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으로 가는 하루
눈을 뜨자마자 간단히 아침을 챙기고, 곧장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했다. 오늘은 버스를 타기로 했다. 창밖으로 스치는 파리의 거리들, 전봇대 옆 플라타너스, 갑자기 튀어나오는 조각 같은 건물들까지—버스 창은 마치 움직이는 액자 같았다.
오르세 미술관 에 도착하자, 옛 기차역의 위용이 먼저 반긴다. 그 웅장한 철골과 유리, 따뜻한 채광 속으로 들어서니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 느낌. 중세 미술부터 시작해 근대의 문턱을 넘으며, 모네의 햇살을 지나 르누아르의 붉은 뺨에 머물렀다. 밀레의 농부들, 마네, 수잔 발라동의 삶과 붓끝까지—그들의 시선이 내 마음을 눌렀다.
가이드가 눈치껏 서둘러줘서 다행히 딸이 준비한 점심 예약에도 늦지 않았다. 정갈하게 차려진 테이블, 여유롭게 흐르는 와인 잔, 프랑스인들보다 더 여유작작한 식사를 즐겼다. 이런 게 진짜 ‘여행자의 점심’ 아닐까 싶었다.
오후엔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다시 만난 모네의 수련은 마치 꿈속을 걷는 느낌이었다. 물 위에 잎이 흐르고, 빛이 흔들리고, 마음도 그 위에 살포시 얹힌 듯. 센강을 따라 숙소로 돌아가는 길, 마음속에선 여운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잠시 쉰 뒤, 다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생샤펠 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정교한 색이 머리 위로 쏟아져내렸다. “빛으로 된 성경”이란 말이 절로 떠오른다. 이어 간 곳은 콩시에르주리 감옥. 마리 앙투아네트가 머물렀다는 방 앞에서, 묘하게 고요한 기분이 들었다. 화려했던 그녀의 마지막 공간은 의외로 소박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박물관—루브르. 수많은 인파에 떠밀리듯 중세로, 르네상스로, 다시 바로크로 흘러다녔다. 작품 하나하나에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체력은 바닥나기 직전. 그래서 잠깐 들른 카페에서 마신 핫초코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파리의 핫초코는, 그야말로 진짜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에펠탑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녁 7시 정각, 반짝이는 불빛이 하늘을 찢으며 켜지는 순간—그 아래에서 우리는 비를 맞으며 걷고 있었다. 낮보다 더 반짝이는 야경, 북적이는 강변, 그리고 어제 만난 관광객과 뜻밖의 재회까지. 파리는 이렇게, 매일매일 작은 기적을 준비해두는 것 같다.
오늘 하루, 눈과 마음이 다 벅찼다.
내일도 또, 어떤 장면이 기다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