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홀로 있어 유일하게 만나는 사람이 간호사잖아요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 의료 최전선에서 분투한 간호사들의 회고록이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노고는 점점 잊혀 간다. 간호사들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처절하고, 힘들게 코로나19와 싸웠을까?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격리 생활 중 누군가 나에게 괜찮아 할 수 있다고 말해주지 않으면, 이겨내기 힘든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간호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든: 안녕하세요~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이야기' 인터뷰 시리즈에 처음 참여해주셔서 정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선생님과 함께 코로나19 격리 병동 파견 간호사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다람돼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든: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다람돼지: 저는 상급 종합 A 병원에서 근무한 지 어느덧 7년이 넘은 8년 차 간호사 다람돼지입니다. 응급실에서 3년 근무하고 부서 이동을 해서 현재는 부인과 항암 병동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든: 소개 감사합니다. 코로나19 격리 병동에 파견 가기 전 근무했던 곳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들려주세요.
다람돼지: 저는 성인 응급실에서 3년 정도 근무를 했습니다. 응급실은 다양한 질환,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이 많이 내원하기 때문에 다양한 질환들의 치료 방법들을 알아야 했고 정확하고 빠르게 일을 해야 하는 곳입니다. 저는 환자들과 라포를 쌓고 소통하는 것을 좋아했고, 회복되어가는 과정을 보고 싶고, 공감 능력이 매우 높은 MBTI 극 F 간호사여서 응급실 근무 환경이 사실 잘 맞지 않았어요. 젊은 환자의 갑작스러운 암 진단, 한 산모의 사망에 있어서도 감정 이입하여 눈물을 흘리는 간호사였습니다.
이든: 아이고...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네요. 공감 능력이 높으시다 보니 간호사 일 할 때 쉽지 않으셨겠어요.
다람돼지: 맞아요. 이야기 나누다 보니 기억나는 일화가 있어요. 응급실은 그날그날 구역 어싸인을 받는데 제가 경증 환자 구역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날은 30명 넘는 환자들이 그 구역에 있었고, 정말 너무 바빠서 허덕이고 있었는데 대퇴골 골절로 내원한 환자의 보호자가 계속 CT 결과는 언제 나오냐, 의사는 왜 바로 안 오냐, 입원은 언제 하냐 등 저에게 폭.풍.질문을 하였습니다. 응급실은 거의 간호사가 최전방에서 욕받이 역할입니다. 흑흑... 첫 번째 응대는 친절하게 해드렸지만 설명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폭풍 질문과 짜증을 감당하기 어려웠는데 저에게 계속 화풀이를 하시는 보호자님이 너무 야속했고 왜 내 맘을 몰라주시지, 왜 나에게 이러시지 속상해서 그만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말았죠. 눈물을 흘리면서 일하는 저를 본 선배 간호사님이 마음 추스르고 나오라고 했던 순간이 떠오르네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전 그 말이 왜 그렇게 서운했을까요? 지금 생각하면 순수한 그때의 모습이 귀엽게만 느껴집니다^^.
그렇게 저와 맞지 않는 여러 상황이 많았기 때문에 저는 부서장님께 부서 이동을 요청했고 부인암 환자들이 항암치료를 하는 병동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이 부서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으로 간호사 1명당 6명 정도의 환자를 보기 때문에 환자들과 라포 형성을 충분히 할 수 있고 A-Z까지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간호계획을 세우기 좋고 응급실처럼 급박한 상황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간호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저에게 참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이든: 부서 이동 후 잘 맞는 병동에서 지내시다가 코로나19 격리 병동으로 파견 가게 된 이유가 있나요?
다람돼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국의 빅5 병원들이 급하게 코로나19 전담 병동, 격리병동, 격리중환자실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저희 병원도 마찬가지였고 격리병동을 open하면서 많은 간호 인력을 필요로 했지요. 확보 방안은 간호간병통합병동을 해체하여 일반병동으로 전환하고 통합병동의 인력을 격리병동으로 파견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간호사의 지원을 받았는데 저는 응급실 출신이었기 때문에 부서장님이 좀 더 부탁하셨고, 그때 유혹에 넘어갔던 이유가 추가 수당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코로나19 환자를 간호하는 것이 힘들고 두려웠지만, 솔직히 돈을 더 벌고 싶은 욕망이 더 컸기에 파견 가게 되었습니다.
