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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Aug 08. 2023

[코로나 특별편]감염관리실 오늘은 치킨 간호사 에피소드

가장 힘들었던 건 아무도 정답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 의료 최전선에서 분투한 간호사들의 회고록이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노고는 점점 잊혀 간다. 간호사들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처절하고, 힘들게 코로나19와 싸웠을까?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이야기]

환자를 위해 어둠 속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걸어 나간 사람들이 바로 우리 간호사들 아닐까요(감염관리실 오늘은 치킨 간호사 에피소드)

가장 힘들었던 건 아무도 정답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든: 안녕하세요! 선생님.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이야기' 인터뷰 시리즈에 처음 참여해주셔서 정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선생님과 함께 코로나19에 맞선 감염관리실 간호사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오늘은 치킨: 네 좋습니다.




이든: 먼저 간단히 선생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치킨: 저는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 지는 9년 차, 감염관리팀에서 근무한 지는 4년 차 되는 간호사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결혼 2년 차, 현재 7개월 되는 토끼 같은 딸을 키우며 육아와 일과 대학원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한 워킹맘입니다.





이든: 소개 감사합니다. 감염관리실에 근무하기 전에는 어떤 부서에서 일을 하셨나요?


오늘은 치킨: 감염관리팀에서 근무하기 전에는 흉부외과 병동에서 5년 동안 일을 했고, 발령 전부터 흉부외과 병동이 1지망이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신규 때 일을 시작했어요. 다른 병동보다 중증도도 높고, CPR 상황도 많이 발생해서 힘들었지만 힘든 만큼 간호사로서의 역량도 빨리 키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때 만난 같은 또래의 동료 5명과는 인생의 힘든 시기를 같이해서인지 다들 뿔뿔이 흩어져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아직도 연락하고 만나서 여행 갈 정도로 찐한 우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든: 흉부외과에서 오래 근무하셨군요. 흉부외과에 있다가 감염관리실로 옮기신 이유가 있나요?


오늘은 치킨: ‘솔직하게’라고 적어주셨으니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의 이유를 꺼내 보면 첫 번째 이유는 교대근무에서 오는 육체적, 정신적 힘듦 때문입니다. 교대근무를 하는 많은 간호사들이 느끼는 것처럼 5년 동안 3교대 근무를 반복하다 보니 몸도 힘들고, 남들 쉬는 주말에 매번 쉬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단절도 느껴져서 상근 근무를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같은 병동에서 5년간 근무하면서 오는 개인적인 성장 정체기와 매너리즘 때문입니다. 물론 매번 돌발 상황들이 발생하고, 루틴 업무 속에서도 제가 배워가야 할 것들은 계속 있지만 한 병동에 5년이나 있다 보니 제가 이 병동에 대한 건 다 아는 듯한 착각에 빠지고, 이 병동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져서 열심히 할 동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디든 시야를 넓히고, 저 자신을 발전시키고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는 다른 부서로 가고 싶어 지원했습니다.





이든: 그렇죠. 아무리 열정과 마음이 있더라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면 버티기 힘든 것 같아요. 그렇게 옮기신 감염관리실에 근무하면서 코로나19를 맞이하게 됐는데 코로나19를 대응하기 위해 대응책을 세우고 병원에 모든 감염을 책임져야 하는 부서라 힘드셨을 것 같아요. 처음 코로나19를 대면했을 때 현장은 어땠나요?


오늘은 치킨: 제가 2019년 하반기에 감염관리센터로 왔는데, 2020년 설 연휴 전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이제 처음으로 근무표를 신경 쓰지 않고 쉴 수 있는 연휴였는데 그 전날 질병관리본부에서 감염관리센터로 공문이 왔었어요. 중국 우한에 원인불명의 폐렴 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니 의료기관에서는 각별히 유의해서 진료하고 관련해서 의심 환자가 나오면 보고하라는 내용이었는데 그때는 이 정도로 길고 지루한 코로나19와의 동거가 시작될 줄 몰랐습니다.

