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토리 Sep 25. 2023

7. 행복을 발견하는 일상의 낙원

유난히 햇살이 좋았던 2020년 4월 어느 날, 어떻게 해서든 소화를 시켜보겠다고 공원을 찾았다가 근처 오이도 바닷가에 잠깐 간 적이 있다. 배모양을 하고 있는 함상전망대 부근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데 해면 위로 일렁이는 태양빛을 보고 발걸음을 멈춰 섰다. 무척이나 예뻤다.


신기하다. 몸이 크게 아프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주변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불어 물살이 일 때마다 명멸하는 그 반짝거림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예쁜 거였구나' 하고 느꼈던 그날. 처음 본 바다는 아니지만 마치 처음 바다를 보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꼭 다시 바다 보러 와야겠노라고 다짐을 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뇌신경센터에서 입원 및 통원치료를 받으며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 더욱 정확히 말하면 뇌혈관 수축억제해 주는 신경계열 약과 주사를 맞으니 소화가 어느 정도 되었고, 음식 양을 늘려 먹기 시작했다. 음식을 먹은 뒤 숨도 어느 정도 쉴 수 있었다.


간혹 숨쉬기가 너무 힘이 들 때엔 별도로 먹으라고 병원에서 약을 여유 있게 처방해 주었다. 음식을 사람답게 먹으니 우울감도 어느새 저만치 도망가고 있었다. 컨디션이 완전하게 예전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살만한 수준이 되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역할을 조금씩 해나갈 수 있었고, 재미있는 농담에도 미소 지을 수 있는 상태는 된 것이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면서 팔다리에 힘이 생겼고 산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더 이상 친정엄마한테 부탁하지 않아도 혼자서 아들 손잡고 매일 어린이집 등하원도 해줄 수 있게 되었다.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을 가는 시간은 3분 남짓이다. 3분의 시간이 이리도 행복한 적이 있었던가.


어린이집 오가는 길은 다소 긴 계단을 거쳐가야 했다. 어느 날 등원시키고 내려오는 길에 고개를 돌려보니 양쪽에 우뚝 선 낙상홍에는 빨간 열매들이 콕콕 박혀있었다. 붉은빛이 도는 열매 몇 개를 따서 요리조리 살폈다. 어떤 열매는 상처가 깊어 울퉁불퉁했고, 어떤 열매는 모난데 없이 매끈하니 꼭 컴퍼스로 그린 작은 공모양처럼 동그랬다. '같은 햇볕을 보고 바람을 맞지만 너희도 자라는 건 참 제각각이구나.' 하며 한참을 구시렁 대며 열매 몇 알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왔다.


돌아와서 주머니에서 열매를 꺼내는데 웃음이 새어 나왔다. 1년 전 세 살배기 아들은 가을에 동네 산책을 하다가 열매가 보이면 아파트 주민들 눈치가 보일 정도로 많이 따서 주머니에 한가득 넣어오곤 했다. 그 열매들이 여러 번이나 세탁기에 그대로 들어가 새 옷을 망쳤다며 구두덜대곤 했던 내가 떠오른 것이다. 아빠나 엄마에게 보여주겠다며 가을엔 열매를 자주 따오는 아이를 따라서 이번엔 내가 아들을 보여주려고 열매를 챙겨 오는 모습이 달가웠다. 다시 작은 일상이 내 삶에 젖어들어오고 있음을 인지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하는 행동에서 1년 전 추억을 소환해 곱씹으며 웃음 지을 수 있는 그런 작은 일상들.    


좀 더 기운이 나는 날엔 아이와 집 근처 푸른 수목원에 들러 좋은 계절을 누리기도 했다. 아이와 손잡고 걷는 그 길에서는 딱히 무얼 하지 않아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을 수 있는 그 자체에 살아있음을 느꼈다. 나에게 잘 걷는다는 건 숨을 어느 정도 쉴 수 있다는 의미와 같다. 숨 좀 쉬니 걸을 수 있었고 그저 걷고 느낄 수 있음에 고마움을 떠올리게 되었다.    


