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호 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을 했단다.
물론 당사자는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줄도 모르고 병원엘 갔다고 했다.
검사를 받으려 잠시 입원하는 줄 알고서 말이다.
그 언니가 병원에 간 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으니 지금쯤은 자신이 요양병원 환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113호 언니는 올해 여든다섯 살이다.
나와는 청운동에서부터 함께 살았던 인연으로 그 언니와 안 지는 30년 도 넘는다.
내가 지금처럼 아파트 화단에 꽃을 기를 수 있었던 것도 1층에 사는 그 언니 덕분이었다. 젊었을 때 오성급 호텔리어 있던 당시로는 깨인 분이셨다. 깔끔한 성격과 똑 부러지는 성격으로 지인도 대인관계도 좋은 편이었다.
그 언니의 집이 1층이었던 관계로 우리 아파트에 사는 분들 중 언니를 아는 분들은 그 언니네 집에서 커피를 대접받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남에게 베풀기 좋아하여 음식을 만들면 나를 비롯한 이웃을 불러 모았다.
겨울이면 만두며 고구마,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에는 하얗게 분이 나는 하지감자를 쪄놓거나 쫑쫑 썬 애호박전을 해놓고 커피 마시자며 전화를 했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전화를 하여 안부를 묻고 먼 경동시장에라도 다녀오면 사 온 물건의 절반은 내게 준 친언니보다 더 따뜻한 언니였다. 매일 전화를 하여 피곤하다며 짜증을 낸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일들은 지난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몇 년 전 반측성 안면 마비 증상으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때 큰언니와 함께 보호자로 수술 동의서까지 써준 고마운 분이기도 했다.
어찌나 부지런하던 지 창문틀까지도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로 닦고, 운동도 하루도 빼놓지 않던 그 언니가 건강이 악화된 것은 작년부터였다.
갑자기 나빠진 시력으로 활동이 힘들어지자 노쇠는 급속히 찾아왔다.
이틀이 멀다 하고 병원에 들락거리더니 작년 가을부터 요양보호사 없이는 생활이 불편할 정도가 되었다.
요양보호사 이야기는 지난번에 한 적이 있다.
말로만 듣던 요양보호사 제도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꼭 필요한 제도였지만 여러 가지 부작용도 있다는 것을 그 언니를 통해 알게 되었다. 자신의 생활태도와 딴판인 요양보호사와의 사소한 일들로 그동안 세 명의 요양보호사가 바뀌었고, 요양보호사가 바뀔 때마다 언니의 건강은 눈에 띄게 나빠져갔다. 가장 큰 문제는 요양보호사가 해 주는 음식이 언니의 입에 맞지 않아 생긴 일이었다.
식사를 제때 하지 못하니 살은 급격히 빠졌고, 어쩌다 내가 언니를 보러 가면 침대에 오른발을 곧추세우고 앉아서 어설프게 나를 보고 웃는 언니는 미라를 연상시켰다. 웃을 힘마저 없어 보여 안타까워하면 내 손을 잡고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선생은 나처럼 살지 말아요. 솔직히 나는 소고기를 그렇게 좋아했는데 마음 놓고 그 소고기를 한 번 제대로 사 먹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게 가장 후회가 돼요. 나는 이 선생이 잘 되었으면 좋겠어!"
눈물이 그렁그렁 한 눈은 마른 몸과 달리 형형한 빛이 나고, 많은 사람들의 부러운 대상이었던 언니의 긴 속눈썹은 그날따라 더 길고 예뻐 보였다. 나는 언니에게 먹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먹고 싶은 것은 있는데 막상 눈앞에 있으면 삼키지를 못하겠다고 했다. 솔직히 이기적인 나는 그동안 언니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 단 한 번도 음식을 대접한 적이 없었다.
음식 솜씨라고는 전혀 없는 내가 누군가에게 음식을 대접한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오랜만에 내가 갈산에 올랐을 때, 언니를 돌봐주시던 지인의 전화를 받고 그 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나는 한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갈산정에서 내려다보는 안양천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언니가 결국 요양병원에 입원을 했구나!
"요양병원에 들어가면 그 사람은 끝나는 거야. 나는 절대로 요양병원에는 안 가!"
평소 요양병원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언니가 했던 말이었다. 그렇게 가고 싶지 않았던 곳을 자신도 모르게 들어가게 된 것이다. 언니가 급속도로 여위어가자 내게 연락도 뜸해졌다. 나는 요양보호사와 잘 지내는 것으로 믿고 가 보는 것도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입원 전 날에도 복도에서 언니 목소리가 들리기에 일부러 언니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돌아서 집에 왔는데... 그 모든 일들이 화환이 되어 내 가슴을 흔들었다.
지인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거의 한 달 전부터 식음을 전폐하여 완전 뼈만 남았고, 기력이 딸려 혼자 거동이 불편하여 대소변조차 가릴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요양보호사와 센터장 그리고 언니의 아들이 내린 결론은 집에서 더 이상 케어가 불가능하고 집에 더 있다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요양병원에 모시기로 했다는 것이다.
내게 전화를 한 지인에게 평소 언니가 의지를 많이 했으므로 그 지인이 언니를 설득했단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자고, 그랬더니 113호 언니가 고개를 강하게 저으며 말하더란다.
"나는 병원에 절대 안 가, 나 병원에 가면 못 나올지도 몰라!"
지인은 언니가 식사를 못하고 먹으면 토하니 그 원인을 알려 병원에 검사하는 것이므로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켰단다.
병원에 가기 전 언니에게 그 휑한 눈을 들어 다시 묻더란다.
"나 언제 집에 와?"
그 말을 묻는 데 지인은 목이 메는 것을 간신히 참고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거야 언니 하기 나름이지, 언니가 집에서처럼 아무것도 안 먹으면 오래 걸리고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잘 먹으며 금방 올 수 있지. "
병원에 떠나기 전 내게 연락하려고 했지만 그 모습을 보면 두고두고 마음이 안 좋을까 봐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올봄 언니가 내게 부탁해 내가 심어준 고추 두 그루와 천일홍!
저 천일홍은 언니가 20대 초반 홍은동에 살 때부터 키웠던 천일홍 씨앗으로 심은 것이다. 60년도 넘은 천일홍도 언니가 없으니 바싹 말라죽어간다.
화단에 내려갈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천일홍과 고추.
손이 닿지 않아 물도 주지 못하고 안타깝게 죽어가는 모습만 바라보고 있다.
요양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113호 언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