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네 살에 새로운 어린이집에 간 이후 3개월간 말을 하지 않았다.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나 보았던 '선택적 함구증'증상(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닌, 의지에 관계없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증상)을 보였다. 거대한 불안의 파도가 나를 집어삼키며 걱정에 휩싸였다. 1년 전 몸이 크게 아파 아이를 온전히 돌볼 수 없었기에 아이는 시댁과 친정으로 떠돌이 생활을 했어야만 했다. 엄마가 회복이 되어갈 즈음 긴장이 조금 풀려서일까. 아이는 그제야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로서 무능함과 미안함에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냈다.
다니던 기관을 옮겨보았다. 아이 상황을 알게 된 주변 엄마들로부터 아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치료 프로그램 혹은 수업 커리큘럼 제안, 여럿이서 어울리는 모임 연락을 많이 받았다. 우리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어 건네주는 아주 고마운 마음들이었다. 솔깃한 마음에 사방팔방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마음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정신을 차리고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선택적 함구증은 불안장애의 범주에 속해 있었다. 그 불안은 선천적 그리고 후천적 영향이 고루 있을 터. 후천적 영향은 엄마의 부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죄책감에 사로잡히다 보면 어떤 것도 개선되지 않고 되려 상태가 악화될 것만 같아 죄책감은 내려놓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타고난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후천적인 환경은 바꾸어 줄 수 있었다. 엄마의 '부재'가 원인이라면 엄마의 '존재'가 답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고, 불안의 본질을 쫓다 보니 결국 해답은 아이의 정서로 귀결되었다.
호전될 때까지 유치원을 제외한 사교육은 일절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좋은 치료와 커리큘럼도 아이의 정서를 엄마만큼은 다루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나와 아이가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을 고스란히 채워 넣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음먹은 것이 또 하나 있다. 데드라인을 정해놓은 것이다. 일곱 살부터는 사회성이 본격적으로 발휘하는 시기이므로 언어로 소통하지 않을 경우 많은 문제들이 예상되었기에 여섯 살 하반기에도 호전되지 않으면 약물치료를 하겠노라고. 데드라인을 정해놓으니 불안이 다소 옅어졌다.
다행히 아이는 6살이 되는 시점에 유치원에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제 목소리를 내기까지 2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물론 자기주장을 하는 데까지 또 1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학교 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지경에 달했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 때, 친구들이 종종 나한테 한 이야기가 있다. "너는 짠한 마음에 아이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는 않더라."라고 말이다. 아이의 요구가 무얼까 하며 나름의 해석을 해보니 대강 이런 것들이었다. 짠한 마음에 훈육하지 않고 (큰소리 내지 않고) 밥을 먹지 않으면 따라다니면서 먹인다거나 밤늦게 자려고 고집을 피우는 걸 받아준다거나, 사고 싶다고 하는 장난감을 다 사준다거나, 놀이시간 먹는 시간 등을 제한하지 않는 그런 것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짠한 마음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모든 일상에서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 같아
생각해 보면 내 불안을 다스리며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외부세계에서 들어오는 목소리를 잠시 꺼두고 내부세계에 집중하며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인 덕분이 아닌가 싶다. 아이의 증상은 증상이고, 그 나이에 해야 할 과업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었다. '본질'에 집중하는 것. 불안하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할 때 비로소 나만의 해법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나는 개인주의 노선을 심하게 탔던 것 같다. 항상 어느 무리에 속해 있어야만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었거늘. 집단에서 건네는 말을 경계하고 의심할 때에 진짜 내 모습이 뭔지 조금은 알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 이제는 집단주의를 경계하며 늘 본질을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겪은 몇몇 집단, 특히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요시한다는 집단에서는 개인의 생각이 자랄 틈이 별로 없었다. 틈을 비집고 나오더라도 집단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는 명분 하에 밟혀 꺾이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매번 생각이 같을 수 없는 노릇인데 집단은 자꾸만 그들의 의견을 따르라고만 강요하는 듯했다. 물론 집단에서의 공통된 생각으로 움직이면 큰 힘과 기회가 주어질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집단주의를 경계한다는 말을 더욱 정확히 하자면 집단의 생각에 매번 동조하지 않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개인주의' 마인드인 듯하다.
이러한 부류 집단에 속한 어떤 이는 왕왕 말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공동체 정신보다는 개인주의가 워낙 심해서..."라며 말끝을 흐린다. 이 말에는 공동체를 위하는 마음은 옳고 개인을 추구하는 마음은 그르다는 생각이 가득 담겨있다. 이 말이 옳은 것이라 여길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곧 이기주의자라고 여기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개인주의를 표방한다 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개인은 각기 다른 색채를 지니고 태어났는데, 누군가는 모두가 화려한 색으로 변할 수 있다고 자꾸만 유혹하는 세상이다. 아이가 고유한 빛으로 세상에 빛날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은 엄마로서 해야할 나의 필수 역할로 다가온다. 주변인의 말 혹은 매체에서 보내는 메시지에 단단해질 때인 듯하다. 나는 앞으로도 육아에서만큼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개인주의자'이자 동시에 그들 세계에서 철저한 '아웃사이더'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