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유년
글을 연재하며 유년기를 복기하는 동안 웃기도 웃었고 울기도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선 지금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그래도 현실은 꽤 살아봄직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자라고 성장하며 우리가 마주했던 순간들은 모두 과거가 되어버렸지요. 순간은 과거가 된다. 바로 그 점이 삶의 희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괴로운 일을 겪고 있다면 조금만 버텨봐요. 모든 것이 시간 속에서 옅어지고 약해질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조만간 과거가 되어버릴 겁니다.
누구도 아닌 나의 유년기에 대해 적었습니다. 쓰길 잘했습니다. 덕분에 기억 속에 묻혀있던 반짝이는 추억들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었어요. 완전히 똑같은 유년이란 없겠지요. 비슷한 해에 태어나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우리끼리라도 말이에요. 다만 바라는 건 당신이 내 글 속에서 당신만의 반짝이는 추억을 한 조각쯤 포착했기를. 그렇게 떠오른 과거가 당신의 얼굴에 작은 미소 한 조각 남겼기를. 오직 그것만 바랄 뿐입니다.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몇 살 때가 제일 행복했었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나는 조금의 지체도 없이 “7살 때”라고 대답했어요. 동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다 노을 질 때쯤 집에 들어오던 때. 엄마가 만드는 된장찌개 냄새를 맡으며 만화 영화를 보다가, 밥 잘 먹고 밤 9시에 아무 걱정 없이 잠자리에 들던 때 말입니다. 요즘 아이들의 유년과 비교하면 정말 턱도 없는 이야기겠지만, 돈이며 직장이며 소송이며 그런 것 하나도 몰라도 괜찮았던 7살부터 9살 즈음까지의 내 유년기 시절에 나는 참 행복했었어요. 그렇다고 지금이 행복하지 않은 건 또 아닙니다. 지금의 행복은 종류가 좀 다를 뿐이지요. 어른이 된 이후로 유년기 때는 경험하지 못했던 다른 종류의 자유와 행복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다만 그것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은 좀 바뀌었네요.
딱 하루 동안만 7살 내 유년기 시절로 돌아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조금의 망설임 없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글로는 다 풀어내지 못한 그리운 그 풍경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나를 자꾸 잊어버려서요. 내가 나의 유년 시절,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자꾸만 잊어가는 것 같아요. 마냥 현실에 찌들기만 한 어른이고 싶지 않습니다. 찌들 땐 찌들더라도 가슴속에는 어린아이 일 때부터 가져온 고유한 감수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고 싶어요. 더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어서도 계속 가지고 있고 싶습니다. 그게 바로 나잖아요.
어쭙잖은 글솜씨지만 처음으로 여러 편의 글을 써보았습니다. 마음속으로 설정해 둔 나만의 마감 기한을 놓치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어요. 계획했던 대로 글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즐거웠던 이 경험 또한 곧 과거가 되겠지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옅어지고 약해지지 않도록 글로써 꽉 매어 놓았으니까요. 어쩌면 앞으로 중년이나 노년이 되었을 때, 청년 시절의 내가 그리워져 또 이 글을 시작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또 보러 와주세요. 완전히 똑같은 청년이란 없겠지만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