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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Nov 13. 2024

치매라도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친정엄마가 집 바로 근처에 사는 동생 지인이 있다. 친정엄마 집엔 2년 전부터 치매 걸려 돌봄이 필요한 90세 어르신도 함께 살고 있다. 지인의 아들은 6살인데 자주 왕래하며 할머니, 왕할머니와 그렇게 잘 지낸다고 한다. 매주 수요일은 할머니네서 자는 날이기도 하단다. 치매 가족이 있으면 많은 시간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게다가 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며 함께 살던 아이들은 오히려 분리해서 지내기도 하는데 치매 걸린 왕할머니와 6살 아이가 함께 잘 지낸다는 말에 조금은 의아했다.


"치매이시면 가족들이 대부분 힘들어하던데, 자기네 가족들은 괜찮아?"

"네 다들 잘 지내요. 배변 실수를 자주 하시기에 아이처럼 돌봄이 필요하긴 해요. 그래서 엄마가 체력적으로 다소 고되시긴 해요. 요새는 입맛도 좋으신지 밥도 한 그릇 뚝딱이시고, 잘 웃으세요. 저희 할머니는 착한 치매예요."


그녀를 통해 나는 치매에도 나쁜 치매와 착한 치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엄마는 아직 건강하시지만 가끔씩 치매를 논하시며 자식들 고생 안 시키게 오래 살고 싶지는 않다고 강하게 이야기하실 때가 있다. 아마도 장수 노인을 생각할 적에는 치매 걸린 노인을 함께 떠올리시곤 하는 듯하다. 사실 나는 엄마가 치매 걸리는 것보다 내가 치매 걸리면 어쩌지 하는 막연한 예기불안을 늘 품고 있다. 치매만은 안된다며 도리질하고 치매 예방법을 검색창에 끄적여보기도 한다. 자주 깜박할 때에는 자책하며 치매 걱정을 호소하기도 한다.


치매환자를 진단하고 돌보는 어떤 의사는 말한다. '치매 앓는 가족의 돌봄을 포기하면서 눈물 지을 때, 기억력 문제를 손꼽은 사람은 없었다.'라고 말이다. 자식이나 손주 이름 혹은 집주소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돌봄을 포기할 정도의 핵심적 이유가 되지 못하나 보다. 이름을 잊으면 매번 다시 알려주면 되고, 집주소를 잊으면 집주소가 새겨진 목걸이를 달아주거나 아이처럼 손을 잡고 항상 모시고 다니면 될터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들이 무너져내리는 순간은 본인을 내다 버렸다고 욕하며 우기거나 혹은 물건을 훔쳐갔다며 쌍욕을 퍼붓는 상황들이란다. 나쁜 말을 듣는 순간들이 쌓여 더는 견디기 어려워지는 폭발적인 상황이 오는 것 같다. 아무리 가족이고, 치매 환자라 차치하더라도 나쁜 말을 매일 듣는 건 곤욕스럽고 힘든 일다. 가슴속 보이지 않는 커다란 멍이 시퍼렇다 못해 터지기 직전 그들은 생존을 위해 돌봄을 포기하는 것처럼 들렸다.


알코올성 치매, 유전적 치매 등 치매 원인은 다양하다. 내가 치매에 걸릴 수 있는 요인들도 다양하다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미래에 혹시라도 내가 치매에 걸리더라도 지인의 할머니처럼 '착한 치매'에 걸리길 바라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착한 치매는 단순 요행으로만 보아야 할까.


치매는 과거를 잃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철저히 미래를 잃어가는 것이고 한다. 특히 나쁜 치매일 경우, 사람과 사물, 기억과 행적들, 온갖 정보잃는 것은 마음 아픈일 이지만 생활에 큰 문제를 야기하진 않는다. 반면 나쁜 말들로 언어폭력을 일삼을때 경우에는 가족들과 편안하고 행복한 일상을 영위하는 그런 미래를 그릴 수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착한 치매라고 불리는 것은 어쩌면 나쁜 말들을 자주 내뱉지 않기에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싶다.


입에 밴 말은 걸음걸이 만큼이나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기억은 잃어도 말투와 언어는 몸에 고스란히 남는다. 그렇다면 좋은 말을 무수히 반복 사용하면 나의 말들은 무의식 어느 서랍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가령 치매에 걸려 자식을 보고도 당최 이름이 기억나지는 않을지언정 상대방에게 건네는 말의 표현은 크게 바뀌지 않을 듯 하다. 내가 누구인지, 당신이 누군인지 모를 때 누군가가 친절히 알려준다면 그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말은 잊지 않겠지. 아무리 치매환자라도 순간적으로 고마운 마음을 느낄 때는 뭐라고 했던가?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많은 시간을 들여 좋은 말, 예쁜 말을 쓰는 것이 치매임에도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란 생각을 해본다. 상대를 비난하는 말보다는 인정하는 말, 고마움을 전하는 말, 애정을 표현하는 말을 많이 내뱉어 보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를 발견한 것 같다. 애써 좋은 말 하는 것이 어렵다면 애써 나쁜 말을 하지 않아보는 노력을 해보는건 어떨까. 쩌면 치매보험보다 든든한 나만의 가성비 훌륭한 보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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