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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Sep 28. 2023

8. 약과가 참 좋아

이사 온 아파트 상가에 '이름 없는 과일가게'라는 매장이 생겼다. 영어 이름도 No name fruit이다. 독특한 이름에 끌려 들러보았는데 과일뿐 아니라 주전부리들도 함께 팔고 있었다. 참 오랜만에 약과를 보고 사 먹어 보았다. 달짝지근해서 출출할 때 한 개씩 까먹으면 포만감도 있고 맛도 좋아 지금은 최애 간식이 되었다. 


어릴 땐 추석이나 설 명절 때나 약과를 먹었던 것 같은데 과일가게에서 약과를 사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소문을 듣고 온라인으로 맛있는 찹쌀약과 공구를 해서 사 먹기도 했다. 야외 나들이 갈 때도 약과를 꼭 챙겨간다. 옛날 간식 같지만 어른 아이 모두 만족시키는 맛있는 간식이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필명을 뭐로 할지 고민하며 밤 10시에 뽀시락 거리며 약과 비닐을 벗겨 먹고 있는 나에게 남편은 '그냥 약과라고 해.'라며 한마디 툭 던지며 침실로 들어갔다. 나는 필명이 그게 뭐냐? 하며 웃어넘기다가 '약과 내가 진짜 좋아하긴 하지...' 하며 약과에 대한 생각을 잠시 했다. 


단어에 대한 생각을 할 땐 사전에 검색을 해본다. 꿀과 기름을 섞은 밀가루나 찹쌀가루 반죽을 판에 박아서 모양을 낸 후 기름에 지진 과자라는 첫 번째 뜻 말고 두 번째 뜻을 보는 순간 시선이 잠시 멈췄다. 참 맘에 드는 말. 내가 안 좋은 일을 겪거나 불행한 일을 마주했을 때 나 스스로 혹은 친한 지인들이 해주던 말. 


그만한 게 진짜 다행이야.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네.


그만한 것이 다행임. 또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님을 이르는 말. 

 - 약과(藥果)의 두 번째 뜻. 네이버 국어사전 - 




몸이 크게 아프면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다. 한번 망가진 내 자율신경은 약을 먹는다 해도 단기간에 완전히 돌아오진 않았다. 


소화가 100% 아무렇지 않게 되지는 않았지만, 맛있는 약과는 먹을 수 있었다. 그래도 먹기만 하면 속에서 '턱' 하고 막히는 건 없어졌으니, 깊은숨을 쉬기는 어렵지만 살아있는 만큼 쉬어지니 그만하면 됐다고. 죽을 만큼 힘들었을 때에 비하면 정말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브런치 필명을 고민하다가 내 인생도 약과처럼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굳게 하게 되었다. 비단 불행한 일 앞에서만 약과를 떠올릴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약과처럼 살고 싶어졌다. 


아이가 자전거 타다 이마와 양 팔꿈치가 멍들고 까졌을 때도 

'그만하길 정말 다행이야. 머리가 크게 다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요리하다가 생선이 눌어붙어 탔을 때도

'다행이다. 생선 전부 다 타지 않아서 먹을 수는 있잖아.'


외출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나서야 집에 놓고 온 중요한 물건이 생각났을 때도

'그래도 다행이다. 차 타기 전 엘리베이터에서 생각이 나서.'


뭔가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화와 짜증이 나거나 원치 않는 일이 생겨서 놀라고 당황했을 때도 약과를 떠올려봐야겠다. 그래도 다행이라 말할 수 있는 건 주어진 상황에 최대치의 감사함을 표하고 만족할 줄 아는 긍정적인 삶의 태도이다. 감사의 말과 더불어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남발해도 좋을 말은 바로 '다행이다' 이 말이 아닐까 싶다. 


거지 같은 몸의 증상은 아직 남아있지만 이만하길 얼마나 다행인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오늘 하루여서 감사하다고 진심을 다해 이야기하고 싶다. 


오밤중에 출출할 때도,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절실할 때도 나에겐 약과만 한 것이 없다. 지금 내 모든 상황이 이만하길 참 다행이다. 그저 다행이다. 


<9편 끝.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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