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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Aug 16. 2023

[코로나 특별편] 격리 중환자실 로켓 간호사 에피소드

저 혼자만 그곳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 의료 최전선에서 분투한 간호사들의 회고록이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노고는 점점 잊혀 간다. 간호사들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처절하고, 힘들게 코로나19와 싸웠을까?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이야기]

이번 팬대믹을 계기로 간호사들은 언제나 환자 옆에 있었다는 점을 인지해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격리 중환자실 로켓 간호사 에피소드)

국민들과 병원은 마치 코로나19가 다 끝나고 그 다음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저 혼자만 그곳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든: 안녕하세요! 선생님.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이야기' 인터뷰 시리즈에 처음 참여해주셔서 정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코로나19 종식 선언이 되었지만, 아직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에 근무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로켓: 안녕하세요~ 네 맞습니다.





이든: 최근에도 운영되고 있는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의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인터뷰에 앞서 독자분들에게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려요!


로켓: 서울에 있는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5년째 일하고 있는 ‘로켓’입니다. 이전에는 외과계 중환자실에서 근무했고, 그리고 2020년부터 코로나19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든: 코로나 전에는 외과계 중환자실에서 근무하셨군요! 그곳에서 근무했던 이야기도 조금 들려주세요.


로켓: 저는 외과계 중환자실로 입사를 하여 1년 정도 일했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임상을 시작해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 장, 응급실, 병동에서 계속해서 밀려드는 환자들을 받고, 그와 동시에 또 나올 환자를 위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 병동으로 전동을 보내야 하는 정신없는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정신이 없다 보니 처음 6개월 동안은 실수의 연속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가 잘 성장할 수 있게 프리셉터 선생님, 주변의 여러 선생님들과 수간호사 선생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때 얻은 추억을 먹으며 아직 병원을 다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든: 신규 간호사 시절 엄청 치열한 시간을 보내셨네요. 외과계 중환자실에 있다가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로 파견을 간 이유가 있었나요?


로켓: 외과계 중환자실이다 보니 환자 이동이 많아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어떤 환자를 받게 될지 10분 전쯤에나 알 수 있다 보니 환자를 받을 때 너무나 허덕이게 되더라고요. 해야 하는 업무는 많은데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1년이 지나도 계속 일에 치여서 허덕이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아, 간호는 나와 맞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직하겠다고 수간호사 선생님께 말씀드렸어요.

그러자 수간호사 선생님께서 다른 곳을 경험해 보고 다시 결정하라 제안해 주셨어요. 그때 때마침 지금 제가 일하고 있는 중환자실에서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로테이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든: 익숙해진 중환자실을 떠나 새로운 곳에 근무하면서 힘들진 않았나요?


로켓: 사실 제가 로테이션 한 이 중환자실은 처음부터 코로나19 중환자실은 아니었습니다. 2020년 봄에 대구·경북 지역에서 대규모 집단감염이 일어나면서 그 지역 의료시스템이 붕괴했고, 비-코로나19 환자들이 갈 수 있는 중환자실이 부족하여 보이자 여기 병원에 대구·경북 지역 환자를 위한 중환자실을 만들었습니다. 그랬지만 점차 그 수요가 줄어들었고, 코로나19 유행이 전국으로 퍼지게 되면서 그해 9월부터 코로나19 환자들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원래 있던 중환자실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만, 알 수 없는 사명감 같은 것이 끓어올랐습니다. ‘지금 아니면 언제 내가 내 능력으로 사회에 기여를 해보겠는가’란 열정이 있었고 코로나19 중환자실 전환 후에도 남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든: 정말 멋지네요.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사명감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 남으셨다니... 그 이후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 생활은 어땠나요?


