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
일층 할머니가 작년부터 건강이 부쩍 안 좋아지셔서 장애등급을 받고 요양보호사와 함께 생활하신다.
워낙 총명하시고 기억력도 좋으신 데다 친화력까지 있으신 분이라 그분의 집엔 늘 사람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
나 역시
그분과 오랜 친분으로 커피도 마시고
세상일(?)을 피력하면서 얼굴을 붉힌 적도 많았다.
올해로 연세가 83인 그분은 젊었을 때 경찰서 보호관찰 청소년들의 상담을 하고,
더 나이 들어서는 5성급 호텔에서 정년퇴직을 한 생각이 깨어있는 분이라 답답한 젊은 사람보다 대화가 잘 통하였기 때문이었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커피라도 대접하고 싶어 하는 그분의 집에 늘 사람들로 북적여 고의 아니게 어르신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늘 자신이 삶의 주인공임을 자랑스러워하던,
그런 분이 갑자기 거동이 불편하니 스스로 사람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어눌한 행동과 불편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요양보호사조차 거부했는데, 아들과 몇몇 사람의 권유로 요양보호사와 함께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첫 번째 요양보호사
요양보호사가 처음 오던 날,
전화를 하여 같이 이야기 좀 하며 어떤가 봐 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20년이 넘었지만 뇌경색으로 반신불수가 되신 어머니 때문에 3년 동안 간병인과 함께 한 경험이 있어 기꺼이 그 자리에 함께 했다. 요양보호사는 65세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인상도 깔끔했다.
성격도 하는 일도 깔끔한 그분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안심을 하였다.
그러나 며칠 뒤 곧 이 요양보호사와 그분이 오래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댁을 방문했을 때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영 불편했기 때문이다. 매우 귀찮은 손님을 보듯 인사도 대충 하고, 침대에 앉아 반갑게 나를 맞이하며 그분이 평소처럼
"이 선생 커피 마셔야지요?"
라며 요양보호사와 나를 동시에 보며 말했지만, 요양보호사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앉아있었다. 그분과 십여 분 이야기를 하는 동안 요양보호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내내 불편했고 기분도 언짢았다. 그 후 그분의 집에 특별한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곤 거의 가지 않았다.
예전에 요양보호사 제도가 없을 때 우리 어머니를 돌봐주셨던 간병인들은 하나같이 좋은 분들이셨다.
그분처럼 사람을 좋아하는 우리 어머니를 위해 과일을 비롯한 먹거리를 항상 가득 구입했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 머물 때, 나보다 더 잘 대접해 주었던 것과도 너무 대비가 되었다.
요양보호사는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3시간 동안 그 집에 머문다. 요양보호사가 안 오는 토요일 오후 그분이 전화로 나를 부른다. 내려가 보니 얼굴이 반쪽이 되어있다. 그분의 요양보호사에 대한 불평과 칭찬이 시작되었다.
이야기인즉,
요양보호사가 청소기 돌리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힘들다며 일주일에 한 번만 청소기는 돌리고 나머지 청소는 물티슈로 방바닥을 대충 닦아, 영 마땅치 않고 밥이며 반찬을 전혀 할 줄 모른다며 자신이 잘하는 고구마나 국수만 삶아준다는 말을 하셨다. 물론 그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지만, 청소기를 사용하고 통을 비우지 않아 가득 차 있는 먼지와 쓰레기를 보고 아연해졌다. 나는 그분에게 말씀드렸다. 언니가 원하는 것을 요양보호사에게 말하고 시정하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던지.
그러나 그 언니는 어떻게 딸같이 어린 사람에게 그렇게 하느냐며 그냥 자신이 불편을 감내하겠다고 했다. 일은 잘 못하지만 마음은 순진하다는 것이다.
한 번도 직접 사람을 고용해 본 적이 없는 그분에게 요양보호사는 감당이 되지 않아 보였다. 다른 곳에 아들이 있지만, 아들과 상의도 하지 않았다. 반찬을 할 줄 모른다며 전혀 만들어주지 않는 요양보호사, 밥이 먹고 싶다면 햇반을 레인지에 데워주며, 찌개를 끓여달라고 하면 수 백 번도 더 물어보아 귀찮아서 시킬 수 없다고 했다. 집에서 밥 안 해 먹냐고 물으면 자신은 김치도 잘 안 먹어 담가보지 않았으며, 음식은 대부분 사 먹는다고 했단다. 남편과 자녀까지 있는 요양보호사의 그런 말을 전해 들으며 나는 분개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그분은 하루가 다르게 허리는 더 굽어지고 두 눈은 더 깊어졌다. 나를 비롯한 이웃들이 요양보호사를 갈아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지만 그분은 그래도 사람은 착하다며 불안한 동거는 거의 일 년 가까이 계속하였다.
두 번째 요양보호사
작년 말 어느 날,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를 몰라 허둥거리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몇 호가시느냐고 물어보니 113호란다. 제가 무슨 일로 가시냐니까 새로 오신 요양보호사란다.
요양보호사가 바뀐 것이다.
어떻게 해서 바뀌게 된 것인지 궁금했지만 참기로 했다. 다음날 그분에게 전화가 왔다.
바뀐 이유를 들어보니, 오랜만에 어머니를 뵈려 온 아들이 요양보호사가 어머니에게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나 팀장에게 연락해 바꿔주도록 요청했다고 한다.
요양보호사가 바꿔서 서운하냐고 하니까 그분은 말씀하신다.
"불쌍하잖아, 내가 아들에게 막 화를 냈어.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분은 그사이 전에 있던 요양보호사에게 정이 든 모양이었다.
나는 그분에게 말씀드린다. 걱정하시지 말라고, 또 다른 곳에, 그에게 어울리는 곳에 가 일할 것이라고.
새로 온 요양보호사는 수더분한 옆집 언니 같은 분이다. 성격도 서글서글하고 우리가 가도 반갑게 맞아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그분의 얼굴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밥은 물론, 반찬도 그분의 입에 맞게 잘해주신다고 한다. 이제야 안도한다.
어제는 그분에게 전화가 왔다.
"이 선생, 뭐해요?"
"그냥 있어요. 언니 왜요?
"눈도 오는 데 우리 차 마시며 오랜만에 이야기나 할까 해서요."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말이다.
그분이 지금처럼 아프지 않았을 때 매일같이 듣던 말이었다.
베란다 창밖으로 흰 꽃이 날리고 있다. 아름다운 눈이다.
1층에 내려가니 고구마를 삶아놓고 기다리고 있다.
"웬 고구마예요?"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가지고 왔어요. 그래서 이 선생과 함께 먹으려고^^"
요양보호사가 웃으며 말했다.
"화천 친구네 집에 일요일에 친구들과 놀러 갔더니, 친구 아버지가 고구마를 한 상자 주셨어요. 그래서 몇 개 가지고 왔어요."
맛있는 냄새에 무슨 냄새냐고 물었다.
"지금 조기를 졸이고 있거든요. 어르신이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너무나 기쁜 나머지 요양보호사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여쭤보았다.
"언니, 음식은 입에 맞아요?"
"내 입맛에 딱 맞아."
환하게 웃는 그분의 반짝이는 눈빛에 기쁨이 가득하다.
반드시 보호자가 필요하다
이번 일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집에 환자가 없으면 좋겠지만, 부득이 요양보호사를 고용할 때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층 그분처럼 혼자 사시는 분들에게 특히 그러하다.
나이가 많다 보니 이래저래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