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그늘>
사랑을 할 수 없고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배 속의 아기가 탯줄에 목이 감겨 혼자 힘으로는 풀 수도 없고 끊어낼 수도 없는 지독한 투쟁을 하는 것과 같다.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버둥거림에도 잔인하게 숨통을 죄어오는 끝없는 시간의 망연은, 순간을 살아가는 자신을 현실에서 분리시켜 정처 없이 떠돌게 만든다.
저물어 가는 햇살과 뺨에 스쳐 가는 서늘한 바람에 목적지 없이 걷고 있는 나를 느낄 때면 고깃덩이의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듯한 이상한 이질감이 느껴지고, 이렇게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정체 모를 해리 감은 세상을 사는 것이 나인지, 아니면 쭉정이에 얹혀사는 밀알인지 도통 알 수 없게 만든다.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이런 날의 끝없는 반복이다. 뭔가 새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으면서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신록이 올라오고 꽃이 피는 계절이 오더라도, 내 삶은 무한정 변하지 않는 일상을 짊어지고 사는 것이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에 갇혀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이 일그러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고, 삶은 의욕을 잃어가며 웃음이 사라지고, 종래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퍼지기 시작한다.
죽음은...
특정한 향기를 지니고 있다. 죽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향기는 어떤 사람은 맡을 수도 없고 또 다른 사람에겐 지독한 악취가 되기도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소수의 사람에겐 달콤한 꽃향기가 되어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그것의 시작은 한 쪽 귀퉁이, 쉽사리 눈치챌 수 없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처음에는 아무런 아픔과 고통을 느끼지 못하다가 영혼의 한 가운데가 뚫릴 때쯤, 자신의 의지를 잃고 죽음의 향기가 이끄는 곳으로 끌려가며 그곳이 마치 꽃향기가 가득하고, 늘 푸른 솔 내 충만한 안식처라도 된다는 듯, 끝내 그 길을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 죽음의 향기가 가진 악취의 본질이다.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진한 향기를 내뿜으며 나를 유혹하는 죽음의 꽃과 벌거벗은 알몸으로 싸우는 일이기도 하다. 악취를 가장한 향기라는 것을 알기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온 몸의 에너지를 모아 버텨보지만, 강렬한 유혹에 매혹당하지 않는 것은 쉽지 않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약속된 영혼이라는 듯 항상 사랑의 빈자리에 머무르고 있기에 그 공간에 사랑을 채워 쫓아내지 않는 이상 죽음이란 두 글자는 내 곁을 떠나지 않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한 게임이 된다. 시작부터 싸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뜨겁고 밝게 빛나는 한 줄기 빛 속으로 나를 데려가 짙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몰아내고 가슴에 빗장을 걸어 본다. 하지만 채워질 수 없는 공허함은 나를 쫓아오는 죽음의 향기가 비집고 들어오는 틈이 된다.
죽음에 쫓기는 인생을 산다는 것은 삶에 작은 여유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술과 시간의 노름에 취해 몸과 마음이 느려지기 시작하면 뒤를 쫓아오는 죽음의 그림자가 나를 추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항상 몸을 움직여 머릿속에 빈 공간과 빈 마음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내 삶에서 휴식이란 쉼 없이 몸을 움직이고 체육관에서 미친듯이 땀을 흘리며 몸이 부서질 정도로 운동을 한 후, 그 뒤에 찾아오는 찰나의 평정이 유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랑을 하지 못하고 죽음에 쫓기는 삶을 산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쉽게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어쩌면 만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인생의 바람결이 그렇게 소중한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