연휴 끝나고 돌아오니 선별진료소, 출입구별 의심 환자 선별, 확진 환자 역학조사, 국가 지정 입원 치료 병상 격리, 24시간 당직 전화 가동, 생활치료센터 등등 업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원래 하던 감염관리업무는 물론이고 코로나19 업무만으로도 일손이 모자라서 거의 매일 야근했었는데 가장 힘들었던 건 아무도 정답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 유행은 처음이니 정부도, 지자체도 코로나19를 통제하는 뾰족한 방법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시시각각 지침이 변경되고 그것에 맞게 병원에서도 지침을 변경해야 했습니다. 실무부서에서는 더욱 답답하고 어려우셨겠지요. 그래서 문의 전화가 아주 많이 왔고 그것을 응대하면서도 제가 말하는 것이 부서에서 받아들이기에는 정답이 되는 상황이라 조심스럽고 또 어려웠습니다.





이든: 아무도 정답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 참... 와닿네요. 처음 코로나 팬데믹으로 정말 고생하셨어요. 감염관리실에서도 특히 선생님께서는 어떤 업무를 주로 하셨나요?


오늘은 치킨: 코로나19 기간 동안 가장 많이 했던 업무는 역학조사입니다. 24시간 당직 전화기를 가지고 돌아가며 당직 전화를 받았는데 원내 검사 양성자에 대한 보고 뿐 아니라 각 부서에서 코로나19에 관련된 문의 전화가 와서 응대했습니다. 코로나19 초기, 그리고 엔데믹 전환 직전까지도 원내 확진자가 발생하였을 경우, 확진자 동선을 파악하여 소독요청을 하고 노출자를 조사하여 노출 정도에 따라 코로나19 검사, 격리 등을 시켜야 했습니다. 입원 환자들과 보호자의 경우 같은 병실을 사용하면 전파 가능성이 높아져 노출자들에게 격리를 권고하였는데 그럴 경우 병실 내에 물, 식사 조달 등의 문제들을 같이 고려하여 해결해야 했고 관련해서 민원이 많아 주말이나 밤에도 출근해야 하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의료진들에게 Level D, PAPR 착탈의 방법에 대해서 교육하였습니다. 국가 지정 입원 치료 병상에 근무하는 의료진 외에는 이러한 보호구를 입어본 적이 없는 의료진이 많기 때문에 확진자를 진료하는 의료진들부터 순차적으로 보호구 착탈의 교육을 매일 시행했습니다.

코로나19 관련해서 신설된 선별진료소, 코로나19 전용 중환자실, 생활치료센터를 만들 때 감염관리 자문 등을 시행했습니다. 의료진과 환자 동선, 폐기물 처리, 소독 방법 등에 대해서 검토하고 실제 잘 수행하고 있는지 모니터링 하였습니다.





이든: 감염관리실에 모든 팀원들이 각자 이렇게 많은 일을 했었다니 정말 업무량이 많았네요. 24시간 당직 전화기를 통해 문의를 답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그 힘든 시기를 지나왔네요. 코로나19로 특히 어떤 점들이 힘들었나요?


오늘은 치킨: 다른 질문에서도 언급했지만 아무도 정답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파 경로, 보호구, 환기 횟수, 소독 방법 등 정부도, 지자체도 코로나19 유행 발생 상황에 따라 지침이 자주 변경되고 그것에 맞게 병원에서도 지침을 변경해야 했습니다. 실무부서에서도 지침이 너무 자주 바뀌어 혼란스러우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감염 관리 입장에서는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원내 전파 예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융통성을 발휘하기가 힘들었고 그 부분이 실무부서와 부딪히는 부분이라 힘들었습니다.





이든: 실무부서와 부딪히며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업무상 큰 에러 사항이었을 것 같아요. 코로나19 기간에 일하며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나요?


오늘은 치킨: 코로나19 유행 발생으로 인해 의료진들도 힘들었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청소와 소독을 해주시는 환경관리원분들이 참 힘드시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별진료소, 생활치료센터에서 환경관리원분들에게 코로나19 관련 보호구 착탈의 소독 방법, 의료폐기물 처리 방법들을 교육해드리면 그분들에게서 코로나19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보호구에 대한 낯선 마음 등이 섞여서 느껴집니다. 교육을 하면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다독여드리고 싶었는데 교육이 다 끝나고 나서 생활치료센터를 담당하고 계시는 환경관리원님이 “우리 병원 감염관리팀 선생님이 오셔서 이렇게 일일이 설명해주시니깐 믿음이 생기고 보호구 잘 입고 안전하게 잘 청소할 수 있겠다.”라고 해주셔서 감사하고 또 제가 하는 일에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든: 코로나19 현장에서 정말 의료진 뿐 아니라 함께 하는 모든 인력들이 고생을 했었죠. 그분들의 이야기가 또 큰 힘이 되셨을 것 같아요. 그 외에 또 보람을 느꼈던 적이 있나요?


