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싸워서 이겨냈네요.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 의료 최전선에서 분투한 간호사들의 회고록이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노고는 점점 잊혀 간다. 간호사들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처절하고, 힘들게 코로나19와 싸웠을까?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코로나 중환자실 간호사는 그야말로 만능 전사여야 했던 것 같습니다.
이든: 안녕하세요! 선생님.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이야기' 인터뷰 시리즈에 처음 참여해주셔서 정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코로나19 종식 선언이 되었지만 아직 여전히 현장에 남아 있는 간호사들이 많아요.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후유증을 가지고 있는 간호사들도 많죠. 최근 간호법 제정 무산 또한 그동안 고생했던 시간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간호사들의 노고가, 코로나19에 현장이 잊히지 않도록 인터뷰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아리차: 네! 저도 바쁜 와중에도 시간 내서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게 되어 기쁩니다.
이든: 그럼 인터뷰를 시작해볼까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아리차: 안녕하세요, 저는 어쩌다 보니 돌고 돌아 진로를 변경하여 현재는 상급종합병원의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경험 부자 아리차입니다. 간호사가 되기 이전에는 경제학과 중국문화를 전공했었고, 전적 대학 졸업 후 사업, 대기업에서 전략기획, 스타트업에서 MD 업무를 맡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니 여러 현실적인 고민에 맞닥뜨리게 되었고, 여자로서 좀 더 안정적으로 오래 일하고 싶은 직업을 찾고자 다시 공부하여 간호학과를 전공한 사례입니다. 제가 병원에서 간호사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외과 병동 간호사로 2년째 일하고 있네요. 저는 2022년 3월~2022년 5월의 기간 동안 서울 상급 종합 병원 코로나 중환자실에 파견되어 근무했던 경험이 있어 이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이든: 간호사 이전에 정말 화려한 이력이 있었네요! 간호사로 처음 일하면서 간호사 생활의 초반을 코로나19와 함께 했군요. 코로나19 파견 전 있었던 부서는 어떤 곳인가요?
아리차: 저는 코로나 중환자실에 근무하기 전 정형외과 간호 간병통합병동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간호간병통합병동이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 수가 적고 근무환경이 비교적 좋아서 신규간호사를 잘 배치하지 않는 곳으로 유명한데, 저는 운 좋게 입사하자마자 간호간병통합병동에서 근무하게 되었어요. 또한, 근무환경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긴 하지만, 모든 곳에 장단점이 있듯 그 해 저희 병동에 퇴사자가 많아서 저와 같이 신규간호사로 입사한 같은 병동 동기만 6명이 됩니다. 일단 입사 동기가 많으니 서로 의지하고 응원할 수 있는 근무환경이었고, 간호간병통합병동이다보니 다양한 외과 간호 지식을 갖춘 선생님들이 순환 배치 근무를 하는 곳이라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정형외과 수술 환자 특성상 보행, 배설과 같은 ADL(Activities of Daily Living)이 되지 않아 그분들을 위해 손과 발이 되어주는 기본간호를 많이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또한, 정형외과지만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 상주를 원치 않는 부인과, 일반외과, 비뇨기과 등 다양한 외과 수술을 위한 환자분들이 입원하시는 곳이기에 다양한 지식을 배울 수 있었어요.
이든: 정형외과에서 코로나19 관련 병동으로 파견을 가다니, 쉽지 않으셨을 텐데 코로나19 현장으로 지원을 직접 하신 건가요?
아리차: 전... 사실 제가 지원한 적은 없었고, 그냥 수간호사 선생님의 지시로 파견 가게 되었어요. 어느 날 수간호사 선생님께서 코로나 환자가 너무 많아져 간호간병통합병동을 해체하고 일부 간호인력을 코로나 중환자실을 포함한 병동에 파견 보내야 한다고 공지하셨고, 수간호사 선생님 자리의 코로나 중환자실 파견 인력 엑셀 문서 파일에 제 이름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만 해도 독립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신규간호사라 제가 과연 가도 되는지 수간호사 선생님께 여쭤봤지만, 그땐 수간호사 선생님께서 “헬퍼 차원으로 가게 될 거다”, “환자를 보게 하진 않을 거다”라고 하셨기에 저도 안심했었죠. 하지만 웬걸, 코로나 중환자실 OT 첫날 코로나 중환자실 수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환자 4명을 담당해서 직접 간호하라는 지시를 하셨고, 저는 망연자실하며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이든: 아, 파견 가기 전과 그 후가 상황이 많이 달랐네요.
