국에 방문했다. 그리고 마침내 국제우편 접수대에서 편지를 부쳤다.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칠 때는 저울로 편지의 중량을 재고 그에 합당한 요금을 낸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렇게 편지를 보내고 나서는 언제쯤 답장이 올까 기다리고, 상상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지금이야 전 세계의 팬들로부터 온 편지를 다니엘이 일일이 읽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지만 그때의 나는 순진하게도 그가 그 모든 편지를 다 읽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때 보낸 편지 내용을 생각하자면 내용이 너무 망측해서(아이 리얼리 리얼리 러뷰, 비 마이 허스밴드, 아 윌 메리유……) 읽어주지 않았다고 해도 오히려 다행일 지경이지만. 어쨌거나 한, 두 달가량의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그 보상으로 드디어 다니엘로부터 그토록 소원하던 답장을 받았다. 정확히는 다니엘의 소속사에서 전 세계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대량 제작한 인쇄된 편지와 작은 화보 사진을 받았지만…… 우리 집 우편함에서 영어로 된 주소가 적혀있는 봉투를 발견한 순간 정말 날아갈 듯이 기뻤다. 봉투를 열고, 편지와 사진을 확인하고, 컴퓨터로 타이핑된 편지 내용을 사전을 뒤져가며 해석하는 그 모든 순간이 나에게는 기적이었고 행복이었으며 커다란 성취였다.
해리포터 사랑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초등학교 4학년 이후, 어느 정도의 고락은 있었으나 나의 해리포터 연대기는 꾸준히 전개되었다. 원작 책의 저자인 조앤. K. 롤링 작가는 거의 2년 주기로 꾸준히 시리즈의 다음 편을 출간했고, 새 책이 나올 때마다 나는 그걸 어떻게든 구해 꼬박꼬박 읽었다.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시리즈의 새 영화가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영화관을 찾아가 관람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내가 15살이 되었을 때 원작 소설이 완결되었고 19살이 되었을 때 영화의 마지막 편이 개봉하였다. 그야말로 내 인생은 해리포터와 함께 자랐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영화관에서,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를 다 보았을 때, 익숙한 배경음악과 함께 스크린 위로 떠오르는 엔딩 크레딧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찔끔 흘려버렸다. 엔딩 크레딧이 재생되는 동안 내 머릿속에도 해리포터와 함께했던 인생의 수많은 순간들이 함께 재생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영화관이라는 곳에 가서 해리포터 영화를 본 일, 4학년 때 원작 책을 읽으며 나에게도 호그와트 입학 편지를 입에 문 부엉이가 와주지 않을까 상상했던 일(호그와트의 입학 연령은 11살이다), 기대했던 해에 부엉이는 와주지 않았지만 그 이듬해에 한국 나이가 아닌 영국 나이로 셈하면 내게도 아직 기회가 있는 게 아닐까 기대했던 일, 주연배우 다니엘 래드클리프에게 팬레터를 보내고 한참을 기다려 받은 답장을 학교에 가져가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일 등등.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추억들이 서운하면서도 회상할 수 있는 추억이 있어 기뻤다. 그만큼 많은 추억을 돌이켜볼 수 있다는 건 그동안 내가 많이 즐거웠다는 방증이니까.
엔딩 크레딧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 이후로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나의 해리포터 연대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재작년에는 남편과 함께 20년 만에 재개봉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관람하였고, 올해는 다시 한번 더 원작 책을 섭렵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남편과 함께 다녀온 태국 여행에서는 30대가 지나가버리기 전에 꼭 영국을 방문하여 영화의 배경지와 촬영장소를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다. 오직 그걸 위해 영어 공부를 시작할 생각이고 이번 달 급여를 받으면 바로 여행적금을 시작하고자 한다.
영화의 기술과 촬영 기법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굳이 그 영화가 아니라도 볼만한 시리즈 영화는 많고도 많지만, 그래도 나에게 있어 최고의 영화는 언제까지나 「해리포터」 다! 호그와트 입학 편지를 입에 문 부엉이는 결국 내게 와주지 않았지만, 처음 영화관에서 맥고나걸 교수의 변신 장면을 본 순간부터 나는 해리포터라는 세계에 입학한 거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내 인생의 또 다른 ‘해리포터’가 되어줄 무언가를 한 번 더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재밌는 예감이다.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우리 엄마에게 작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엄마의 한결같은 지지 덕분에 나의 해리포터 연대기가 지금까지 맥의 끊김이 없이 쭉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늘 일 때문에 바빴음에도, 그리고 우리 가족의 사정으로는 그만큼의 시간과 비용을 매번 지불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큰딸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보게 해 주려고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거르지 않고 영화관에 데려가 준 우리 엄마였다.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 또한 엄마와 함께 관람했었다. 그 노고 덕분에 나는 앞으로도 계속 상상하고 꿈꾸며 살 수 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