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비의 도시에서
“싱가포르가 그렇게 깨끗하고 아름답대.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어. 꼭 한번 와보고 싶었어.”
친구가 말했다.
싱가포르는 입국부터 까다롭다. 껌도 금지이고, 술도 제한된다. 서울보다 조금 큰 이 도시국가는 과거 영국 식민지였다가, 1963년 말레이시아에 편입되었다. 하지만 1965년 8월, 말라야연방에서 탈퇴하며 지금의 싱가포르 공화국이 되었다.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가 어우러져 살아서 언어도, 종교도 다양한 이곳은 자유무역항으로 번성하며 ‘소비의 도시’로 불린다.
우리는 거리로 나서 보타닉 가든을 찾았다. 희귀한 난초들과 울창한 나무들 사이, 조용한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싱가포르 달러 지폐에 그려진 나무 앞에선 기념사진도 찍었다.
가이드는 이곳에 산 지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얼마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났어요.”
그녀는 말을 잇지 않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더 묻지 마세요.”
짧은 한마디였지만, 나는 그 너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나 역시 같은 결을 지닌 사람이라서.
우리는 여전히 잘 살고 있지만, 남편이 있던 세상과 없는 세상은 분명 다르다.
그 엄청난 차이를 혼자만 감당해야 하는 순간들.
때로는 삶이 나만 향해 무심한 듯 느껴지지만, 돌아보면 그 또한 ‘살아간다’는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사는 건 죽음보다 힘겹게 견디는 일, 그 마음을 조금 이해할 것도 같다.
이제야 조금씩이나마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가 보다.
주롱 새 공원으로 향했다.
새들의 공연을 보며 박수를 치는 가족들, 연인들—
그 장면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한때 나도 누렸던 풍경.
달콤한 기억이 어깨 위로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다음은 육로를 통해 말레이시아로 넘어갔다. 말레이시아는 조금 낯선 분위기. 사원과 원주민 마을을 돌아본 후,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멀라이언 파크와 리틀 인디아를 걸었다.
거대한 빌딩 숲 사이, 옛 건물들은 정겹고 리틀 인디아의 강렬한 눈빛을 지닌 사람들은 거리마다 카메라 셔터를 유혹했다.
“ 비만 아니었으면...”
중얼대며, 아쉬움 속에서도 몇 장의 사진을 건졌다.
저녁 식사 후, 우리는 인도네시아 바탐섬으로 향하는 배를 탔다. 싱가포르와는 또 한 시간의 시차.
대합실에서 우리는 다시 길 잃은 아이처럼 불안해졌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도 막막한 일일 줄이야.
‘불통! 불통!’ 정치인들이 외치던 그 말이 이토록 가슴 깊이 와닿을 줄이야. 그때 그 말이 마음속에 오래 울렸다.
눈치를 보고,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며 겨우 배에 올랐다.
도착한 인도네시아는, 한국인들에게 따뜻한 나라였다.
우리를 마중한 가이드는 스스로를 ‘김남길’이라 소개했다. 한국어는 서툴렀지만, 그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반가웠고 고마웠다.
그의 알 듯 말 듯한 설명을 들으며 호텔로 향하던 길,
우리 넷은 거의 동시에 말했다.
“아— 이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