이든: 솔직한 답변이네요. 경험도 쌓고 돈도 더 벌 수 있으니 코로나19가 두렵긴 하지만 용기 내 지원한 간호사들이 주변에도 있었어요. 처음 간 코로나19 격리 병동은 어땠나요?
다람돼지: 처음 딱 들어갔을 때 든 생각은 ‘뭐야? 여기서 입원 생활이 가능하다고?’였습니다. 정말 좁고 마치 실험실이 상상되는 환경에 놀랐습니다. 어둡고 창문도 거의 없어서 빛은 조명뿐이었고, 생명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 환경이었어요. 그리고 ‘아... 나 고생길이 훤하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근무 전에 보호장구를 철저하게 착용하는 교육을 받았고 N95 mask 또는 PAPR을 근무 시간 내내 착용해야 했어요. PAPR은 무겁기도 하고 환자 병실이 좁았기 때문에 일하면서 장비가 벽에 부딪혔죠. 저희 부서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았어요. N95 mask 착용이 정말 힘들었어요. 딱 맞게 써야 해서 얼굴이 다 눌리고 자국이 남고 코가 너무 아팠죠. 그리고 첫날 마스크 적응이 잘 안되어서인지 일하면서 너무 어지럽더라고요. 너무 어지러워서 나와서 마스크 잠깐 벗고 쉬고, 계속 얼굴에 손이 가더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근무 2일 만에 바로 제가 코로나에 걸려버렸어요(^^;;). 너무 속상한 이야기죠.
이든: 코로나19에 걸리게 되었다니... 간호사들이 정말 코로나19로 인해 희생을 많이 했다고 생각해요. 그곳에 업무는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다람돼지: 저는 격리병동에 파견 갔는데 경증이 아닌 코로나19 확진 환자를 간호했어요. 코로나19 감염으로 산소치료가 필요하거나, 기저질환(암, 이식 등)이 있어 입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을 간호했어요. 이외에도 병원의 일반 병동에서 추가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발생하면 바로 전동을 받았죠. 일반병동에서는 도저히 함께 간호하기가 힘든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저희 부서가 바로바로 환자를 전동 받아야 했어요. 환자들의 중증도가 결코 낮지 않았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이곳이 상급종합병원이다 보니 만만치 않은 환자들이 입원하시더라고요. BIPAP, HFNC 등 intubation 직전의 환자들이 곳곳에 계셨고 그날그날 중증도에 따라 전 듀티 CN 선생님이 다음 듀티 간호사에게 환자를 어사인 해주셨어요. 병동에 비해 어마어마한 중증도의 환자를 간호하자니 병동 간호사 선생님들이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CPR도 했고 intubation도 종종 했거든요. 환자들은 보통 일주일 의무적으로 격리병동에서 격리하고 PCR 검사를 시행하여 Ct 값을 확인하고 격리가 해제되었어요. 면역 저하 환자들은 회복이 잘 안되어서 길게는 두 달까지 격리되기도 했어요. 퇴원 준비가 굉장히 피곤했는데 해당 관할 보건소에 연락을 하고 퇴원을 보내는데 저희가 일일이 연락을 할 수 없었기에 환자분들에게 연락을 하시라 했지만, 환자분들이 잘하지 못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업무가 정말 사소한 것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보건소는 또 연락을 진짜 받지 않아서 업무 로딩이 심했습니다.
이든: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업무 강도가 심했다는 것이 느껴지네요. 선생님께서는 부인과 병동에 있다가 파견을 가게 되었는데 코로나19 격리 병동과 업무 내용이 달라서 힘들진 않으셨나요?
