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섬 사이, 쉼의 의미
인도네시아의 아침도 비로 시작되었다.
바탐섬, 싱가포르 남쪽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리아우 제도에 속한 이곳은, 지도 위에서조차 자주 눈에 띄지 않는다.
가이드의 환한 아침 인사가 무색하게,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우리는 중국 사원을 둘러본 뒤 원주민 마을로 향했다.
비 때문인지 마을은 조용했고, 풍경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때 한 꼬마가 우리를 따라왔다.
“언니 이뻐! 이브자르 까르르~”
처음엔 가이드의 장난인 줄 알았지만, 아이까지 따라 하자 진짜 말인가 싶었다.
‘최고’라는 뜻이란다. 뭐 우리가 모르니 믿어주면 서로가 좋지. 너 좋고 나 좋은 기분으로 함께 즐겨본다.
낯선 말이 낯익은 감정으로 들려왔다.
아이의 맑은 눈빛과 수줍은 웃음, 그리고 엄지를 치켜세우는 손짓.
그 작은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환대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런데 자꾸 눈에 밟히는 건, 아직 다 빠지지도 못한 앞니였다.
이미 삭아버린 듯한 이.
왜 그 조그만 치아가 그렇게 마음에 걸리는지 모른다.
나는 아이의 손에 2달러를 쥐여주었다.
그 순간, 아이의 웃음 앞에서 미안한 마음이 먼저였다.
이게 최선은 아닐 텐데.
내가 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고작 이거라니.
결국 우리는, 그냥 웃어주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원주민들의 민속춤을 감상하고, 마을을 돌아보다 ‘미니발리’라는 리조트에 들렀다.
가이드는 “짝퉁 발리예요!” 하고 웃었다.
스물일곱 살, 다섯 동생을 돌보는 가장.
어릴 적 부모를 여의고, 삶을 껴안고 살아온 청년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나라에서 세 명까지는 학교에 보내줘요.”
그는 밝은 얼굴로 말했다.
막내는 일곱 살이란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닌다는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이, 마치 다 커버린 자신의 동생들을 상상한 것처럼 자부심으로 빛났다.
그는 여자친구 이야기도 했다. 대학 졸업반이라고, 자랑스럽게.
“일부다처제가 아직도 있긴 한데요, 저는 한 여자만 사랑할 거예요.”
그 말에, 괜스레 웃음이 났다.
햇빛 같던 그의 웃음 뒤에, 작은 결심이 보였다.
바탐은 관광지라기보다는 휴양지에 가깝다.
“볼 건 많지 않지만, 쉬기엔 좋아요.” 가이드는 그렇게 말했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이 섬을 바라보며 꿈꾼다.
‘열심히 일했으니, 주말에는 저 섬에서 푹 쉬다 오자.’
반대로, 바탐 사람들은 화려한 싱가포르를 향해 꿈꾼다.
‘어서 돈을 벌어, 저 도시에서 살아야지.’
서로의 꿈이 서로를 향하고 있다.
나는 어디쯤에 서 있는 사람일까.
싱가포르와 바탐, 두 섬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이국의 풍경을 관광하는 나.
그 어떤 곳에도 뿌리내리지 않고 스쳐가는 나.
어쩌면 지금, 한국에서 온 우리는 가장 행복한 사람들 인지도 모른다.
먹고살 걱정 없이 여행을 즐기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가진 삶이다.
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몸이 피곤해도 마음이 편하면, 우리는 쉰다고 느낀다.
반대로, 아무리 몸을 눕혀도 마음이 무거우면 쉼이 되지 않는다.
진짜 쉼은, 몸과 마음이 함께 놓이는 순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 가이드를 보며 생각했다.
밝고 순한 눈빛, 자신의 삶을 감추지 않는 단단함.
그는 많이 가지진 않았지만, 뭔가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게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귀한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국적도, 언어도, 신념도
때론 그냥 껍데기 같은 걸지도 모른다.
진짜는 마음의 결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의 온도.
그리고, 타인의 꿈 앞에서 잠시 멈출 수 있는 여백.
여행이 끝나도 오래 남는 건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