아리차: 맞아요. 그래서 더욱 더 처음 근무했을 때를 잊지 못해요. 제가 간호대학을 다닐 때 병원 식당에서 끼니를 때웠는데 제가 일하게 된 코로나 중환자실이 바로 그 식당이었거든요. 코로나 중환자가 너무 많아지다 보니 병원은 식당을 개조해서 중환자실로 탈바꿈시켰어요. 식판을 배정받는 곳이 음압병실이었고, 의자에 앉아 밥을 먹던 곳이 clean zone이었습니다. 그래도 일단 근무하게 되었으니 최선을 다해 코로나와 열심히 싸워보자고 패기 넘친 다짐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근무 첫날 OT가 없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충분한 사용 방법에 대한 교육 없이 생전 처음 보는 하이 플로우, 바이팹 등 의료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 호흡기내과, 혈액종양내과 환자들을 간호해야 했습니다. 저와 함께 파견 간 외과 간호과 출신 선생님들도 교육 없이 실전 투입이어서 매우 당황했고, 다 같이 교육이 필요하다고 해서 의료 장비 사용법 동영상 보고 차지 선생님이 한 번씩 사용 방법 가르쳐주셨습니다. 근데 반나절의 교육은 큰 의미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환자가 다 같은 기기 모드를 쓰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막막했습니다.
이든: 간호사는 전문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과, 외과,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 등 그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바뀌게 되면 적응하는 것도 어렵고 처음처럼 다시 배워야 하는 것도 많은데, 정말 고생이 많으셨네요. 코로나 격리 중환자실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아리차: 출근을 하면 clean zone에서 환자 파악을 한 후 4종 보호구를 착용하고 음압 격리구역에 들어갑니다. 음압 격리구역 안에는 A, B,C, D 병실이 있었고, 한 병실 당 환자 4명을 간호사 1명이 담당하여 간호하는 구조였습니다. 4명의 액팅 간호사가 있었고, 데이 및 이브닝 근무 번에는 차지 선생님이 1명 있었습니다. 차지 선생님은 주로 클린존에서 전화 및 신규 입원 및 전동 환자를 받는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4명의 팀 간호사가 모두 음압 격리구역에 들어가 활력징후 측정, I/O 끊기, 몸무게 측정, 혈당 측정, 투약, 체위 변경, 기저귀 교환과 같은 배설 간호 등 정규 업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본인의 할 일이 끝나면 A, B 한 팀, C, D 한 팀으로 짝을 지어 교대하여 음압 격리구역에 들어가 있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A팀의 담당 간호사고 B팀의 담당 간호사가 나가서 식사를 한다면 내가 음압 격리구역에 들어가 A팀, B팀 병실 앞에 있어야 했습니다. 각 팀마다 확인해야 하는 병동 물품을 카운트하고, 환경미화원이 없기 때문에 모든 쓰레기를 담당 간호사가 이중 소독 및 포장하여 처리하고, 병실 안에 화장실이 따로 없기 때문에 좌변기에 본 환자의 배설물을 간호사가 봉지로 수거 및 포장하여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환자가 갑자기 산소포화도가 60%대로 떨어지는 등 중증 위급상황에 놓이게 되거나, 100kg로의 남성 환자분이 갑자기 섬망이 와서 나를 발로 차고 위협적인 언행을 할 때는 패닉 상태가 됩니다. 코로나 중환자실 간호사는 그야말로 만능 전사여야 했던 것 같습니다.
이든: 저도 코로나 격리병동 파견 갔을 때가 생각나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 많으셨어요. 코로나 격리 중환자실에서 일 할 때 언제 행복하다 이런 걸 느끼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리차: 아쉽게도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간호사들도 코로나에 걸리는 시기였기에 제 듀티는 거의 매주 응급으로 바뀌며 일을 해야 했습니다. 행복과 보람을 느끼기엔 너무 열악한 근무환경이었습니다. 음압병실도 임시 벽을 세워 지은 거라 한번은 음압 격리구역으로 진입하는 문이 떨어져 나간 적도 있습니다. 사실상 언제 내가 코로나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은 병원 환경이었습니다.
이든: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간호사들이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 정말 눈물이 나네요. 말씀해주신 이야기 외에도 기억에 남는 일도 있었을 것 같아요.
