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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Oct 02. 2023

9. 미스터리 한 회복

자율신경실조증 회복해준 생명의 은인을 기억하며

자율신경실조증 회복을 위해 병원을 다니며 한 가지를 더 병행해 보기로 했다. 기능성소화장애, 위장장애 환우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운동인데 주 1회 집으로 방문하는 재활 PT였다. 선생님은 30대 초중반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직접 만나 상담을 받으면서 기능성소화불량 환자들을 꽤 많이 도와주었다는 경험에, 소화불량이 제일 회복이 쉽다며 자신 있어하는 모습에 믿고 시작해 보기로 했다. 운동의 주요 목적은 내 몸에서 상실된 운동기능을 살리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흉곽'을 열어 범위를 넓게 하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했다.


운동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호흡을 들이마시고 멈춘 후 스쿼트를 한번 하고 상체가 다시 올라온 상태에서 호흡을 내뱉는 것이다. (호흡이 매우 중요)


"호흡근육이 다 망가져있네요. "


처음 숨을 들이마시는 모습을 보더니 호흡근육을 언급했다. 호흡하는 데에도 근육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동시에 역시 깊게 마시는 숨이 내겐 참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흉곽은 식사 후나 일어나거나 걷는 등 움직임이 있을 때 자율신경의 원칙적인 반응에 의해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벌어지는 것이 정상이에요. 그러면서 소화도 자연스럽게 진행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굳어있었으니 힘드셨겠네요."


나처럼 온갖 증상에 시달리면서 소화 안되고 숨을 못 쉬어 답답한 사람들의 특징은 흉곽이 굳어있거나, 잘 벌어지지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걷기만으로도 충분히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호흡근육을 비롯한 많은 신체 운동기능이 상실되어 있기 때문에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PT선생님 말에 의하면 재활해 주는 대상들 가운데 소화불량이 이 운동으로 회복되는 것이 가장 수월하며 2~3개월이면 정상회복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단순히 위로하는 말이 아니라며 건네주는 그 말이 명백한 사실이길 바랐다.


호전되는 정도가 일정하지 않아 컨디션은 오락가락했다. 우리 몸의 세포교환주기는 약 30일 정도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가 되어야 눈에 띄게 호전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서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PT선생님은 내 상태에 따라 호전될 나의 컨디션을 이야기해 주셨다. 예를 들면,


"흉곽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에는 잠부터 올 거예요. 잠이 막 쏟아지면서 피곤함도 느낄 것이고요." 라는 식의 몸의 회복 순서를 이야기해주었다. 


'아니 그렇게 잠자려고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약에 의존해야지만 겨우 잠드는 나였는데, 흉곽이 조금 벌어진다고 잠이 온다고? 그게 가능해?' 라며 속으로 의심을 한가득 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도 아닌 낮에 혼자 거실 빈백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 아닌가! 약을 안 먹고도 내가 졸 수가 있다니. 어떻게 졸 수가 있지? 너무 신기해서 다음 주 PT선생님 방문했을 때 내 상황을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이 운동을 하면서 가장 먼저 좋아진 부분은 수면이었다. 잠이 자연스레 드니 약을 먹지 않아 보았다. 서서히 단약을 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잠이 오는 게 너무 신기해서 하루 이틀 안 먹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잠이 들었고 새벽에 1~2번 깨긴 해도 약 없이 잠잘 수가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PT선생님에 대한 신뢰도가 엄청나게 상승했다. 이 운동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버리기로 했다.


"당분과 염분이 근조직합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거든요. 과자랑 음료수 많이 드세요. 인스턴트 나쁘지 않아요. 본인 회복하는 데에는 인스턴트만 한 것이 없으니 많이 드세요."


오 마이 갓.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매주 뭔가 내가 알고 있던 상식들이 모조리 파괴되는 것 같았다. 소화가 완전히 되지 않는 사람에게 과자와 인스턴트가 아주 좋다는 말에 그게 정말이냐며 몇 번을 되물었다.


"그동안 겁나서 술도 안 드셨죠? 술이 참 소화가 잘 되는 거예요. 주 1회 정도 가볍게 맥주 한잔씩 마셔보세요."


그렇게 나는 매주 먹는 음식 미션을 받았다.  


"이번주는 햄버거도 한번 드셔보세요."

"배달음식도 드셔보시고요."


기능성소화불량 환자를 많이 상대해 봐서 그들이 어떤 식사패턴을 갖고 있고 선호하는 음식(소화 잘되는 식재료)이 뭔지를 훤히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음식에 대한 거부와 공포심을 극복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PT선생님 덕분에(?) 과자와 인스턴트를 세상 맛있게 먹으며 운동했다. 주 1회 방문해서 호전상태를 체크하고 호흡과 자세, 시선 등 잘못된 부분은 계속 잡아나갔다. 매일 혼자 하는 운동 숙제도 있었다.