로켓: 처음에는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병상이 비었다 하면 전국각지에서 밀려드는 중환자들에 눈코 뜰 새 없이 일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꺼운 비닐 재질의 level을 입고, 허리에는 3kg 무게의 PAPR기계, PAPR에 연결된 후드를 내내 쓰고 일해야 했고, 장갑은 3겹씩 끼고 일했습니다. 또, 접촉격리군 전파를 막기 위해 LevelD 위에 비닐 가운을 한겹 더 쓰고 일했습니다. 일하고 격리실에서 나오면 옷이 땀으로 다 젖어 있었습니다. 정부에서는 휴식 시간을 2시간에 한 번씩 주라고 권고했지만, 너무 바쁠 때는 8시간 내내 격리실에서 못 나오기도 했습니다. 환자 상태가 안 좋은데 저 쉬겠다고 나갈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좋아져서 병동으로 가는 환자들을 보면 기분이 좋았습니다. 간호사를 하면서 처음으로 간호사를 하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든: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에서는 주로 어떤 업무를 했나요?


로켓: 코로나19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봤습니다. 대개의 코로나19 폐렴 환자들이고, 인공기도삽관을 한 채 인공호흡기 치료를 했습니다. 인공호흡기 치료를 하면서, 프론 치료를 병행하거나 더 안 좋은 경우에는 ECMO 치료까지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신장이 갑자기 안 좋아지는 경우이건, 혹은 투석을 원래부터 받고 계시는 경우라면 지속적 신장 대체요법(CRRT)을 하기로 했습니다. 보통의 호흡기 중환자 간호를 격리구역 내에서 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든: 그렇군요. 특히 코로나19 감염 환자를 간호하면서 주의할 점은 없었나요?


로켓: 아무래도 격리실 내에서 개인보호장구(PPE)를 착용하고 간호를 해야 했던 것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었습니다. 지금은 PAPR을 거의 쓰지 않습니다만, PAPR을 쓰고 있을 때는 우선 무겁고, 기계에서 생기는 바람 소리 때문에 상대방의 말이 안 들리고 신경이 예민해지며 PPE로 인해 움직임이 둔해지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격리실 내에는 간호사만 상주할 뿐 의사가 함께 상주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환자의 상태 변화를 빠르게 알아차리고, 이에 대해 의사에게 “적절히” 알려 “적절한” 치료를 끌어내야 했습니다. 의사들이 환자 상태가 변화하였을 때 바로바로 격리실로 들어와서 환자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맞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환자의 회복에 간호사 개개인의 역량이 크게 좌우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폐렴에 대해, 인공호흡기 간호의 심화 내용에 대해 교육해주는 곳이 없다 보니 개개인이 스스로 공부했습니다. 또한, 여러 부서에서 단기 파견성으로 많은 간호사들이 오다 보니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기기 일쑤였습니다.





이든: 인력을 활용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다양한 부서에서 파견을 많이 다니긴 했죠.


로켓: 맞아요. 물론, 만 1년 이상의 간호들만 파견을 오다 보니 신규 간호사 교육에 대한 부담은 없었지만 약 3개월마다 들어오고 나가는 간호사들에게 시스템을 알려주고 어울리는 데 큰 노력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그 당시 수간호사선생님과 책임간호사 선생님께서 코로나19 중환자실 설립 초기부터 체계를 잡아주셔서 큰 혼란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코로나19 중환자실 전환 초기에는 병동 안팎으로 체계가 잡혀 있지 않고 매일매일 시스템의 크고 작은 변화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든: 충분히 스트레스를 받을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통일된 체계도 없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맞춰서 대응을 해야 하니 새로운 질병에 대처하면서 체계를 만드느라 힘들었을 것 같아요. 여러 부서에서 온 선생님들은 코로나19 환자를 보면서 힘들어하진 않으셨나요?


로켓: 임상 경력이 1년 이상 된 간호사들이었기 때문에 보통 2주 정도 되면 적응하시긴 했어요. 중증도가 높다 보니 간호사 1인당 많게는 2명, 적게는 1명을 간호했기 때문에 온전히 환자분에게 집중해서 간호를 할 수 있었던 환경이긴 했습니다. 물론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에 초기부터 있던 사람들과 파견 온 분들이 문화적으로 차이가 있다 보니 서로 녹아들기는 조금 어려운 환경이긴 했어요. 물론 3개월 정도 짧은 파견 기간 동안 친해져서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지내는 분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대부분 친해질 만 하면 떠나야 하고 그래서 저희도 떠날 분들이라고 생각했니 파견 온 분들과 정을 많이 붙이지 못 했어요. 일하기도 바쁘고 힘들어서 친해질 기회도 잘 없었고요.