다람돼지: 사실 저의 경우에는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요. 팬데믹에 이 정도면 OT도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해요. 제가 어렵지 않았던 이유는 제가 응급실 경력이 있어서 BIPAP, HFNC 등 intubation 등 코로나19 격리 환자를 돌보는데 필요한 사전 실무 지식이 있기 때문에 적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간호사들이 많이 차출되어 오다 보니 저 말고 다른 선생님들은 적응하는데 굉장히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연차는 높지만, 다른 과 실무지식을 가지고 있다 보니 자신도 스트레스 많이 받고 실제로도 관리자분께서 상담도 많이 해야 했고요. OT가 있지만, 어떤 기계가 있고 어떻게 다룬다 배우지만 실무는 또 배운다고 바로 다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처방이 되면 챠지 간호사의 도움을 받도록 해서 일은 어찌어찌 하지만 그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근무 마치고 따로 찾아서 공부해야 했어요. 예를 들면 중환자의 경우 A라인(동맥라인)을 잡아야 하거나 A라인이 있다면 관리를 해야 하는데 병동 선생님들께서는 A라인을 본 적도 없고, 잘 모르시니까 아무래도 코로나19 격리 병동에 파견을 오면 바로 업무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다들 이런 중증도 높은 환자를 어떻게 여기서 보고, 4명 이상 담당해서 봐야 하나 걱정이 많고 그랬죠.
이든: 과마다 실무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과 간호사들이 파견 가면 정말 혼선이 있었을 것 같아요.
다람돼지: 맞아요. 표준간호술기가 있긴 하지만, 실제 업무를 익숙하게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니깐요. 한번은 외과 베이스 선생님께서 라식스(이뇨제) 처방을 보고 생리식염수 200mL에 섞어서 투약하려고 했다고 하는 걸 보고 투약 방법을 다시 알려드린 적이 있었는데 과마다 쓰는 약도 다르고, 조제 방법도 달라서 처방을 보고 이해하는 바도 다르니 업무에 혼선이 많았죠. 그리고 담당 환자도 3명, 4명 정도로 맡아서 간호를 했는데 중증도가 높으면 3명, 조금 경한 환자면 4명을 담당했어요. 하지만 업무 강도가 높다 보니 3, 4명 환자를 담당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간호 인력관리를 타이트하게 하느라 응급오프가 많이 발생한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5명 환자를 담당해야 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땐 정말 근무 시간이 힘들더라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개선되었지만, 그 기간에는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든: 정말 생생한 현장 이야기네요. 업무가 힘들어도 쉬는 시간이 있으면 조금 환기가 되는데 실제로 간호사들이 보통 휴게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키는 어렵잖아요. 코로나19 격리 병동은 어땠나요?
다람돼지: 네. 여기도 식사 시간 포함해서 쉬는 시간 1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 외에 방호복을 입고 일하며 잠깐 쉴 수 있는 공간도 없거니와 옷을 벗고 나오기가 힘들어서 근무 시간 내내 거의 격리실에 있어야 했어요. 복도에서 그나마 잠깐 의자에 앉아서 쉬곤 했는데 의자도 불편하고 에어컨도 잘 나오지 않아서 덥고 숨 막히고 힘들었어요.
이든: 저도 코로나19 격리 병동에 파견 갔을 때 코로나 환자분들은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경우도 많아서 식사도 못 하고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할 때도 생기더라고요.
다람돼지: 맞아요. 대부분 근무 때 식사나 휴게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일할 때가 많았어요. 그리고 근무하고 나오면 방호복 안에 땀이 가득 차는데 직원들 샤워할 공간이 없어서 다른 병동에서 씻어야 했어요. 그래서 다들 그냥 집에 빨리 가서 씻어야겠다고 하고 불편한 점이 많았죠. 나중에 민원이 생기자 만들어주시긴 했지만요. 지금 생각해보니 많은 것들이 열악했네요.
이든: 어떤 부분이 또 열악한 부분이었나요?
다람돼지: 간호사가 격리병동의 청소, 주변 정리, 환자 기본간호, 식사 보조 등 모든 일을 해야 했어요. 심지어 코로나19 환자가 다른 병동에 생기거나 다른 병동으로 옮겨야 할 때 이송까지도 간호사가 했어요. 환자 중증도가 높다 보니 식사를 차려드려도 못 드셔서 떠서 드실 수 있게 도와드려야 했고 침대 생활만 하다 보니 낙상 위험이 높아서 화장실 가는 것, 체위 변경 등 간호사가 모두 도와야 했죠. 이송업무도 나중에 이송 인력이 생기긴 했지만 나이트 근무 때는 그마저도 없어서 그때는 또 간호사가 이송 업무를 했어요. 이송업무가 그냥 환자를 침대에 실어 옮기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환자이기 때문에 전파방지를 위해 음압 카를 사용해야 해서 환자를 음압 카에 옮기고 달린 기계나 수액도 옮기고 전실에 나오면 밖에 나갈 수 있게 음압까지 전체를 닦고 정말 쉽지 않았어요.
