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자의 삶이 시작되다
-10월, 2025-
지금 앉아 있는 카페 이 자리는 작년 이맘때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썼던 자리이다. 꼬박 1년이 걸렸다. 이 자리에 다시 앉기까지.
작년 가을의 나는 변화된 일상에 조금 시무룩해 있었다. 낯선 동네로 이사를 왔고, 회사에서 무척 멀어졌다. 길어진 출퇴근 시간에 새벽 루틴을 잃었고, 저녁 요가도 잃었다. 그리고 그리웠다. 이전의 겨울, 나트랑에서 보낸 한 달의 시간이. 하루하루 오늘의 주인으로 살며 햇살 아래 자유로이 읽고 걷던 내가.
그래서 그날은 벼르고 벼르던 휴가를 냈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하천길을 따라 산책을 했다. 그리고 이곳 카페에 와서 좋아하는 커피와 빵을 앞에 놓고 한강 작가님의 책을 읽었다. 창 밖의 가을이, 이 시간의 자유가 사무치게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 후 다시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새 동네에 정을 붙였고, 두려웠던 출퇴근 운전길도 EBS 영어를 들으며 익숙한 길이 되었다. 나만의 시간은 줄었지만, 그래서 붙들던 루틴이며 공들이던 SNS도 몇 가지 내려놓았지만, 읽고 쓰는 일만큼은 놓지 않았다. 시간은 줄었지만 깊어졌다고 말해본다.
기억에 남을 책들을 읽었고, 내 안에 심은 문장들이 입 밖으로 발화되기도 했다. 오프라인 북클럽 리더로 활동해 보며 토론과 진행의 기쁨을 경험했다. 그리고 오래도록 에세이 출간 작업에 전념했다. 원고를 투고하는 과정에서 환희와 절망을 오갔고, 그 부딪힘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그렇게 하나하나의 단계를 밟으며 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작년에 왔던 카페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 그때와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으로. 육아 휴직이 시작되었다.
작년의 하루 휴가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나도 주어진 자유에 수시로 기뻐하고 있다. 다른 게 있다면, 보다 차분해졌다는 것. 그리고 앞 날을 계획해보려 한다는 것. 자유로운 오늘은 단발성이 아닌 앞으로 6개월간 지속될 날들이기에. 그래서 오늘은 지친 일상 속 휴식의 날이 아니다. 시작될 여정의 첫걸음들이 되는 날이다.
새로운 일상을 연습하며 꾸려보고 있다. 출근 준비가 사라진 새벽 시간에 스트레칭과 독서로 하루를 열고, 아이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부드럽게 깨우고 함께 천천히 아침을 먹는다. 모두를 두고 먼저 집을 나서던 내가, 남편과 아이에게 잘 다녀오라고 웃으며 인사를 한다. 그리고 조용해진 집. 책을 마저 읽고, 결심한 듯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이어서 동네 공원으로. 얼마 전부터 삶에 달리기를 들였다. 러닝 열풍에도 꿈쩍 않던 내가 퇴근 후 밤에 조금씩 달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휴직자가 된 지금, 아침으로 그 시간을 옮겨왔다.
내게 없던 시간을 살아본다는 건 여러 감정이 드는 일이다. 기쁘고 힘차면서도 지난 시간 속 내가 애잔하다. 시간이라는 게, 자유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해가 떠 있는 시간에 주체적으로 움직인다는 게 이런 거구나.
다행인 것은 서글퍼하다 끝날 시간이 아니라는 것. 새 날들은 이제 시작되었으니까. 앞으로의 6개월을 마음껏 그려볼 거니까.
삶에 휴식기라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일 년이 지난 후에라도 이렇게 같은 자리에 앉아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좋아하는 일들을 계속 쥐고 있었기 때문에. 본캐로 바쁜 삶 속에서도 읽고 쓰는 부캐를 지켜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지켜냈다고 표현해야 할 만큼 회사를 다니고 육아를 하며 좋아하는 일을 챙긴다는 건, 고요함 속의 치열함 같은 것이었다. 동시에 지켜내야 내가 살 수 있는 숨통이었다.
이제 같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 본다. 작년 가을의 방황하던 마음을 새롭게 써본다. 모든 것이 오늘에 이르는 길이었고, 앞으로도 이어지는 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