이든: 기존에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분들 입장에서는 계속 떠나보내야 하니 동료로 마음을 주는 것도 상처가 될 수 있었겠네요. 파견 온 분들이 갑자기 떠나기도 하나요?


로켓: 언제까지 근무할지 정해진 상태에서 오시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급하게 원래 병동으로 복귀하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저희가 인력이 힘든 상황에 되면 PRN으로 도와주시러 오시는 분들도 있어서 단기 파견도 있었고요.




이든: 그래도 다양한 부서에서 온 분들 덕분에 좋은 점도 있을 것 같아요.


로켓: 맞아요. 저의 경우에도 외과계 중환자실 경험 있는데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은 내과 기반이라 처음에는 좀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저처럼 외과 출신 간호사들은 처음에 적응하는 것을 어려워했어요. 그래도 스타일이 다르고, 해도 서로 도와드리고 오신 분들도 물어보고 익히려고 하셔서 차차 적응해나가게 됐습니다. 타 부서가 모여서 좋았던 점은 꼭 코로나19로 폐렴 증상만 있는 환자가 오는 것은 아니고 코로나19 감염 환자가 수술을 받거나 소아 환자들이 오거나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수술의 경우 외과 경험이 있는 선생님께서 기존 내과 기반 간호사가 처치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을 때 많이 도와주시고 알려주셔서 수월했죠. 또 소아 환자가 입원하는 경우, 소아랑 성인 간호나 처치가 너무 달라서 어려움을 겪었는데 소아 중환자실 선생님이 계시니까 훨씬 수월하고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과마다 처방이나 처치하는 스타일이 다르고, 숨겨진 내용이 달라서 그쪽 출신 간호사가 있으면 아무래도 다른 의료진과 커뮤니케이션이 편리했어요. 챠지 선생님께서도 과를 고려해서 매일 다르게 환자를 배정하여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내부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과마다 원하는 스타일이 다른데 성인의 경우에도 과마다 요구하는 숨겨진 내용을 그쪽 출신이 있으면 커뮤니케이션이 편했다 챠지 선생님이 과를 고려해서 과마다 다르게 배정을 해서 일의 능률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든: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에 근무하며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나요?


로켓: 코로나19에 감염되어서 오셨던 산모분이 계셨는데, 상태가 매우 안 좋아서 ECMO까지 적용해야 해야 했습니다. 환자분도 태중에 있는 아이도 안 좋아질까 봐 가슴 졸이면서 간호를 했습니다. 그랬던 환자분이 나아져서 병동으로 전동을 가고, 이후에는 아이도 건강히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힘들었던 모든 순간들이 보상받는 느낌이었습니다. 환자분과 남편분께서 가끔 소식을 저희에게 들려주시기 고는 합니다. 최근에는 그 당시 배 속에 있었던 둘째 아이가 무사히 돌을 넘겼다고 소식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든: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네요. 그럴 때 정말 간호사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전 근무지와 비교해서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 하며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로켓: 간호사로서 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더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 고민 끝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업을 병행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든: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군요. 어떤 미래를 위해 대학원을 가게 되었나요?


로켓: 간호사로 일하며 1년 차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다니고 있었어요. 오로지 이 환경에 적응하는데 목표를 두고 다녔죠. 그런데 1년이 지나니까... 뭐랄까 간호사로 이곳에서 미래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사들은 1, 2,3년 차 경력이 쌓이면 펠로가 되고 이후 교수가 되고 뭔가 발전하는 것이 있는데 간호사는 그런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병원을 그만 둘까 했어요. 간호사의 커리어는 성장이 어려운 구조구나 싶었거든요. 그러다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에 왔는데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 수간호사 선생님을 보고, 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정말 아무런 시스템도 없는 허허벌판과 같은 곳에서 새로운 ICU 격리 시스템을 만들고 업무 프로토콜을 만드신 분이셨어요. 정말 훌륭하신 분이라고 생각했고 그분의 역량을 보면서 저도 저 분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감염병 유행은 주기가 더 짧아지고 더 무서운 감염병도 많을 텐데 나도 저분처럼 여기서 관련 시스템을 구축하고 내가 직접 해보고 싶고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간호대학원의 간호 관리학을 전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열심히 하는 중이에요.