퇴원을 하더라도 병동에서는 청소 담당 직원이 있지만 여기에선 간호사가 보호장구를 입고 시트를 벗기고 소독하고 닦고 다시 시트를 깔고 20분 자외선 소독도 하고 정말 모든 일을 했던 것 같아요.
이든: 열악한 환경 뿐 아니라 환자를 보면서 힘든 점들도 많았을 것 같아요.
다람돼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보호장구 때문에 갑갑하고 어지러워서 저도 약간 생존의 욕구가 발동되어 많이 말하려 하지 않았고, 최대한 적게 움직이려고 동선을 조절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서 환자분들에게 최소한의 설명만 진행하고...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게 환자분들에게도 전달되었는지 이곳은 차갑다. 의료진이 다 너무 바빠서 말 걸기 눈치 보인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아차 싶었죠. 이분들은 보호자도 없이 홀로 계셔서 안 그래도 외로울 거고 유일하게 만나는 사람이 우리인데... 죄송하더라고요. 그 뒤로 환자분들과 눈 맞추고 소통하려 노력했어요. 그분들의 정신적 어려움에 공감하려 했고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려 했어요.
그리고 이분들은 보호장구를 낀 의료진들을 잘 구분 못 하셔서 교대할 때 제 이름 소개를 꼭 하게 되었어요. 환자분이 다 그분이 그분 같다고 하셔서 인사하고 싶어도 그 간호사가 맞는지 생각하게 된다고 하셨거든요.
그리고 장갑을 두겹이나 착용하니까 IV 잡는 실력이 떨어져서 실패를 너무 많이 하니까 죄송하고 자존감도 좀 떨어졌고. 평소 익숙했던 간호 처치들이 속도도 느려지고 정확도도 떨어지기 시작했죠. 그래도 익숙해지니 점점 나아지고 적응되긴 했어요!
이든: 그 전 병동에 있을 때와 코로나19 파견 이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다람돼지: 달라진 점이라고 하면 일상생활에서 새로 생긴 생활패턴이 피부관리를 열심히 하게 되었어요. N95 마스크때문인지... 일 마치고 나면 눌린 자국이 집에 가서 씻고 누워서도 살짝 보이더라구요. ㅜㅜ. 자국이 잘 사라지지 않는 모습을 보고 충격받아서 피부관리, 특히 탄력에 신경 쓰게 되었어요. 너무 슬펐어요... 마스크 쓸 때마다 너무 신경이 쓰여서 제대로 쓰기 싫고 흑흑... 그렇지만 나중에는 피부관리 자체가 습관이 되어버려서 결과적으로는 예전보다 더 피부가 좋아졌어요.
그리고 뭔가 감염병 환자만 보고 있으니 언제든 다시 재감염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 체력을 기르기 위해 영양제도 챙겨 먹고 운동도 하려고 노력했어요. 제가 건강해야 면역력이 유지되지 않을까 해서요.
이든: 그렇죠. 간호사가 건강해야 환자도 건강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 격리 병동에 근무하며 간호사로 느낀 점이 있나요?
다람돼지: 솔직히 빠르게 변화하는 규정 속에서 느꼈던 게 병원에 소속된 간호사로 존중받고 배려받는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 뭔가 소모품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죠. 벅차고 힘든 순간에도 계속 병원은 한명의 간호사라도 알차게 쓰려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휴게시간을 처음엔 밥 먹는 시간 포함하여 1시간 30분 제공하기로 했는데 점점 줄이려 하고 업무 강도는 점점 높아졌죠. 스케줄도 간호사들을 배려해주지 않았고 너무 힘든 기억뿐이에요. 그래서 한국에서 간호사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정작 파견 가서 코로나19 환자를 보는 간호사들은 월급이 엄청 많았는데 저희는 그런 것도 아니었거든요... 우리도 사람인데 금전적 보상이 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휴식은 보장해줘야 하지 않나 싶었죠..
