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와 508호 여자

삶의 단상 /

by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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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위에 비둘기 한 마리가 어슬렁거린다. 탑골공원에서 보았던 비둘기들이 생각난다.


1978년부터 2000년까지 근무하던 직장이 인사동에 있어 파고다 공원에 수시로 들렸었다. 원각사지 십층 석탑을 보기 위해서였다. 대리석으로 만든 그 우아하고 아름다운 석탑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우울하거나 하는 일이 잘 안 되는 날이면 파고다 공원에 들러 이 탑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잠시 서있는 일이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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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각사지 십층 석탑 / 1904년 호주 사진작가 조지 로스가 찍은 원각사지 십층 석탑>


당시 내가 마주한 원각사지 십층 석탑은 왼쪽 모습이었다. 탑의 정식 명칭은 원각사지 십층 석탑으로, 국보 제2호이다. 높이 12m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석탑은 특수한 형태와 풍부한 의장(意匠)으로 조선시대 석탑의 최고의 걸작이다. 현재는 10 옥개석만 남아있고, 상륜부(相輪部)는 없어졌는데, 상부의 3층 옥개석(屋蓋石)이 오랫동안 지상에 방치되었던 것을 1947년 원상태로 복원한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자료를 찾아보니 오른쪽 1904년 호주의 사진작가 조지 로스가 찍은 사진과는 조금 다르다. 십층 석탑 오른쪽 옆으로 상단부 삼층 석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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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원각사지 십층 석탑>


지금은 답답한 유리 건물이 감싸고 있다. 대리석의 풍화작용과 비둘기들의 배설물로 탑이 심하게 훼손되기 때문이다.


왜 뜬금없이 비둘기 이야기를 하다 탑골공원 이야기를 하는가 의아할 것이다.


탑골공원에는 비둘기 밥을 주는 사람들과 비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대립으로 시끄러울 때도 많았다. 나는 그들의 다툼을 지켜보는 방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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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탑골공원에는 비둘기가 정말 많았다. 그렇다 보니 국보 2호인 원각사지 탑도, 팔각정의 지붕도 그 앞에 서있는 손병희 선생의 동상도 모자랐던지 방문객들의 옷과 머리에도 비둘기는 배설물을 쏟아냈다. 마치 이 구역의 지배자인 것처럼...


한 때 비둘기를 좋아했던 때도 있었다. 그들이 내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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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 것은 바로 비둘기 목덜미의 멋진 빛 때문이었다. 햇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변화하는 목부분 털의 색에 나는 매료되었었다.


그런데 비둘기와 원치 않은 동거를 하게 되면서 비둘기에 대한 내 환상은 여지없이 부서졌다. 청운 아파트에 살 때 일이다. 당시 우리 옆집에 세상과 담을 쌓은 기이한 이웃이 살았다. 그녀는 아무와도 대화를 하지 않았다. 한여름에 겨울 외투에 모직 스카프까지 두른 그녀는 사람들의 좋은 이야깃거리였고, 질시의 대상이기도 했다.


5층짜리 아파트 맨 위층에 살던 내가 찻잔을 들고 이따금 그녀의 외출 모습을 몰래 훔쳐보며 호기심을 넘어 그녀가 왜 그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 상상만으로 내 하루는 벅찼다.


노숙자를 방불케 하는 겉모습과 달리 그녀가 한때 얼마나 아름답고 맵시 있는 사람이었는지 고운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었다. 걷을 때에 모습은 슬로비디오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느린 그녀의 움직임을 내 시선은 숨을 죽이며 쫓았고, 그때마다 내 마음은 한없이 슬퍼졌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녀가 유명한 대학을 나온 수재로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것과, 또 다른 이야기는 약사였던 그녀가 처방을 해준 약을 먹고 사람이 죽었고, 그 충격으로 저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두 가지 어느 것도 확인된 정보는 아니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녀의 동생이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화가라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동생은 한 달에 한 번 통장을 찾아와 1만 원 남짓한 관리비를 주고 간다고 했다.


그녀의 집 현관문은 언제나 굳게 닫혀있었다.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흔한 물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밥도 해 먹지 않는 것 같았다.


1999년 가을 엄마와 동생이 운영하던 신촌 가게가 도로 확장으로 철거되었고, 아파트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내 작업실은 302호로 옮겼다. 어느 날 아침을 먹으러 509호로 올라가니 동생이 말했다.


"누나, 아무래도 이 옆집에 무슨 일이 생긴 거 같아!"


좀처럼 말이 없는 동생의 뜬금없는 말에 깜짝 놀라 물었다.


"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어젯밤 밤새도록 우는 것 같아. 그 소리 때문에 한숨도 못 잤어."


