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또 당했다 해외파견

워킹맘 - 눈물의 해외 이주

by 정이안

남편이 또 해외발령받고 혼자 날랐.



내 이 일을 두 번 당하지 않아야지 했는데 막상 또 당하고 나니 당장 눈앞의 일을 해결해 나가야지 어쩔 거야. 안 하면 손해 나는데. 아오...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숨 쉬듯 이용하던 모든 서비스를 해지하고 탈퇴했.
사용하던 집과 가전과 차를 정리했.



여러 곳들을 방문해서 일처리를 하고 각종 예방주사를 맞았다. 황열병 주사 접종하려고 대학병원에 예약해서 갔는데 최근 여러 주사들 맞았다고 2주 뒤에 다시 오라고... 대상포진 2차 주사는 이삼일 뒤부터 맞을 기간이라고 다시 오라고 하시는데 바로 모레 출국해야 해서 사정을 말씀드리고 간신히 접종다.






모든 준비 중에서도 아이의 일이 가장 심력이 많이 들었다. 많이 알아본 게 독이 되어 백 년 전통 독일계 학교를 보낼지(아이가 어릴 적 독일어로 자랐다), 백 년 전통 미국계 학교를 보낼지, 신흥강자 뉴욕계 대안학교를 보낼지, IB와 AP는 무엇인지 등등 엄청나게 서치했다. 그러면서도 혹시 입학시험에 다 떨어지고 갈 학교 없면 어쩌지, 시험은 어떻게 보는 거지, 가서 적응은 잘하려나 등등 걱정하느라 늘 답답했다.



자기소개서와 MAP test(국제학교 입학시험), 에세이, 프레젠테이션, 인터뷰, 추천서, 심지어 가족사진과 부모님 소개까지 작성하는 등 입학과정이 꽤나 길었. 몇 달의 마음 졸임 끝에 학교 결정하고 나니 좀 억울했다. 운 좋게도 원한 학교에 모두 합격했기 때문이다.



합격하고 나니 갑자기 못 보던 부분이 밝게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외국인은 어차피 국제학교 어딘가는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국제학교의 존재목적 아니겠는가? 돈줄인데?



대학교는 많다. 그저 내가 가고 싶은 그 대학교를 가기 어려울 뿐이다.

회사는 많다. 그저 내가 가고 싶은 그 회사를 가기 어려울 뿐이다.

욕심이 괴로움의 근원이다.






본격 해외이사 1주일 전.

가전회사에 몇 가지 이전설치를 신청하고 분해한 후 식세기,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에어드레서 등의 전원을 내리고 활짝 열어서 말렸다.



내 집에 있지만 요리할 화구도, 빨래할 세탁기도 없어 근근이 지냈다.



대망의 이삿날,

해외이사는 국내이사와 다르다. 숙달된 전문가분들이 와서 화물 모양에 맞는 박스를 만들어내신다.





우리 이삿짐이 어갈 컨테이너.



테트리스 하듯 들어가는 짐. 꽉 채워서 문을 닫았다.







월요일에 이사를 끝낸 후 토요일 출국하는 날까지 이주와 관련한 일정이 꽉 찼다. 스트레스로 거의 잠을 못 자서 힘들지만 출국 전날 마지막 업무가 남았다.




새벽에 고속도로를 타고 부동산에 가서 마지막 정리를 끝냈다. 피곤해서 순간적으로 정신이 딱 끊기고 운전대에서 손이 뚝 떨어지는 경험을 한 후 바로 고속도로 휴게실에 들어갔다. 한겨울 냉기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기운을 내려고 애썼다. 겨우 시간 맞추어 집에 도착한 후 딜러를 만나 차를 인도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이제는 싸 놨던 항공짐을 다시 풀고 32 킬로그램 규정에 맞추어 며칠 동안 추가구매한 생필품을 넣다 뺐다 했다. 시아버님께서 이민가방 무게를 몇 번 달아주시더니 이젠 손으로 잡기만 해도 이 무게는 된다, 안된다 를 맞추셨다.