이든: 공감되는 말씀이네요. 코로나19 기간 동안 간호사에 대한 인식은 올라갔지만 실제 근무환경은 개선된 것이 많이 없었다고 생각이 드네요. 코로나19 파견 기간에 기억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다람돼지: 24살 남자 환자분께서 기저질환으로 크론병이 있었고 장을 절제한 상태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되어 격리병동에 온 환자가 있었어요. 그 환자는 크론병으로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카페 투어, 맛집 투 어에 제한이 많이 있어서 주관적으로 느끼는 삶의 질이 낮았어요. 그런데 거기에 코로나19까지 감염되어 격리하고 있어 너무 우울하다고 표현했죠. 혼자 여행 가서 블로그에 글도 남기고 산책도 좋아하고 밖에 나가는걸 좋아하는데 방 안에서 갇혀있고 좀 걷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침대에서 나오려고 하면 간호사들이 뛰쳐나와 움직이지 말라고 한다고 힘들다고 표현했어요.
투약을 하러 이 환자에게 갔는데 갑자기 환자분이 저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건강관리도 나가면 진짜 잘할 거예요. 라고 말하는 거죠? 그래서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하셨냐고 물었는데, 여기 간호사들을 보고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어요. 옆 병실에 흔히 말하는 진상 환자가 있었는데 정말 소리 지르는 거 다 들리는데 간호사는 인상 한 번 쓰지 않고 웃으면서 말하고 더럽다고 느껴지는 대 소변을 닦아주고 치워주고 정말 정신적으로 존경하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고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간호사님들을 보면서 본인도 잘 이겨내 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대요. 그만두지 말고 열심히 간호사 해달라고,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자신을 생각해달라고 말했어요. 저보다 6살 어린? 환자분이 이런 얘기를 해줘서 기억에 남네요.
이든: 정말 보람찬 경험이었겠어요.
다람돼지: 그 외에도 DLBCL로 항암치료 중 코로나19에 확진되어 입원한 60대 여성분이 있었는데, 면역저하자로 회복이 되지 않아 한 달 넘게 격리병동에 있었어요. 격리병동 문이 열릴 때 외부 투명 문에 비치는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신다고 하신 분이셨어요. 그만큼 이곳이 외부와 차단되어 환자들에게 고립감을 주는 곳이라고 느껴졌죠. 그런데 이분이 유일하게 의지하는 곳이 바로 종교였어요. 매일 기도를 하고 있었죠. 보호자에게 연락해서 성경책, 공책, 필기구를 보내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보내달라고 했죠. 환자분 휴대폰과 연동하여 유튜브를 통해 찬송가를 틀어드렸어요. 환자분이 정말 고마워했고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봤어요. 이때 정말 기뻤어요. 뭔가 이곳에서 환자분에게 뭐라도 도움이 된 것 같아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일 하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두꺼운 장갑을 끼고 모든 처치를 하다 보니 IV 실력이 늘었습니다. 그리고 호흡기 관련 장비들을 술술 적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뭔가 간호지식과 실력이 늘게 되어 어느 부서에 가도 일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리고 코로나19 격리병동에 근무하며 대학원 연구 주제도 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든: 대학원에 재학 중이시군요!
다람돼지: 네. 격리병동에 파견 가기 전부터 다니고 있었어요. 응급실에 있을 때는 환자 치료 과정에 A-Z를 보기 어려워서 병동을 옮겨 대학원에 진학하고 연구를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공부하다 보니 간호학 연구는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는데, 코로나 병동에 근무하며 대학원 공부를 하다가 환자의 극복 능력에 대한 이론을 알게 되었어요. 근무하면서 환자들을 보다가 환자마다 치료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는데 개인마다 치료 성과나 내용이 다른 거에요. 중증도가 높았지만 격리 생활을 잘 보내고 치료도 빨랐던 분, 중증도는 낮았지만 격리 생활을 힘들어하시고 치료도 더뎠던 분 등 경험해 보니 그 차이가 보이더라고요. 또 치료 과정에서 격리 생활에 힘들어하며 우울함이 심해지는 환자분들을 보며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지도교수님과 상담하면서 환자의 극복 능력에 대한 문헌 고찰을 하며 더욱 더 그 주제에 탐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든: 힘든 환경에서도 환자분들을 관찰하고 연구까지 생각하시다니 대단하네요! 실제로 연구도 진행하셨나요?
