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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 Dec 16. 2022

2-3. 내가 불안장애라고?

<불안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었다.

일상생활의 작은 변화나 타인과의 다툼이라도 있으면 온종일 나를 괴롭히던 머릿속의 공상은 오사게도 예민한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허공에 '부웅~ 두둥실' 떠오르던 요상한 어지러움도 너무 무리하게 일을 해서 그런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툭하면 잠을 자지 못했고...

자는 와중에도 반쯤 눈을 뜨고 있거나 수시로 누가 깨우는 것처럼 반복적으로 잠이 깼다. 때론 이불에 오줌이라도 지린 것처럼 식은땀이 흥건했다. 띵까띵까 하며 배 두드리듯 맘 편히 엎어져 있을 땐 이틀이 지나도 가지 않던 화장실을 출근만 하면 아침, 저녁으로 들락거리기 바빴다. 이렇게 뭔가 이상하면서도 쭈욱 이렇게 살아왔기에 그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몰아쳐대는 쓰나미처럼 감정의 폭풍이 있진 않았지만 설명하기엔 모호한, 상당히 유쾌하지 않은 감정이 광범위하게 나를 감싸고 있었다. 이렇게 아주 안 좋은 느낌을 안고 하루를 살다 보면 외부의 작은 울림에도 내 몸통 전체가 울며 메아리를 쳤다. 돼지 꼬리처럼 꽈리를 틀던 몸속의 울림은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나를 흔들고 일상을 흔들어 댔다. 그래서 모든 게 무섭고 두려웠다. 사소한 변화도 싫었다. 내내 해오던 일이 달라지는 것, 익숙해진 상사 대신 새로운 사람이 오는 것, 환경이 변하는 것, 이렇게 익숙해진 모든 것과 이별할 때 아무것도 아닌 이 일이 내겐 죽기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그냥 참고 견디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선천적으로 예민하고 사람 대하는 걸 힘들어하는 내향적인 성격이었다. 그래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이 고통의 연속은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40년이 넘는 시간을 참기만 하며 살았다. 그러다 몸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자 순식간에 무너졌다. 이젠 아예 잠을 자지 못했다. 그렇게 누적된 피로에 꾸벅꾸벅 졸다 지쳐 쓰러져 잠이 들면 긴 시간 동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아무것도 구분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눈을 뜨면 그 어둠이 나를 입에 문 채 몸뚱이가 터지고 찢어질 때까지 나를 흔들어댔다. 결국 그 엄청난 두려움은 공황이 됐고, 그 공포감이 없어질 때까지 심장을 부여잡고 발을 동동 구르며 괴성을 지르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진짜 이것밖에 없었다. 이 지경이 됐는데도 정신과를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디 다른 곳이 아픈 거겠거니 하고 의료 쇼핑하듯 참 여러 진료과를 돌아다녔다.


     그때 누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너,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거 아니니?"


     "정신과를 가봐야 하지 않을까...?"


     그 말을 듣고...


     "뭔 소리를 하는 거여? 내가 정신과를 왜가? 오래간만에 전화해서 왠 뜬금없는 소리야."하고 단박에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정신과에 대한 권고는 끊이질 않았다. 심지어 검사받은 병원의 의사까지 몸의 이상이 아니니 정신과를 가보라고 했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마음의 병으로 지금의 치료자(정신과 의사)를 만났을 때도 내게 병적 불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살다 보면 여러 굴곡이 있듯 그저 또 다른 언덕을 넘어가고 있을 뿐, 이때를 넘기면 예전처럼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심지어 그 삶이 지독한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는데도 그것이 내겐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많은 환우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혹은 예전의 나처럼 "내가 불안장애라고?" 반문하며 불안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는 않을까? 현대 사회의 병적 불안감은 스트레스와 사회적 혼란, 개인의 성격적 특이성이라는 그늘 속에 숨어 어지간해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간악한 위장의 천재는 자신의 병적 불안감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어 상당한 심적 고통과 신체화 증상을 예민하고 소심한 성격 탓으로 치부하게 만든다.


     꼭 치료가 필요한 병적 불안감은 두 가지 큰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불안이 너무 커서 해야 될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불안이 두려워 그 상황을 피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망가는 회피 반응이 나온다. 이것의 문제점은 회피 반응이 반복될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활동할 수 있는 삶의 범주가 줄어들기에 인생의 다채로움도 사라지게 된다.


     두 번째는 해야 될 일을 하고는 있으나 고통이 너무 큰 경우이다. 불안이 두려워 직면한 일을 피하지는 않지만 삶 자체가 불안에 의한 고통으로 사는 게 지옥이 된다. 그래서 단 하루도 쉴 수가 없다.


     예전의 나처럼 마음의 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정할 수가 없다면...

앞서 언급한 두 가지 특징 중 자신에게 해당되는게 있는지 잘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자율 신경계와 관련된 신체화 증상 (불면, 심장 두근거림, 공황, 설사, 소화 불량, 집중력 저하 등)을 가지고 있고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라도 해당이 된다면 꼭 치료를 받아야 한다.


     나는...

두 번째에 해당하는 병적 불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도 사는 게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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