지난번 이주때는 짐 무게 때문에 공항에서 쌀을 퍼냈..... 사진 속에 내 소중한 번데기캔이 보인다. 그린샐러드에 번데기를 곁들인 후 참기름을 둘러 먹어보세요. 진짜 맛있어요 보기가 악할뿐.






그리고 몇 시간 지난 새벽. 대망의 출국일



챙길 가방이 한두 개가 아닐 때는 저렇게 테이프로 표시해 두면 공항 카루젤에서 쉽게 찾고 어느 짐이 없는지 알 수 있다.




비행기에 이고지고 갈 짐




캄캄한 새벽어둠 속에 도착한 밴에 짐을 싣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항에 양가 가족들 출동하여 눈물의 인사를 나누고. 해외이주 때마다 공항에서 사돈들 만남..
이제 아무도 우리 집까지는 방문 못할 거고 나도 중간에 귀국 못할 거라 진짜 이별이다.



해외여행의 설렘 속에 들뜬 여행객들 속에서 애 손잡고 엉엉 울면서 세간살이를 이고 지고 출국하니까 공항직원들이 나한테 중국어로 말함...





워낙 먼 곳이라 회사가 비즈니스 항공권을 끊어줬다.



항공권 예약을 여유롭게 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남아있는 불란서항공을 예약했다. 불란서항공은 몸도 마음도 불편하다. 기내 선반에 내 손이 안 닿아서 짐을 못 넣고 낑낑대는데도 도와주지 않는다. 그리고 승무원들이 불란서어로 엄청 시끄럽다. 음료 달라고 했더니 저 코너에서 알아서 갖다먹으라고 한다.



이왕 비즈니스를 탄다면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카타르항공, 싱가폴항공을 타야 한다.

특히 불란서항공은 안된다. 기내서비스며 기내설비며 하다못해 라운지까지 다 모지란다. 딱 하나 장점이 밥에는 진심이다. 밥 한 끼를 2시간 코스로 서빙함.



아무튼 파리에 도착하여 라운지에서 샤워했다. 샤워실 앞에서 영어로 물어보는데 불란서말로 크고 천천히 말해주더라... 외국인에게 자국말 천천히 말하면서 안내하기는 생각 못해봤는데 신박한 방법이다. 그러면 모르는 말을 갑자기 알아듣냐고.






사실 프랑스말을 배웠다. 불어1, 재수강, 불어2, 재수강, 불어강독, 재수강... 무려 6학기다. 내 도전정신이 갸륵하다.



가 아니라 졸업을 하려면 불어로 된 학계의 최신 이론을 교수님이 흡족하실 정도로 소리 내어 읽고 해석해야 해서 억지로 배운 거다.

불어과 아님 주의.

번역본 없음.

우리말로 해석해도 이해가 안 됨.



이 요건 때문에 학점을 다 채운 후에도 졸업에 실패하고 한 학기나 두 학기를 더 다녀야 하는 학생이 매년 속출했는데, 나중에 학교가 신입생을 과로 선발하지 않게 된 후로 이 악명높은 졸업조건이 폐지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입학 후 졸업요건을 알게 된 학생들이 우리 과를 선택하지 않을까 봐 과의 존속을 위해 교수님들이 합의하신 것이 분명하다.



우리 과는 여러모로 참 특이했다. 석사도 박사도 아니고 학사졸업용 논문수업을 진심으로 진행했다. 교수님의 질책을 듣다 못해 논문을 포기하고 졸업을 미루는 학생들이 매년 나왔다. 다시 말하지만 학사과정이다.

난 뻔뻔하게 견뎌내고(이 마음고생을 정말 다시 겪을 수는 없었다) 허접하기 짝이 없는 논문을 완성했는데 아직도 생각하면 부끄럽다.



교수님들은 다양하게 학생들을 구박하셨다.

자네 총장잔디 깔아주고 입학했나?