그녀가 밤새 울었다고? 몇 년 동안 한 번도 없던 일이라 나는 깜짝 놀랐다. 어디가 많이 아픈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럼, 문을 두들겨보지. 그랬어."


"두들겨봤지. 문을 안 열어줘."


문을 열어줄 리가 없었다. 전에도 아래층에 물이 새 아파트 전체가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아무리 문을 두들겨도 안에 있는 그녀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결국 경찰이 사람을 불러 문을 강제로 열게 되었다. 처음으로 굳게 닫힌 그녀의 은밀한 공간이 외부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좁은 복도에 모여 그 집안을 살펴보려 했고 물론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대문을 열자 그동안 쌓여있던 악취와 어둠이 쏜살같이 밖으로 분출되며 호기심에 집을 기웃거리던 사람들을 강타했다. 경찰도 문을 연 사람과 구경꾼들은 순간 코를 움켜쥐며 한발 뒤로 후퇴했다.


한바탕 음침한 기운이 빠져나가자 경찰과 사람들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다시 문 앞으로 전진했고, 희미하게 집안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그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아주 어렸을 때 보았던 상엿집이 생각났다. 어디서 나왔는지 새카맣게 그을린 나무 기둥 두 개가 쓰러져있었다. 수도가 고장 나 넘친 수돗물로 가득 찬 집안 내부가 조금씩 조금씩 그 수줍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소동으로 시끌벅적했지만 여자는 방 안에서 문도 열지 않았다. 젊은 경찰이 인상을 쓰며 집안으로 들어가 마루에 올라 방문을 세게 두들겼지만 여자는 응답하지 않았다.


통장이 508호 남동생에게 전화를 하니, 돈은 자신이 보낼 테이니 고쳐달라고 했단다. 수도는 곧 고쳐졌고, 대문은 다시 굳게 닫혔다.


나는 그때를 생각하고 혹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현관문을 두들겼지만 역시 무응답이다. 귀를 대고 가만히 들어보았지만 동생이 밤새 들었다는 울음소리는커녕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와 이번에는 벽에 귀를 대고 들어 보았지만, 조용하다. 베란다 문을 열자 그곳에서 흐느끼는 소리처럼 흑흑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베란다 유리에 바싹 붙어 508호를 건너다보니 큰 화분에 비둘기 한 마리가 앉아있다 내 시선을 의식하고 재빨리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바라본다. 동생이 밤새 들었다는 울음소리는 바로 그 비둘기의 소리였던 것이다.


동생과 나는 파안대소하였고, 508호 여자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산비둘기 소리를 들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 소리가 얼마나 구슬픈지,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엄마는 " 계집 죽고, 자식 죽고, 구구 구구 구구 구구"처럼 들린다며 몹시 싫어했다.


비둘기는 화분에 알을 낳아 품고 앉아있었던 것이다. 아침마다 5층에 올라가면 베란다에 나가 비둘기를 살피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비둘기가 어떻게 부화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20여 일이 지나자 비둘기는 세 마리의 새끼가 태어났고, 어미 비둘기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가끔 먹이를 물어다 줄 때를 제외하곤,


비둘기의 성장 속도는 놀랄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 며칠 지나지 않아 어미 비둘기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세 마리의 새끼는 어미를 따라 이소를 했다.


며칠 뒤, 무심히 비둘기가 있던 화분을 바라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예의 그 화분에 비둘기 어미가 알을 품고 있었기 대문이다. 나는 비둘기의 놀라운 번식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지켜보기로 했다.


비둘기가 알을 다시 품기 시작하고 며칠 되지 않아 장마가 시작되었다. 비는 무섭게 퍼부었고, 지붕이 없는 베란다 화분 위 비둘기는 장대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알을 지켰다. 긴 장마였다. 그렇게 며칠 계속되자 비둘기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지 훌쩍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비둘기가 날아간 뒤 화분에 덩그렇게 남은 세 개의 알!


나는 날아가 버린 비둘기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나 한 번 떠난 비둘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긴 장마가 끝나고 유난히 이글거리는 해가 무심하게 버려진 세 개의 알을 비춰주었다. 이제라도 제발 돌아왔으면, 내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어느 날 아침 옆집 베란다를 슬쩍 본 나는 소스라쳐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깨진 알에 구더기가 생겨 화분 주위에 구더기들의 움직임으로 부산했기 때문이다.


그 구더기들이 우리 집 베란다로 넘어올까 봐 겁이 났다. 락스를 희석해 바가지에 담아 몸을 베란다 창밖으로 내밀어 힘껏 508호 베란다 화분 쪽으로 뿌렸다. 그렇게 뿌리고 또 뿌리고... 이사 온 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그 여자를 원망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비둘기를 보면 외면을 한다. 무지개를 닮아 좋아했던 비둘기 목 털빛보다, 긴 장마에 버려진 부패된 비둘기 알과 구더기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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