다람돼지: 네. 연구 IRB 승인이 늦어져서 근무 후반에 진행하긴 했지만 연구도 실제로 시행했습니다.
이든: 코로나19 환자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정말 생소하네요. 어떻게 연구하셨나요?
다람돼지: 처음에는 휴대폰으로 할 수 있는 설문을 생각했는데 연세 많은 분들께서는 어려워하셔서 설문지를 출력해서 퇴원 전날이나 퇴원하는 날 제가 직접 보호장구 끼고 설문지 나눠드리고 동의받고 연구를 진행했었어요.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가 극복 능력이기 때문에 면담하면 좋은 대상자분들이 격리 생활 중에도 잘 지내셨던 분들이어서 근무 중에 어떤 분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하면 좋을지 생각해두었다가 설문 요청을 드렸죠.
이든: 환자분들께서 잘 참여해주셨나요?
다람돼지: 네! 생각보다 다들 흔쾌히 참여해주셨어요. 오히려 심심한데 잘됐다며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죠.
이든: 연구를 할 정도로 환자분들의 고립된 상황과 극복 능력에 관심을 두었는데 실제로 환자분들께서 고립된 환경을 많이 힘들어하셨나요?
다람돼지: 네. 병동 환경이 굉장히 열악하잖아요. 좁은 곳에 화장실도 없고 창문도 없이 온통 흰 벽에 투명한 유리만 있으니까 저라도 오래 지내면 힘들 것 같고 생활하는 것이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환자분들의 낙상 위험이 높은 상태이니까 주로 침상 생활만 해야 했고 간호사들은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CCTV로 지켜보니까 환자가 잠깐이라도 일어나면 간호사가 들어와서 제지하니까 사생활이 없이 자율성이 침해된 환경이 않아요. 내가 환자였다면 일거수일투족을 누가 본다고 생각하면 싫을 것 같아요.
그리고 환자분들 격리 생활이 굉장히 단조로워요. 아침에 간호사가 라운딩 가거나 채혈 검사 할 때 일어나서 식사하시고 TV도 없고 와이파이도 안되니까 핸드폰 조금 하다가 대부분은 가만히 누워계셔요. 진짜 아무것도 없어서 제가 먼저 집에서 읽을 책이나 취미생활 할 거 택배로 보호자께 보내달라고 하라고 그럼 제가 가져다드리겠다고 하기도 했죠. 환자분들도 이야기할 상대도 없고 하니까 입에서 단내 날 것 같다고 보호자들도 바쁘니까 전화를 계속하기도 어렵고 간호사는 바빠 보이고 방호복 입고 있어서 누가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하니까 말 걸기도 어렵다고 하시더라고요. 환경 자체가 너무 삭막하고 생명체가 아무것도 없으니까 감옥 같고 창문이라도 있으면 나무를 보거나 오늘 날씨가 어떤지, 비가 오는지 볼 수 있는데 너무 답답한 공간이라 생명이 깃든 것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고 해요.
이든: 일상생활을 하다 갑자기 격리를 해야 하면 정말 힘들죠.
다람돼지: 어떤 환자분께서는 정말 힘들어하셔서 제가 시간이 잘 갈 수 있는 걸 찾아서 해보자고 이야기해드렸더니 어떤 걸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제가 예시를 알려드리지 않으면 뭘 해야 할지 생각하기 어려워하는 분도 있었어요. 어떤 분은 격리 기간에 굉장히 시간을 알차게 보내셨는데 여쭤보니 무균실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분은 굉장히 철저히 준비를 해서 성경책, 뜨개질, 컬러링북 등 많이 챙겨오셨더라고요. 대부분은 무균실 경험이 없는 환자이기 때문에 격리 생활 자체도 생소하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어려워하며 그 기간을 많이 힘들어하셨죠.
이든: 그럴수록 환자와 외부를 연결 해주는 간호사의 역할이 중요하겠네요.
