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하반기, 느닷없이 아이가 혼자 유치원 차량에서 내려 엄마 없이 혼자 집으로 오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세상 내가 최고지 하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6살 아들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마음을 들어주며 조금 시간이 지나고 해 보자고 다독였다.
아이가 유치원 차에서 내리는 곳에서 집까지 거리는 가까운 편이다. 아이 걸음으로 5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짧은 거리지만 미취학 아동이 혼자 길거리를 다닌다는 생각 자체를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만약 내가 길에서 혼자 어디론가 걸어가는 키 작은 유치원생을 보면 혹 엄마를 잃어버렸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 뻔하다.
그러다가 문득 나의 코흘리개 유치원생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혼자 집동네를 서성거리며 놀러 나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오빠 따라서 혹은 친구들과 해가 질 때까지 동네 어귀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일하시는 엄마가 조금 늦게 오는 날에는 깜깜한 밤에도 자유롭게 집 밖에서 놀았던 것 같다. 사건 사고가 많아 무서운 세상이 된 '요즘시대'에는 감히 상상하지 못할 일들이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6살 아이의 혼자 해보고 싶은 발달 욕구는 여전히 비슷할 터인데... 세상과 주변 환경 탓에 내불안이높아져 아이의 자유와 욕구가 억압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도달했다. 과연 내가 어렸을 때 그 시절은 진정 지금보다 사건 사고도 덜한 안전한 시대였을까?
내가 내린 답은 'No'이다. 내 기억 속에 세상은 혼돈 그 자체였다. 엄마는 버스정류장에서 소매치기를 당해 지갑을 종종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남대문 시장에서 공예품 가게를 하는 부모님을 따라 시내에 나갔다가 시위하는 날이면 체류탄 냄새에 입과 코를 틀어막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들이 아직도 선연하게 남아있다. 중학교 시절에는 우리 집에 좀도둑이 들어 집에 몇 없는 귀금속들이 사라진 적도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오히려 안전한 시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길거리 곳곳에 CCTV도 설치되어 있고(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사건이 많이 발생하지만...) 어린이 보호 구역도 잘 되어 있기도 하다. 의기양양하게 내비친 아이의 도전을 엄마가 너무 꺾는 건 아닌가 싶어 우선점진적으로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차량에서 나와 만난 후, 아이는 지상으로, 나는 지하로 각자 따로 가서 아파트 1층에서 만나기를 여러 번 해보았다. 그다음에는 혼자 엘리베이터까지 타고 올라오기, 마지막으로는 집 현관문 비밀번호까지 누르고 혼자 집까지 들어가기를 여러 차례 해보았다.
6살 겨울방학이 끝나고 혼자서 집까지 와보겠다고 선언을 했다. 여러 차례 연습해 보았으니 이제 혼자 집까지 무사히 올 수 있겠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차 사고가 나진 않을까, 아이 혼자 다니는 것을 지켜보다 데려가진 않을까 하는 막연한 예기불안들이 불쑥 올라오기도 했다. 이런 마음을 아이에게 내비치지는 않은 채 위험상황이나 돌발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것을 충분히 알려주고 이야기 나누었다.
드디어 혼자 차량에서 내려서 혼자 집까지 오기로 한 날이다. 아들은 나보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등원했다. 마냥 집에서 기다리기에는 나는 여전히 불안이 높은 엄마였다. 몰래 아파트 복도 창문으로 아이가 오는 길을 지켜보기로 했다. 올 때가 되었는데 왜 안 오는 거지? 하며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아이가 창문밖 내 시야에 들어온 후에야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홀로 씩씩한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집으로 걸어오는 모습을 보니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거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제부터 아이는 내 품을 떠나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천천히 하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자 기특하면서도 뭉클한 기분과 동시에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보호자라는 이름표를 나도 서서히 떼어가겠지. 앞으로 내가 아이에게 해주어야 하는 부모 역할이 무엇 일지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혼자 하원 성공했던 날, 현관문이 열리고 아이 얼굴에는 뿌듯함이 한가득했다.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과 동시에 자기 효능감으로 한껏 취해있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이 귀엽고 대견스러워서 꼭 안아주었다. 혼자 하원을 한지 이제 2달 차에 접어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복도 창문으로 아이의 유치원 퇴근길을 지켜보고 있다. (물론 아이는 절대 이 사실을 모른다. 앞으로도 몰라야 한다.) 숲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는 숲에서 신나게 놀고 옷을 전부 갈아입을 때도 있다. 그런 날은 옷을 한 짐 들고 혼자 걸어온다. 혼자 낑낑대면서 버겁게 들고 걸어오지만 엄마는 그저 집에서 웃으며 본인을 맞이해 주었으면 좋겠단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독립심 하나는 강한 아이가 되어가고 있는 듯싶다. 여전히 불안해하는 엄마지만 이 마음 꽁꽁 잘 감추고 아이의 홀로서기를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응원해 주어야겠다. 그리고 어쩌면 응원과 지지가 앞으로 내가 부모로서 해야 하는 가장 큰 역할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