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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Oct 30. 2024

하늘충의 고백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부터 어렴풋이 작가의 꿈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작가가 되기에 내겐 치명적 단점이 하나 있다.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작가는 모름지기 다양한 경험과 기억 재료를 꺼내 맛있게 글로 버무려야 하는 사람이거늘. 어째 경험의 기억을 꺼내는 데는 늘 서툴다. 그나마 일상에서는 자주 깜빡하는 나를 메모라는 친구가 부축을 해가며 살아가고 있지만 모든 경험을 글로 메모해 놓기는 참 어렵다. 설령 메모를 해놓더라도 해당 사실을 메모해 놓았다는 사실조차도 잊을 때가 있다.  


기억을 좀 세분화하자면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으로 나눌 수 있을 텐데 단기기억은 좀 나은 편이라 자격시험 같은 것은 잘 보는 편이다. 이건 벼락치기에 능한 잔머리겠지. 남들은 상식이라 여기는 것들을 나도 분명 공부했는데 그 기억이 선명하지 않을 때, 인생에 도움 되는 것들을 머릿속에 꽉 붙잡고 싶은데 자꾸만 증발해 버릴 때, 분명 좋은 기억으로 마음속에 저장되었던 말과 풍경이 어슴푸레해질 때, 속이 상하기도 한다. 


가끔 기억력 좋아지는 법. 읽은 책을 오래 기억하는 법 따위를 검색해 본다. 그러다 어떤 뇌과학자가 하는 이야기에서 나는 꿀팁을 하나 건졌다. 오래 기억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을 제시했는데 그건 바로 '감동하기'란다. 과학적인 설명이었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깊게 오감을 활용하여 감동하는 순간 뇌는 단기에서 장기 기억주머니로 보낸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자주 감동하는 사람이 되라고 충언을 덧붙였다.  

 

자주 감동하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감동을 잘하는 것도 어쩌면 타고난 것 아니냐며 유전자 타령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즈음 볕 좋은 날 잔디밭이 넓은 야외 카페에서 친구와 마주 앉아 미주알고주알 수다를 떨다가 리액션이 상당히 좋은 내 친구가 말했다. 


"오늘 날씨 진짜 좋다. 야 구름 좀 봐봐. 너무 이쁘다아아아. 진짜 뭉게구름이네(친구의 표정과 리액션을 글로 다 담기는 어렵다)."


"그러게 날씨 좋다. 근데 몽실거리는 건 다 뭉게구름 아니니?"


"아니야! 뭉게구름은 진짜 맑은 날에만 볼 수 있는 거야. 아래는 평평하고 위에만 올록볼록한 모양이거든."


구름에 대한 일장연설과 파란 하늘색에 대한 감탄을 한참이나 늘어놓는 친구를 보며 매일 마주하는 하늘을 보고도 이렇게 감탄을 할 수가 있는 것에 매우 놀랐고 한 가지 깨달았다. 감탄하는 것도 습관이라는 것을. 친구는 별것 아닌 것에 늘 깜짝 놀라듯 리액션을 하곤 한다. 습관은 연습으로 다져질 수 있다는 사실도 마음속에 상기되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를 들어보기로 했다. 스스로 하늘충이라 칭하며 구름과 파란 하늘을 애정하게 되었다. 감동하니 조금 자세히 보였다. 자세히 보다 보니 알고 싶어 졌다. 사물에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는 우리 조상님들은 구름마다 이쁜 이름들을 붙여놓았다. 위턱구름, 새털구름, 양떼구름, 면사포구름 등등. 그러고 보니 구름 모양은 어느 한순간이라도 같은 것이 없었다. 게다가 배경인 하늘색의 명도도 시시각각 변하니 바람 타고 흘러가는 구름은 진정 생명이 부여된 무언가로 느껴지기도 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어느 섬 사람들은 파란색에 관한 단어만 해도 50여 가지가 된다고 한다. 그들 세상에서는 하늘과 바다로 기억되는 매일이 다양한 경험으로 추억될 수 있도록 푸른빛을 나타내는 말을 그리 많이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까. 


뇌과학자가 일러준 '감동'이 기억하는데 좋은 방법이라 했던 것은 그 대상을 자세히 살피고, 그러다 보면 궁금함과 의문점이 생기고, 이를 해소하려고 여러 번 마음속에 머금고 있음으로써 머릿속에 오래 기억되는 것 일터이다. 어쩌면 이렇게 할 수 있는 진심 어린 태도가 감동할지 말지, 오래 기억할지 말지를 좌우하는 것은 아닐까. 자주 감동하는 사람이 되어 기억력이 좋아지고 싶은 소망이 있지만, 당장은 고개 들어 매일 하늘을 올려다보기로 한다. 한 가지에 자주 감탄을 하다 보면 조금 나은 무언가가 되어있겠지. 


비행물체를 날리는 아빠와 아들을 찍으려다 하늘이 주인공이 된 하늘충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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