다람돼지: 맞아요. 환자 옆에 있는 건 역시 간호사들이니까요. 물론 간호사들이 일하느라 바쁘겠지만 환자분께서 무슨 생각하시는지, 기분은 어떤지 이런 시시콜콜한 가벼운 이야기를 하는 것을 환자분들께서 원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초반에는 코로나19에 대한 정보도 많이 없다 보니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분들은 감염 되고 격리실에 지내면서 인터넷 정보에 의존하다 보니 누가 죽었고 누가 어땠다더라 하는 것들만 보면서 두렵고 무섭잖아요. 정확한 의료 정보도 알고 싶고 궁금한 것도 많은데 물어볼 곳이 간호사 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격리 생활에 대해 힘들어하는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단절된 공간에서 한없이 우울해질 수 있어요. 나쁘게 빠지려면 생각이 자꾸 나쁘게 흐르니까, 누군가가 나에게 괜찮아 할 수 있다고 말해주지 않으면 이겨내기 힘든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간호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간호사가 이제 저 교대 시간이에요 라는 말도 좋았다고 하신 환자분도 있었거든요.
이든: 매스컴에 환자와 같이 화투 치는 간호사 사진을 본 적이 있어요. 방호복을 입고 숨 쉬는 것도 힘들고 업무로 과로한 상태에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면서도 역시 간호사는 간호사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실제로 그렇게 할 시간도 없이 바빠서 쉽지 않지만요.
다람돼지: 바쁘기도 하고 여유가 생기면 옆에 심각한 상태의 환자를 같이 케어하러 가야 하니까 사실 그럴 시간은 없어요. 그렇게까지 시간을 보내긴 어렵더라도 따뜻한 말 한마디가 환자분들에게는 큰 응원이 되니까요. 실제로 간호사들이 업무 외에도 많이 노력했다고 생각해요. 또 환자분들이 저희를 알 수 있게 얼굴 사진과 이름을 크게 해서 보여드리고 인사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이든: 맞아요. 저도 코로나19 환자 담당할 때 방호복을 입으니까 환자분께서 저를 못 알아보셔서 전실에서 옷 갈아입으며 모자 벗고 비록 마스크 때문에 얼굴은 많이 가려졌지만 떠날 때 저를 알아보실 수 있게 인사도 드리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코로나19 간호사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다람돼지: '바이러스로부터 환자도 지키고 나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든: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을 어떻게 기억해주셨으면 하나요?
다람돼지: 저는 근데 다양한 부서에서 일을 해봤잖아요. 모든 부서가 정말 다 고충이 있고 힘들고 그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곳이에요. 코로나19 부서라서, 중환자실이라서 어떻게 기억이 되면 좋겠다 이런 건 없는 것 같아요. 병동에서도 코로나19 환자를 많이 봤고 우리 다 같이 너무 힘들었으니 모두가 다 존중받고 훌륭한 간호사로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코로나19처럼 앞으로 또 다른 대유행 상황이 올 수 있고 그때 또 간호사의 적극적 희생을 요구할 수 있어요. 상황이 밉고 원망스럽고 그럴 수 있는데, 그래도 막상 일을 할 때는 환자에게는 진심을 다해 간호해야 할 것 같아요. 가장 힘든 건 환자분이더라고요. 전문가답게 너무 힘들어도 그 속에서는 최선을 다합시다 우리! 아무도 몰라줘도 우리가 힘든 거 환자들이랑 동료 간호사들은 알아주니까요!
이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널스터뷰> 독자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다람돼지: 좋은 기회로 저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되어 너무 큰 영광입니다. 임상에서 일을 하는 간호사 선생님들, 건강 관리 잘하고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시면 좋겠습니다. 퇴근과 동시에 병원 일은 잊고 취미생활도 하고 연애도 하고요. 저는 요즘 매일매일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저 자신을 칭찬해주고 있어요. 간호사들 중에 보면 본인의 직업을 낮게 말하고 단점만 말하고 불평만 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긴 해요. 저도 처음에 간호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없고 작아지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이젠 아니에요~! 우리 모두 저희 직업을 먼저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직업의 가치를 알고 자부심을 가져야 이런 인식도 주변으로 전달되고, 더 높이기 위해 노력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우리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