오늘은 치킨: 코로나19 유행이 드디어 엔데믹으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내가 역사상 기록될만한 전염병이 창궐한 시기에 감염관리팀에서 감염관리업무를 해본 경험이 가장 큰 보람인 것 같습니다. 업무를 하면서 직접 코로나19 환자를 돌보고, 간호하여 퇴원하게 하는 그런 직접적인 경험은 하지 못했지만 큰 그림으로 코로나19를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병원의 의료진들이, 직원들이 안전하게 환자를 마주하고 환자들이, 내원객들이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을까 고민한 시간이 보람되었습니다.





이든: 현장의 최전선에서 환자를 보는 간호사도, 뒤에서 계획을 세우고 감염관리 업무를 하는 간호사도 정말 한 명 한 명 노력했기에 지금의 일상이 찾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보람 있는 순간도 있지만 코로나19에 대응하며 고민에 빠진 순간도 있을 것 같아요.


오늘은 치킨: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한창 코로나19로 선별진료소나 보건소, 생활치료센터 등에 간호사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정부 파견간호사들의 임금이 굉장히 높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생활치료센터로 파견된 간호사들과 정부에서 파견된 간호사들의 처우가 많이 차이 나는 것을 보면서 현실을 깨닫게 됐었는데 간호사 친구들끼리 속된 말로 “이럴 거면 나도 여기서 일 안 하고 선별진료소 가서 코 파고 돈 벌걸!” 했습니다. 간호사가 하는 업무에 비해 충분한 보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고 그럴 때마다 간호사의 처우개선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 반, 또 일개 개인으로서 내가 나의 삶의 질을 위해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반 이렇게 듭니다.





이든: 당시 논란이 많았던 일이었죠. 파견 간호사와 병원 간호사 간의 임금 차이가 많은 간호사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 외에도 감염관리실에 근무하며 코로나19 전후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오늘은 치킨: 남편을 코로나19 유행 발생 시기에 만났는데 그 덕에 연애 시절에도, 신혼여행도, 결혼 후에도 (지금은 육아를 하느라)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 가보았습니다. 저는 제가 외향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코로나19 유행 발생 시기를 겪다 보니 생각보다 집을 사랑하는 집순이라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태생적인 집돌이 남편과 함께 집에서 요리하고 게임하고 영화 보며 재밌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든: 그 당시 다들 자기의 취미나 생활이 많이 바뀌고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코로나19를 관리하는 감염관리 간호사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한 줄로 정의하자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치킨: 코로나19를 마주하는 안내서를 제공하는 간호사라고 생각합니다. 마법사 같은 느낌이네요!





이든: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코로나19를 이겨낸 간호사들을 어떻게 기억해주었으면 하나요?


오늘은 치킨: 용기 있는 사람들로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 유행 발생 상황은 길고 어두운 터널과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다들 어둠에 익숙해지고, 희미하지만 촛불도, 또 연구가 거듭되어가면서 등대 같은 길잡이들도 하나씩 생겼지만 모두 깜깜한 터널 속을 지나가고 있었거든요. 그때 모두 무서워서 남들 뒤로 숨거나 그 자리에 멈춰 있고 싶었을 텐데 환자를 위해서 어둠 속에서 넘어질 위험을 감수하고 앞장서서 걸어 나간 사람들이 바로 우리 간호사들 아닐까요. 모두 고생하셨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든: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널스터뷰> 독자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치킨: 간호사 친구들을 만나면 꼭 ‘내가 간호사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어~’라는 말을 꼭 한 번씩 하거든요. 저도 그렇고요. ‘나는 간호사를 평생 직업으로 삼아야지~!’, ‘나는 간호사인 것이 너무 자랑스럽고 행복해~’라고 처음부터 마음먹거나 생각하지 않더라도 내가 그것을 오늘도 꾸준히, 또 꿋꿋하게 해나가는 것만으로도 사랑이고 애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오늘도 다양한 곳에서 환자를 위해 간호하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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