자네는 수학 다 맞고 영어 빵점맞고 입학했나? 아 이건 영어로 전공서 읽는 수업에서 나온 말이었다. 영어강독 시간에는 교수님이 멍청한 제자들에게 화가 나서 두툼한 사전을 던지신 적도 있다. 영어과 아님 주의.




이것이 다가 아니다!!!

논문수업에서 쫓겨나지 않고 무사히 성적을 받았으면 이제는 교수님들 앞에서 디펜스를 하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꼬맹이들의 괴상한 주장을 담은 그지같은 논문을 학기 내내 성실하게 지도하고 심사해주신 교수님들은 정말 대단한 인내심의 소유자들이었다. 하지만 교수님. 저희는 고작 고졸일 뿐인데 어떻게 석학들의 주장에서 오류를 찾아내 반박하는 논문을 써내라고 하실 수 있습니까...




교수님들의 저 요구사항은 입학하고 3월 첫 시간부터 시작되었다. 과제 하나 하려면 중도를 뒤져 책 여러 권을 읽어야 하는 생활을 하며 수업 시간마다 난 정말 바보입니다 어떡하죠 제발 저에게 이 학자의 이론을 비판하라고 하지 마세요라고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교수님이 요구하는 것은 홉스봄의 주장을 한나 아렌트나 칼 포퍼의 이론을 인용하며 비판하는 식이었다. 아렌트도 포퍼도 이름만 압니다 책 좀 더 읽고 올게요 선행을 해야 수강을 할 수 있네요...



근근이 졸업요건을 채우고 사회로 나온 나는, 이제 어떠한 주제의 글이라도 줄줄 분량을 채울 수 있는 능력이 생겼. 예를 들어 나는 그 주제에 대해 왜 모르는지를 줄줄 쓴다던가...






다시 파리 공항으로 시점을 바꿔보자.

그렇지만 내가 이 말은 해야겠다.

외고 불어과 출신들은 양심이 있으면 교양불어 좀 오지 마라.



당시 외국어 학습이 문법위주 수업이었기에, 말하기 듣기는 못해도 불어로 연애편지를 나눌 수준까지는 되었는데 (한번 써보기도 했다. 근데 받아서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 수요 없는 공급...) 그 후로 내 삶과 불어가 전혀 접점이 없어서 잊어버렸다.




아무튼 다시 파리공항로 와서,

게이트에서 한 시간 줄 서다가 (연착...) 환승비행기를 탄 후 드디어 좀 쉬는가 했는데



좌석이 고장 나서 안 젖혀짐.

아니 비즈니스인데 이럴 수 있어요?

계급 나누자는 게 아니고 비즈니스좌석은 진짜 비싸다구요. 이렇게 대충 살 거면 표값을 세 배만 받던지!!! 라고 말은 못 하고 속으로 외쳤다.
무원들은 고쳐준다고 그 큰 비즈니스좌석을 떼어내고 난리가 남.



이미 한국시간 새벽이라 난 너무 졸리고 피곤하여 무릎이 막 꺾였다. 아무 좌석이나 달라고 요청한 후 이미 딥슬립 중인 애를 두고 다른 좌석으로 옮겼는데 얘도 삐꾸좌석이다. 어느 항공사라고? 불란서 항공이다. 일단 불편해도 풀플랫으로 젖혀지기는 해서 식사 안 할 거니까 깨우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수면과 제정신을 반복하다가 30여시간 만에 목적지 도착.





디어 도착한 이역만리 타향.
공항에서 남편을 만나 임시로 지내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이제 나의 고생은 끝이다!




가 아니고

남편이 자기 내일 출장간다고 집 비번 외우라고 하고 차키를 줬다.

네?

네??

진짜???



나에게 주어진 낯선 차키와 미션!
당장 아이의 새 학교까지 운전해가서 입학수속을 밟아라!!!



내가 안하면 우리 애 학교 못다!!!



일요일 입국해서 자고나니 월요일인데 당장 나랑 애랑 처음 온 나라에 처음 보는 차로 운전 한시간 해서 입학해야함.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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