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1

결국 떠나기로 했다

by 바람처럼

여행을 떠났던 사람이 돌아올 때는 무엇을 가져올까?


미용실 직원이 머리를 손질하며 말했다.

"요즘은 다들 해외로 떠나잖아요. 전 제주도만 가도 소원이 없겠어요. 한 번도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어요. 속초도 못 가봤네요."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입꼬리는 올려져 있었지만 눈빛은 어딘가 간절했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고, 가슴에 쿵 하고 둔기를 맞은 듯 충격이 왔다. 고개를 숙인 채 부끄러워졌다.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해외여행을 다녀온 터라, 나도 모르게 세상이 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아직도 국내 여행조차 어려운 사람이 있다는 걸 생각조차 못 했다. 오히려 자주 떠날 수 없음에 불평해 왔던 나였다.


싱가포르 여행을 앞두고, 문득 ‘여행’이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친구 네 명이 함께 여행을 가자며 모임을 만든 건 벌써 몇 해 전. 매달 회비를 꼬박꼬박 모았지만 바쁜 일상에 결국 함께 떠나는 일은 미뤄졌다. 스케줄을 맞추다 지쳐, 급기야 모임을 그만두자는 말까지 나왔다. 그때 한 친구가 외쳤다. "이럴 바엔 그냥 날을 정해!"


그렇게 급히 날짜를 잡았고, 며칠 뒤 "싱가포르로 예약했어"라는 문자가 왔다. 가고 싶은 나라도 제각각이었지만, 어디든 괜찮았다. 결정장애자인 나에게 중요한 건 목적지가 아니라 ‘함께 떠나는 일’ 그 자체였다.


나는 사진 촬영을 위해 자주 돌아다녔지만, 그것은 여행과는 다른 작업이다.

싱가포르의 풍경을 담은 사진작가들의 작품이 떠올랐다.

화려한 야경, 깨끗한 거리, 아름다운 도시—막연한 이미지만을 떠올리며 비행기에 올랐다.

그런데 도착 직전에서야 알아본 기후 정보. 지금은 우기였다. 일주일 내내 비 예보다.


싱가포르에 도착한 우리는, 조금 겁이 났다.

가족과 함께하는 익숙한 여행과는 달리,

언어도 서툴고, 여행 경험도 많지 않은 우리 넷은 서로를 의지하며 여행을 시작했다.


입국신고서부터 헤맸지만. 결국 무사히 공항을 빠져나왔다. 가이드를 만났을 때는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 가이드는 우리보다 나이가 있어 보이는, 육십 즈음의 여인.

하지만 그녀는 그 순간,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언니 같았다.


밤 11시가 다 되어 도착한 숙소는 샹그릴라.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해변가의 한 리조트였다.


잔돈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탓에, 호텔 보이에게 팁을 건네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가방을 꼭 쥐고 있어도 한사코 받아가려는 그 손이 자꾸 눈에 밟혔다.


다음날 아침, 환전을 하러 프런트에 내려갔다. 서툰 영어로 말했더니, 예쁜 직원이 미소 지으며 조용히 말한다.


"저, 한국 사람이에요~"


와우! 반가움에 두 손을 꼭 잡았다. 그제야 마음이 풀렸다.

온갖 질문을 쏟아내는 우리, 그녀는 웃으며 다 받아줬다.

처음의 두려움과 긴장이, 따뜻한 말 한마디에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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