오랜만에 찾은 가을 수목원은 꼭 미술관 같았다. 다채로운 단풍 색으로 어느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아도 멋들어진 풍경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빨간 단풍나무 한 그루가 원래 이렇게 예뻤던가. 그동안 뭉뚱그려 알록달록이란 이름으로 퉁쳐 버린 게 미안할 정도로 붉은빛은 강렬하면서도 우아했다. 햇빛을 받는 높이에 따라 나뭇잎 색 명암이 달랐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모양과 크기, 색깔이 같은 단풍잎은 하나도 없었다. 신혼 때부터 자주 갔던 수목원에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예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날 좋은 야외에서는 유독 미소 짓는 순간이 많아졌다.




회복되면서 가장 먼저 외식한 식당은 양고기집이었다. 남편이랑 아이랑 함께 맛있게 먹을 생각에 기분 좋은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가족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온종일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은 처음 느껴보는 반가운 기분 좋음이랄까.  


그동안 아이에게 읽어주지 못한 그림책을 한 번에 오래 읽어줄 수는 없었지만 잠들기 전에 두세 권 정도는 읽어줄 수 있어서 그게 어찌나 다행이던지. 더 많이 회복되어 오래 책을 읽어줄 수 있기를 바라며 마지막 책장을 덮곤 했다. 그러고선 마주 보고 누워 아이 숨냄새를 맡으니 아들의 사랑스러움 그 자체가 내 몸에 그대로 흡수되는 느낌을 받곤 했다. 아들의 날숨이 나의 들숨이 되는 그 순간이 내가 엄마로서 느끼는 가장 고귀한 순간 같았다. 이 고귀한 순간에 스르륵 함께 잠이 드는 것은 나에게 고귀한 축복이었다.  


'그래 이렇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거지'라는 생각이 일상에서 나를 문득문득 멈추게 했다. 나에게 사람답게는 숨을 편안히 쉬고, 제때 적당량을 맛있게 먹고, 자야 될 때에 잘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몸이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바란 것은 오로지 이 세 가지였던 것 같다.  




낙원은 일상생활에 있든지 아니면 없다
- 김훈 『자전거여행 1』


회복하며 다시 마주한 바닷가는 서해가 아닌 동해바다였다. 몇 달 전 보았던 바다별빛을 다시 보기 위해 화창한 날 바닷가로 나갔다. 조금 위에서 내려다보니 도처에 반짝이는 별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 별은 서해에도 있고 동해에도 있었다.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미래에도 있을 거라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아프기 전에도 예쁜 열매, 풍경화 같은 수목원, 맛있는 음식, 사랑스러운 아이의 숨냄새는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들이다. 다만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 만약 발견하는 찰나가 행복이고 낙원이라면 나는 이제 하루에도 몇 번씩 낙원에서 뒹굴며 놀다 올 수 있을 것 같다.     


보이지도 않는 큰 행복을 좇았던 지난 날들. 일상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른 척했던 날들. 그저 작은 일상이 주는 감사함을 느끼는 시간이 낭비로만 느껴져 내팽개쳤던 날들.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무언가를 했던 그날들이 어쩌면 낙원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 초절정 암흑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몸에서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 보통의 날은 돈주고도 살 수 없는 삶의 소중한 순간이다. 특별한 이벤트 없이 무사히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감동인지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별일 없는 일상에서 내가 발견하고 느끼기만 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선물로 받은 것 같아 감사하련다. 매일 작은 행복을 발견하고 감동하고 느끼고 지내면 어느새 내 몸이 모두 다 회복이 될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7편 끝.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매년 가을이면 그 자리에서 빨간 단풍을 선사해 주었던 너_이제라도 너만의 예쁨을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휴!


이전 06화 6. 비정상인의 희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