"운동은 하루에 스쿼트 총 3세트만 하세요. 빨리 호전되겠다고 열심히 하면 안 돼요 절대!!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어요."

"왜 열심히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열심히 해서 빨리 좋아지면 좋은 거 아녜요?"

"열심히 해도 소용없어요. 열심히 하겠다고 많이 하면 스트레스받아요 그게 더 안 좋아요. 몸의 신경은 매일 일정한 자극만 주면 알아서 학습하도록 되어있어요. 매일 딱 그 정도 운동(15~20분)만 하면 충분해요."

'아~~~~ 그렇군요."


기묘한 일은 또 벌어졌다. 소화되는 컨디션이 좋아질수록 무릎이 상당히 아파왔다.


"선생님, 제가 컨디션 많이 좋아졌는데요. 무릎이 요새 너무 아프네요."

"원래 허리랑 무릎 안 좋았을 거예요. 제가 재활해 드리는 분들 중에 척추 건강하신 분 없어요. 본인도 척추가 좋지 않아요. 무릎은 척추가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좋아져요. 너무 걱정 말아요. 운동하면서 척추가 곧게 펴지면서 무릎도 좋아질 거고 키도 좀 클 수 있어요."

"키도 클 수가 있다고요? 근데 무릎이 안 좋았으면 예전부터 아팠어야 하는 거 아니었나요?"

"아, 다른데 통증들이 심하고 불편한 데가 컸기 때문에 몰랐을 거예요. 몸의 신경에는 우선순위가 있어요. 젤 크게 느끼는 부분이 있으면 그것보다 덜한 것은 느끼지 못하는 거죠. 몸 컨디션이 좋아지니 이제 무릎 불편감이 드러나는 거예요."

"아~~~~ 그렇군요."


감탄이 섞인 짧은 대답을 마치며 늘 선생님을 배웅하는 것 같다. 초반에는 뇌신경센터 진료를 병행하며 운동을 했다. 잠잘 때 도움받는 약은 운동을 하고 얼마 안 되어 바로 끊었고, 소화되는 컨디션에 따라서 그 밖의 약도 먹는 횟수가 점차 줄어갔다.




신기하게도 운동하고 2달 정도 지난 시점에서는 무릎도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편안해졌다. 잠은 약을 먹지 않고도 잘 잘 수 있게 되었다. 인스턴트와 과자 덕분일까. 몸무게도 20kg 이상 찌면서 원래의 몸무게로 돌아왔다. 20kg 찌는 데는 2개월이면 충분했다. 끊겼던 월경도 어느덧 다시 시작했다.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였다. 너무 반가운 신호였다. 건강검진 할 일이 있어 키를 재보니 0.7cm 키도 컸다. 3개월간 진행한 재활 PT를 마무리했고 나는 정상에 가깝게 회복했다. 일상생활이 크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좋아진 것이다.


"선생님은 제가 만난 의사들보다 더 의사 같아요."


PT선생님은 멋쩍어하며 웃었지만 나는 정말 그렇게 느꼈다. 나를 살게 해 준 의사 같았고 생명의 은인이라 생각했다. 운동이 끝나는 시점에서는 뇌신경센터도 가지 않았다. 더 이상 약을 필요로 할 만큼 악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동 초기 어느 날 PT선생님한테 물었다.


"제가 자율신경실조증 진단을 받았는데, 지금 하는 운동이 망가진 자율신경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건가요?"

"네네~ 맞아요."


간단히 맞다는 대답을 듣긴 했지만 당시 의구심은 있었다. 내 몸이 회복되어 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스터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동을 하면서 점차 알게 되었다. 뇌에서 몸으로 연결된 몸의 신경은 척추 부근이 신경이 지나가는 통로라는 사실을. 척추 번호마다 몸에 관여하는 신경 부분도 달랐다. 그리고 횡격막 부근으로 아주 많은 신경들이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도. 기능이 상실한 운동 신경을 매일 일정시간 자극 하면서 신경을 살리는 운동을 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3개월간 미스터리 한 회복이었지만 뭐 어쨌든 환자 입장에서 왜 그런지를 따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회복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운동이 좋다는 말은 역시나 맞는 말이었다. 운동으로 내가 이렇게 많이 회복된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나에게 도움이 되는 운동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나에게 등산, 필라테스 등 에너지 소모가 많은 운동은 하등 도움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시킬 뿐이었다. 내게 맞는 운동을 찾아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 귀중한 시간이었다.  




뇌신경센터 의사는 나에게 말했다.


'자율신경이 기온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겨울에 컨디션이 바닥을 칠 것이고, 2021년 1월 입원여부가 관건이다.'라고... 재활PT를 시작하면서 이날 이후 지금까지 병원은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운동을 하던 그해 겨울 나는 오히려 컨디션이 한층 좋아졌고, 1월에 입원은 하지 않았다.


<10편 끝.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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