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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선호가 Apr 22. 2024

나의 번아웃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시작을 알아야 끝을 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그 시간들을 기록한다

나는 최근 병원에서 번아웃증후군으로 진단을 받았다. 나는 도대체 언제부터 지금의 상황으로 달려온 것일까? 왠지 모르게 그 시작을 알아야 끝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시간들을 기록해 보기로 했다. 


번아웃증후군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어떤 일에 지나치게 집중하다보면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모두 불타버린 연료와 같이 무기력해지면서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는 증상으로, 일이 실현되지 않을 때나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피로가 극도로 쌓였을 때 나타난다.  [네이버 지식백과] 번아웃 증후군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그랬다. 나는 갑작스럽게 쓰러진 남편과 고3 아들, 그리고 회사 이 모든 것을 유지하기 위해 지나치게 집중하여 왔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출처 : 게티이미지 코리아

23년 3월, 남편은 카톨릭대학 이비인후과에서 코암일수도 있다는  오진 판정을 받았다. 나는 검사결과가 나오기까지 3월  한 달 동안 극도로 불안정한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오진으로 판정이 되면서 우리는 병원을 옮겨 4월 아산병원에서 축농증 수술을 받기 위해 외래를 보고 수술일정을 잡았다. 최대한 당겨 잡은 수술일정에 맞추기 위해 6월14일에 입원전 검사를 진행하였다. 


내게 3월 이후 4월에서 6월 중순까지는 태풍의 눈처럼 무척이나 평온한 시간이었다. 암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을 맛보았던지라 일상이 너무나 감사했고 수술을 앞두고 있는 남편을 위해 최대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했다.


우리는 6월 하순에 예정되어 있는 집 이사를 위해 집안 정리를 하기도 하고 따뜻한 봄날을 만끽하며 산보를 하기도 하고 나들이를 가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3월 이전과 별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냈다. 


하지만 남편은 나와 좀 달랐던 것 같다. 그는 5월 후반부터 건강에 조금씩 이상을 감지했지만 의사인 남편은 워낙 잔병치레를 하는 편이어서 그런 소소한 문제들을 그리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한다. 


6월 14일 수요일에 입원전 검사를 마치고 난 후 목요일과 금요일에 남편은 무척 피곤하다고 했다. 그래서 금요일 오후에 병원에서 영양 수액을 맞았다고 했다. 그런데 토요일 새벽, 허리가 너무 아파 누워 있을 수가 없다며 잠을 설쳤다. 평소와 달리 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우리는 후배가 하는 신경외과에서 진료를 보기로 했다. 디스크가 좀 튀어 나와 그런 것 같다고 주사치료를 받았다. 치료 이후 주말 동안 상태는 호전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일요일 저녁 부터 월요일 새벽까지 남편은 다시 통증을 호소했다.허리도 아프고 팔다리 모든 곳이 다 아프다고 했다. 극도의 통증으로 기절할 것 같았다. 월요일 아침 다시 신경외과를 찾았다. 남편과 후배는 증상에 대해 서로 이야기한 끝에 인 것 같다는길렝 바레 증후군 결론을 내렸다. 서둘러 응급실로 들어가는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길렝 바레 증후군?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하긴 한데 도대체 그 병은 어떤 병이길래 이렇게 촉각을 다투는 걸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갔다. 

(길렝 바레 증후군 은 자가면역성 다발성 신경염으로 몸의 면역계가 신경계의 수초를 공격해 파괴하는 질병으로 말초신경계를 시작으로 전신에 걸쳐 진행된다. 걸음이 어려워지거나 통증과 함께 인공호흡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환자는 면역글로불린을 정맥주사하거나 혈장분리교환술로 대부분 잘 치료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길렝-바레 증후군 [Guillain–Barré syndrome] (미생물학백과 )


나는 서둘러 운전해서 아산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이렇게 촉각을 다투며 응급실을 가 본것은 아들이 농구를 하다 눈위가 찢어진 이후 처음이었다. 통증과 추위를 호소하는 남편을 간신히 휠체어에 태우고 많은 후회를 했다. 응급실은 모든 사람들이 응급이라고 생각하기에 접수한 순서대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앰뷸런스를 타고 올걸 하는 후회를 했다. 앰뷸런스를 타고 누워 의식이 없으면 보다 더 빠르게 분류가 되고 진료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빨리 수속을 마치고 싶은 생각에 나의 머릿속은 생각의 실타래가 엉키고 또 엉켜들어갔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대기 시간 이후 우리는 길렝 바레 증후군 일지도 모른다는 소견 때문에 보다 더 응급환자로 분류 되어 침대를 배정받았다. 그리고 온갖 검사가 시작되고 다양한 진료과목의 의사들이 다녀갔다. 꼬박 1박2일 넘게 온갖가지 질문과 검사가 진행되었다. 그렇지만 진단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만큼 남편은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했다. 어떤 질환인지 판명되지 않으면 치료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었다. 통증을 호소하는 남편과 함께 나는 그렇게 응급실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며칠을 보냈다. 


아마도 나의 번아웃의 시작은 그 때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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