이든: 저도 선생님의 멋진 꿈을 응원하겠습니다. 현재 코로나19가 종식되었다는 선언이 이어지고 모두 일상으로 복귀하였는데 아직도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 운영된다고 하여 저도 조금 놀랐습니다. 현재 상황이 어떤지 궁금하네요.


로켓: 원래에는 12 베드 정도 되는 규모로 한 듀티 당 10명 정도 간호사가 근무하고 있었어요. 현재는 8 베드에 데 이유 티 때 5명의 액팅 간호사, 챠지 간호사, 수간호사가 근무하고 있습니다. 많이 축소되었죠.





이든: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에 입실할 정도로 중증 환자분들이 아직도 있나요?


로켓: 네. 여전히 코로나19로 컨디션이 저하되어 중환자실에 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한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전국적으로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 병상 가동률 23% 정도 됩니다. 서울은 그보다 적어서 18% 정도 되는데 제가 근무하는 곳은 10~15% 사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든: 오시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자리가 빌 때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럴 땐 어떻게 인력을 관리하나요?


로켓: 1주일 단위로 응급 해제를 받고 싶은 사람을 지원 받습니다. 자리가 비면 응급 해제를 받기도 하고 대부분 응급 해제를 받기를 원치 않아 다른 중환자실로 헬퍼로 가서 일을 하기도 합니다.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에 근무할 때랑 헬퍼로 일할 때랑 거의 반반인 적도 많아요.



이든: 코로나19 감염 후 2주 뒤면 격리를 한다고 알고 있는데 입원 기간이 길지 않은데도 아직 중환자실이 유지가 되는 군요.


로켓: 네. 말씀처럼 2주 뒤면 격리를 해제해도 되는데 병원 감염내과 판단에 따라 항암을 하고 있거나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는 경우 격리 해제를 미루는 것을 나라에 소명하면 2주 이상 격리를 하기도 합니다. 최근에 입원하는 분들은 평소 건강하다가 코로나19로 건강이 심하게 악화하여 입원하는 케이스 보다는 면역력이 낮은 환자분들 중에 코로나19에 감염되어 면역력이 취약한 분들이 대부분이라 입원 기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제가 있는 병동은 일반 환자를 받진 않지만, 일반 중환자를 입원 받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병원의 방침에 따라 다르겠지만, 환자는 적어지는데 나라의 지원을 받아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을 만들었으니 임의대로 일반 환자를 받기도 어려워서 사실 병원 내에서 코로나19 격리병동이 골칫거리처럼 이야기 되고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이든: 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히 속상할 것 같아요. 이후에 일반 중환자실로 변경이 된다면 어떻게 하실 예정인가요?


로켓: 예전에는 외과계 중환자실에서 이제 돌아오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도 듣고 그랬어요. 그땐 내과계 중환자실이 저랑 더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긴 하는데... 이젠 제가 자리 비운 사이 외과계 중환자실도 인력을 충원하고 하다 보니 제가 돌아갈 자리는 없어졌고 그래서 아마 여기에 반 강제적으로 계속 남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이든: 코로나19 이후에 뭔가 적절한 대책이 있진 않네요.


