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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선호가 Apr 29. 2024

그렇게 우리는 환자 가족이 되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과연 그게 최선이었을까

언젠가부터 내가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지나치게 화를 내고 그런 후에는 나 자신을 자책하며 울었다. 그런 행동이 잦아지니 스스로 자괴감이 들었다.

이유 없이 공허감이 밀려왔다. 무기력하기도 하고 매사에 흥미가 떨어졌다. 무기력함과 함께 찾아오는 공허함은 나를 끝도 없는 나락으로 끌고 내려갔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고 싶지 않고 그저 조용히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더 의욕적인 게 아닌가 싶었다. 가만히 있다고 죽음에 이르는 게 아니다 보니 죽으려면 움직여야 하는데 그 생각조차도 들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뿐.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밀려오는 공허함은 침대에서 나를 붙잡아 두었고 쌓여 있는 그날그날의 일들은 나를 힘들게 했다.


응급실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공간을 구분해 놓은 듯했다. 침대와 작은 접이식 의자 하나. 이게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공간이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최대한 옆 침대와 부딪히지 않기 위해 노력 했다. 오전에 들어왔던 응급실에서 우리는 저녁을 맞이했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남편은 통증과 함께 무슨 병인지 모른겠다는 막연함과 불안감으로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코로나 막바지여서 응급실 출입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출입증만 있으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그리 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정확한 병명도 알지 못한 채 학교에서 돌아오는 고3 아들을 챙기기 위해서 저녁 10시가 조금 넘어 조심스럽게 집으로 향했다. 응급실을 나오니 눈물이 솟구쳤다. 함께 의논할 사람도 하나 없었다. 막막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아들에게는 이런 엄마의 불안함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처연하게 대처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눈물을 꾹 참으며 아들에게 아빠가 병원에 있어서 오늘은 집에 오지 못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아들이 말했다. '아빠 내일은 오는 거지?'

평소 거의 외출을 하지 않고 집과 병원만 오가던 아빠이다 보니 갑작스러운 이 상황이 아들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일 돌아온다면 큰 병은 으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나는 덤덤하게 며칠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평소처럼 별 일 아니라는 듯 아들을 대하려 노력했다. 아들이 간식을 먹고 잠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


새벽 1시 정도 다시 응급실로 향했다. 우리 부부는 그날가지 아들을 혼자 두고 집을 비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혹시나 아들이 새벽에 깨지 않을까 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편을 응급실에 혼자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불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응급실에 돌아와 접이식 의자에 몸을 구겨 넣었다.


이렇게 딱딱한 의자에 앉아 밤을 새우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이렇게 많은 주변 소음과 불빛 밑에서 눈을 붙이기 위해 노력하게 될 거라고도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잠을 잔 건지 그냥 눈을 감고 있었던 건지 모를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의료진들이 커튼을 열고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하였고 새벽이 깊어질수록 응급실은 더 시끄럽고 혼잡한 곳이 되어갔다.


아침 6시 반쯤. 나는 다시 집을 향했다. 조용히 대문을 열고 들어가 아침밥을 준비했다. 아들을 깨우고 밥을 먹여 등교시켰다. 아들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고마웠다. 아들이 아빠 괜찮냐고 물어본다면 눈물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직 정확한 병명도 모른 채 응급실에 누워있는 아버지에 대해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자신이 없었다.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다시 응급실을 향했다. 남편은 통증으로 밤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던 터라 많이 힘들어했다. 나는 그렇게 막연한 두려움과 슬픔 속에서 초조하게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점심때가 다 되어 드디어 남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내려졌다. 길렝 바레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입원을 했는데 척스트라우스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이라고 진단 내려졌다. 몇십만 명 중 한 명 정도 걸리게 되는 정말 흔하지 않은  희귀병이라고 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남편조차도 자신의 병명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척 스트라우스 증후군은 천식, 알레르기성 비염을 경험했던 환자에게 호산구 증가증을 동반한 육아 종성 혈관염이 하부 기도의 정맥과 세정맥을 비롯한 여러 장기에 침범하는 질환이며 혈관염(vasculitis)의 많은 형태 중의 하나)


모슨 병이든 결론이 내려진 것에 남편은 안도해 했다. 왜냐면 어떤 병인지 진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의 통증을 통제할 수 있는 처방이 제대로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허리 디스크가 아닌가 의심했던 남편은 갑자기 단 3일 만에 전 세계에서도 흔하지 않은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 자신이 운영하던 병원을 멈추어야 했고 아들은 아빠의 입원으로 불안해했고 나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입원으로 집과 회사 그리고 병원을 모두 돌보기 위해 고전분투해야 했다.


간병인을 쓸 수도 없어서 새벽 6시에 눈을 떠 병원에서  집으로 가 아들을 등교시키고 병원으로 돌아와 남편의 아침을 챙기고 다시 회사에 갔다가 병원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남편을 챙기다 저녁 11시에 집으로 가 아들을 맞고 간식을 챙겨 먹이고 새벽 1시에 병실로 돌아와 잠을 자는 생활을 시작했다. 시간에 쫓기며 그 생활을 빈틈없이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그나마 남아 있는 우리 가정과 남편의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설픈 완벽주의자인 나의 강박관념은 그렇게 나를 병들게 했다. 남편이 몸에 이상이 생기면서 나는 마음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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