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집에 화장실이 몇 개인거지
나의 못생김은 조금은 수용성이다. 밤새 못생겨진 모습을 씻어내야 나갈 수 있다.
뜨거운물만 나오고 찬물은 안나오니까 엄마부터 씻자. 넌 안씻어도 뽀송하잖니.
뜨거운 물을 틀면 저엉말 하안참 찬물이 나오니까 그새 얼른 씻으면 된다. 너무 뜨거운 물이 나오기 전까지 제법 씻을만하다.
변기는 당장 써야 하니 집안에 다른 화장실을 탐험해보자.
그렇다.
이 집을 난 아직 모른다.
여긴 빈집이고 매트리스와 냉장고 가스렌지 오븐이 있다고 여기에 잠시 살 뿐이다.
1. 우리 애가 자는 방에 붙은, 현재 사용중인 뜨거운 물만 나오는 화장실
2. 그리고 내가 잔 방의 안쪽을 들어가니 드레스룸과 화장실이 나온다.
출장가기 전 남편이 이 화장실을 절대 열지 말라고 하고 나갔다.
푸른수염이세요?
가 아니고
날파리가 돌아다녀서 약을 쳐 놨더니 구석구석 죽은파리가 수북이 쌓여있다.
3. 그럼 다른 방을 열어보자.
이 집은 일인 일화장실을 기본으로 만들었나
무슨 방마다 화장실이 있어
4. 이번에는 현관 앞 문을 열어보자.
방이 아니네
화장실이네
삼보일배도 아니고
삼보일화장실이네
일단 저 화장실들을 건드리기 시작하면 다 청소를 해야하는 카르마를 지게 된다.
되도록이면 안써야지.
일단 가장 깨끗한 3번 화장실을 한번 써보자.
그런데 3번 샤워부스에 들어가니 해바라기수전에서만 물이 나온다!!!
큰일이다.
필터를 거치지 않은 물이기 때문이다.
지난 이틀간 쓴 1번 화장실의 샤워부스에서는 필터를 끼운 샤워기가 있었는데 그 상태가
[사진은 흉해서 지움] 필터: 그만 죽여줘... 놓아줘....
이 필터는 그냥 꺼먼게 아니고 각종 이물질에 털까지 껴있다... 왜 수돗물에서????
이전 세입자가 껴놓은 건데 얼마나 썼는지는 몰라도 이미 필터의 기능을 다했음을 누가 봐도 알수 있는 상태다.
그래도
그렇더라도
다 죽은 필터라도 거쳐낸 물로 씻고 싶다 ㅜㅜ
엉엉
필터 사오라고 왜 안했어
그러고보니 아이 목에 하얗고 동그란 습진 같은게 폈는데 물 때문인가 글쓰다가 급 걱정이 된다.
아무튼 남편에게 상황을 알리고 남편은 집주인에게 알리고 집주인은 관리실에 알리고 곧 방문할거라 했다.
그래서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준 후
(훗 운전에 자신감 생김)
아저씨 언제 올까 집에서 무한 대기를 탔다.
아저씨가 오는 문은 뒷문이래요.
뒷문을 열어보니 거기 또 엘베가 있네?
초인종 소리 안놓치게 대기타며 앉아있는데 이게 참 뭐랄까.. 불편하다.
여기 거실은 교실만큼 넓은데 그 빈 광활한 공간에 딱딱한 의자만 2개 놓여있다.
그리고 의자가 바라보는 벽에는 대형 티비가 걸려있다.
텅 빈 드넓은 거실
그 한가운데에 딱딱한 의자가 두개
벽에는 대형 티비
이거 뭐죠
미드보면 헉 하고 주인공이 정신 차리면
텅 빈 공간 한가운데 의자에 묶여있는데
그 옆에 빈 의자로 천천히 납치범이 다가와 앉으며
말 해
못한다고
그렇다면
4번 화장실을 열수밖에
뭐 이런 상상이 드는 암튼 엄청 불편한 의자다.
앞에 팔을 기댈 책상도 없이
그냥 딱딱한 의자에 걸터앉아
빈 공간 한가운데 있는건 뭐가 좀 많이 이상한 느낌이다.
그리고 옆은 베란다인데 벽 전체가 유리로 아름다운 녹색의 바깥풍경을 보여주는데
나가고 싶다.
저 아파트 정원으로 나가고싶다.
그런데 나갈 방법을 모른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왜냐면 이 집으로 들어올때 차로만 들어와 봤는데 지정 주차장에서 우리집으로 올라오는 엘베는 우리집과 주차장만 눌러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밖에 나가냐고!!!!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1층 누르라고!
안눌러진다고!
집에 와서 가르쳐준다고!
관리실 사람은 내가 아이를 픽업하러 갈 시간이 되도록 오지않았다.
밖을 바라보며 의자에 되는대로 앉은 나는 스스로 뭔가를 할수 없다는 무기력감과,
이번에도 나의 젊은 날이 이렇게 집안에서 조용히 사그라져가겠구나 하는 좌절감과,
남편에 대한 서운함으로
그냥 호텔로 튀어버릴까
한번도 실행하지 못한, 신혼 초부터 시작된 오래된 상상을 했다...
화장실 변기는 내가 한번 쓰고나면 저수조가 비어서 두번은 쓸 수 없었다.
집 화장실 변기 수는 4개
이제 나에게 허락된 변기는 몇개지...
그 뭐더라 예전 유행한 이야기 중에, 샤넬 핸드백을 조수석에 던지고 벤츠 운전석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울고싶다 류의 시리즈가 떠오른다.
암튼 난 지금 엄청나게 큰 빈 집에서 화장실 사용 횟수를 제한받고 있다.
남편에게 재차 문자를 보내니 헬스장 옆 공용샤워실을 쓰라고 답이 왔다.
이사람아
지금 나는 내려가면 주차장
올라오면 집 밖에 못간다고
헬스장은 또 어딨는데
아저씨를 기다리며 부엌 뒷문을 서성이다가 부엌 깊숙이 들어가보니 문이 또 있다.
문을 열어보니
5번 화장실을 발굴했다.
많이 본 비주얼인게 마치 뭐랄까... 급하게 들어간 주유소 화장실처럼 생겼다. 각종 청소도구와 함께 변기가 놓여있었다.
오늘도 아이와 고추참치에 밥을 비벼먹고 일찍 잠이 들었다.
30시간이 넘게 뱅기를 타고온 나라인데 고추참치만 먹으니 자괴감이 든다. 내가 너무 무력하다.
내일은 꼭 식량을 사냥하러 나가야지 다짐하며 잠에 들었다.
남편은 자기가 슈퍼를 알려줄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그 말을 들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