로켓: 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 중환자실에 남기로 했던 그 당시의 결정을 지금은 후회합니다. 비록 제 미약한 능력이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행복했고, 이곳에서 쌓은 소중한 추억이 많지만, 코로나19 팬대믹이 정리가 되어가고 있는 지금, 제가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괴감이 많이 듭니다. 정부와 병원에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을 그저 유지만 하려고 합니다. 병상 가동률이 10% 남짓밖에 되지 않으니 남는 인력을 타 중환자실에 ‘헬퍼’로 보내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functional nurse’와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더 제약이 많은 포지션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코로나19 중환자실에서 일했던 3년 남짓한 경력을 경력으로 쳐주지 않습니다. 파견인력이라는 것이죠. 제 커리어 개발을 위해서는 정규부서에서의 경력이 더 필요합니다. 원래 제가 있었던 외과계 중환자실에서 계속 있었던 동기들은 모두 자신의 연차에 맞는 성장을 하고 있는데 반해 저는 ‘헬퍼’나 하며 시간을 허송세월 보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병원에서는 코로나19가 대규모로 유행하여 급할 때는 저희를 갈아 넣었으면서 상황이 끝나니 팽했습니다. 국민들과 병원은 마치 코로나19가 다 끝나고 그다음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저 혼자만 그곳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절대 이 중환자실에 자원하지 않았을 겁니다. 미래에 코로나19 팬대믹과 같은 상황이 다음에도 생기면 코로나19 간호사에 지원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든: 마음 아픈 이야기입니다. 코로나19가 끝났으니 이런 문제들은 그냥 넘어가게 되는데 나중에 감염병이 다시 발생하면 어떤 간호사가 현장에 목숨을 내놓고 뛰어들까요.


로켓: 맞습니다. 코로나19 팬대믹 이후에도 다른 팬대믹이 발생할 것이라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간호사 대우 및 관리가 엉망인데 누가 다음번 위기 상황에 선뜻 지원을 할까요?



이든: 다음에 감염병이 다시 발생한다면 그땐 어떻게 간호사를 모집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로켓: 저는 간호사들이 고생하는 만큼, 외부에서 파견을 왔든 병원에서 지원을 했든 그 수당을 꼭 챙겨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사명감으로 처음에는 일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나는 지금 재난 사태에 기여를 하고 있으니 힘을 내자 그런 마음으로 일 했죠. 하지만 그 마음은 3개월도 안가더라고요. 그때 한창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만 하고 1억 벌어서 나갔다는 이야기가 돌았어요. 그때 저나 주위의 동료들은 정말 힘들게 일하면서 월 300 정도의 월급을 받는데... 정말 심한 박탈감을 느꼈습니다. 1억까지 되는 큰돈을 바란다기보다 형평성 있게 코로나19로 최전선에서 고생한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의사, 물리치료사, 방사선사, 간호사 모두 코로나19 지원금을 받았는데 그때에도 의사가 돈을 제일 많이 받았어요. 사실 의사가 격리구역에 잘 들어오진 않거든요. 격리구역에 보호장구를 쓰고 24시간 땀을 흘리며 사투를 벌이는 건 간호사인데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돈을 많이 받더라고요. 환자 옆에서 가장 오래 붙어있고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지원금을 더 주는 것이 옳다 생각합니다. 또 초반에는 코로나19 지원금이 없었어요. 1년이 지난 이후 지원금이 나왔고 초반에 고생한 간호사들은 지원금 조차 받지 못했죠. 인센티브를 줄 거면 투명하고 정확한 원칙에 맞추어 코로나19에 기여한 사람들 중 소외되는 사람들 없이 모두가 공평하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간호사들에게 사명감으로 위험을 지게 하면 안 됩니다. 어쩌면 간호사들에게 정말 나쁜 선례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감염병이 돌면 가면 안 된다, 가면 후회할 것이라는 그런 선례요.




이든: 중요한 말씀 감사합니다. 코로나 간호사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한 줄로 정의하자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로켓: 격리실에서 홀로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자들을 돌보고 지키는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이든: 오늘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코로나19 간호사들을 어떻게 기억해주었으면 하나요?


로켓: 이번 팬대믹을 계기로 간호사들은 언제나 환자 옆에 있었다는 점을 인지해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개인적으로 ‘코로나 영웅’이라는 말은 싫어했습니다. ‘영웅’이라는 프레임 속에 무조건적인 희생이 당연시되는 것도 싫었고, 그 초점이 간호사가 아니라 의사였기 때문입니다.





이든: 인터뷰하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널스터뷰> 독자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로켓: 코로나19를 겪으며 좋은 추억도 많이 얻었지만, 저는 코로나19 중환자실에 자원했던 것을 후회합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이 어떤 분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간호사 선생님들 중에 이 글을 읽는 분이 계신다면 이렇게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사명감만으로 무언가를 결정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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