아리차: 사실 코로나 중환자실의 나이트 근무는 순탄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새벽 3시까지 큰 이벤트 없이 괜찮길래 오늘만큼은 순탄하겠지 싶었는데 새벽 4시부터 바이팹을 사용해서 호흡하는 환자 중 한명이 산소포화도가 60%~70%로 떨어져서 석션하고 앰뷰를 나이트 내내 10분 간격으로 짜다가 결국 오전 7시 26분에 도저히 안 돼서 벤트를 걸러 좀 더 중증도 높은 중환자실에 전동 보냈습니다. 대부분의 나이트 근무가 그렇습니다. 갑자기 BP가 25/15로 떨어지거나, SpO2가 60%대로 떨어지거나, 섬망이 와서 몸에 있는 모든 카테터와 의료 장비를 다 빼거나, 돌아가시는 등 사건이 생깁니다.
이든: 일반 중환자실, 병동의 환자랑은 또 달라서 정말 이벤트가 많네요. 코로나 격리 중환자실에 근무하며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아리차: 정형외과 병동은 환자가 아무리 암 투병으로 고생을 해도 수술을 받고 퇴원을 하게 되면 저에게 “선생님, 고생했어요. 파이팅!”할 정도로 환자에게서 오는 긍정적인 기운이 있습니다. 환자가 수술과 치료를 받고 나아져서 퇴원하기 때문에 보람도 큽니다. 하지만, 코로나 중환자실에서는 환자 상태가 좋아져서 퇴원을 하는 경우는 극소수로 드뭅니다. 그리고 애초에 환자분 중에 호흡기 질환을 가진 분들이 많아서 말을 할 수 있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다. 저는 내과 병동이랑 성향상 맞지 않아서 그런지 근무하는 데 감정적인 번아웃이 있었습니다. 파견 후 다시 원래 근무했던 곳에 돌아와서는 환자들과 조금이라도 더 라포를 쌓고 의사소통하고 환자 편에서 환자 중심 간호를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든: 그리고 코로나 격리 중환자실에 지내면서 느꼈던 딜레마나 고민이 있었나요?
아리차: 간호사의 일은 누가 봐도 힘든 일입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하는 일에 비해 사회적인 지위나 금전적 보상이 적다고 생각합니다. 바쁠 때는 밥도 못 먹고 물도 못 마시고 화장실도 못 가면서 일합니다. 간호사는 있지만 간호법은 없는 나라에서 간호사로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실감합니다. 간호사에 대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지만, 실상 법적 제정화가 이뤄질 수 없는 현실이 야속합니다.
이든: 코로나 간호사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한 줄로 정의하자면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아리차: 전투의 최전선에서 환자를 위해 싸우는 전사
이든: 평소에 코로나와 관련하여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아리차: 결국 싸워서 이겨냈네요.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할 거로 생각했고, 더 오랜 기간 투쟁해야 할 것 같았는데, 그래도 종식을 선언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이든: 코로나 병동/중환자실에서 간호사들을 어떻게 기억해주었으면 하나요?
아리차: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희생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에, 인류 건강 유지 및 증진을 위해 곳곳에서 몸과 정신을 다해 직업적 성취를 이뤄냈습니다. 인정 받아야 마땅합니다.
이든: 코로나로 정말 노고가 많으셨고, 오늘 인터뷰에도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널스터뷰> 독자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아리차: 간호사를 편견 없이 인간으로 바라봐주세요. 매스컴에 보면 종종 “어떤 사회적으로 부도덕한 행동을 한 사람이 알고 보니 직업이 간호사였다”, “간호사는 의사 만나서 취업 대신 결혼하려고 하는 거 아닌가” 등 보기 불편한 사례나 댓글들이 보입니다. 타 전문직 중에서도 유독 간호사가 그런 자극적인 글들에 연루되는 것은 사회적인 인식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혹여 그런 사례가 있다고 한들, 하나의 사례로 모든 간호사가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묵묵히 본인의 자리에서 환자를 성심껏 돌보며 본받을 간호사도 많습니다. 인간 돌봄의 영역에서 간호사는 전문직으로서 여러분들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 한 번씩은 마주했었을 여러분의 건강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출산 시 분만실에서부터, 학교에서는 보건교사로, 성인이 되어서는 병원에서, 지역사회에서는 보건소에서, 노인이 되어서는 요양병원에서 여러분들을 돌보게 됩니다. 그러한 간호사가 정당한 사회적 대우와 존중을 받을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주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진 제공: 아리차 간호사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